“지금부터 ‘반전’ 들어갑니다”
▲ 지난 3일 부산 사직구장 관중석에서 인터뷰를 나눈 정수근. 롯데가 살아나야 한국 프로야구가 산다며 시종일관 변화를 강조했다. | ||
재미없는 번트 작전
―잘 지냈어요? 오랜만이에요.
▲저, 1년 만에 제대로 된 인터뷰하는 거예요.
―그러게 좀 잘하죠. 부산 온 지 벌써 4년짼데 어때요.
▲글쎄요. 아직까지는 좋은 추억이 없네요.
―좋은 추억이 없는 건 롯데 팬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욕도 많이 먹었잖아요.
▲돈 많이 받으면서 못하면 욕먹는 거 당연하죠. 다 제 잘못이에요.
―그래도 최근에 조금 살아나는 느낌이 들어요. 1번으로 돌아와서 그런가.
▲1번이나 2번이나 제가 할 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희한하게 1번만 가면 잘돼요. 다른 타순에 가면 왜 안 되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개인적으로… 작전이… 주자만 나가면 번트다 보니까, 그런 게 조금 재미없어요. 감독님을 욕하는 게 아녜요. 서로 공격적인 야구를 해야지 팬들도 좋아하고 선수들도 자기 능력을 키워나가는 건데 번트만 대다보면 팬들도 재미없어 하고, 그런 부분에서 조금….
색깔 바꿔야 해요
―롯데 야구와 궁합이 좀 안 맞는 건가요.
▲저처럼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한 선수가 절제된 야구를 하려니까 조금 답답하죠. 그래서인지 의욕이 좀 떨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저는 진짜 그렇게 생각해요. 롯데라는 구단이 발전하려면 지역 색깔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번쯤은 확~ 바꿔줘야 돼요. 그래야지 정말로 부산 팬들이 원하는 이상의 성적도 낼 수 있어요. 프런트나 코칭스태프, 정말 고생 많이 하시는데 지금처럼 변화가 없으면 고생한 보람이 없어요. 이렇게 말씀 드리면 분명 그 화살이 저한테 돌아올 겁니다. 욕 먹을 각오하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변화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욕 먹겠어요.
▲ 사진제공=김남용 프리랜서 | ||
▲전 좋아요. 이순철 해설위원처럼 직접 야구를 하고 또 감독도 하셨던 분이 보고 느낀 사실 그대로 말해주시는 건데 겸손하게 받아들여야죠. 장기 두면 훈수 두는 사람이 더 잘 보이는 거랑 같은 이치잖아요. 분명히 더 잘 보여서 잘되라고 하신 쓴소리라고 생각해요.
―그 쓴소리가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거였어요.
▲어렸을 때는 뛰고 자빠지고 야구가 너무 즐거웠는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아요. 물론 첫 번째 문제는 제 자신이지만 여러 가지 것들이 꼬이다 보니까, 초심이 사라졌다기보다는 열정이 식은 거죠. 지금 다시 살리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즐거운 야구의 대명사, 정수근표 야구가 힘들다니까 속상하네요. 하지만 FA 때 직접 선택한 거잖아요.
▲돈 보고 갔으면 삼성 갔을 거예요. 40억 원 이상 준다는 구단도 몇 군데 있었지만 롯데를 선택한 건 부산 야구가 살아나야 프로야구가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었어요. 롯데가 한창 헤매고 있을 때는 관중이 한 200~300명 찼는데 야구장에서 삼겹살 구워먹고 자전거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어요. 그런 야구장을 어렸을 때 본 것처럼 꽉 채우고 싶었거든요. 사직이 꽉 차야지 한국야구가 발전하고, 앞으로 야구하는 사람들한테 가장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곳이 부산이고 롯데구단이기 때문에 롯데를 선택했죠. 근데 욕심이었나 봐요. 야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요.
―선수 감독 프런트, 3박자가 맞아야 되는데….
▲그럼요. 팬들만 최고예요. 저는 진짜 부산 팬들을 존경해요. 8개의 프로야구팀 중 롯데 팬들이 최고입니다. 그래서 정말 변해보자는 거예요. 이왕 지금 성적 안 나는 거 빨리 변화해서 발전할 수 있도록 뭘 만들어야지, 계속 제자리걸음하지 말자는 그런 바람이, 간절한 요구가 있습니다.
―그나저나 도루 성적이 왜 이래요? 고작 4개.
▲뛰지 말라는데 어떻게 뛰어요? 우리 팀은 빠른 선수가 많아요. 그런데 그 선수들이 장기를 발휘할 수가 없어요. 요즘 투수와 포수들의 견제 능력이 너무 좋아졌거든요. 그래서 뛰라고 스틸 사인이 나와도 그 공 하나에 뛸 수가 없어요. 공 몇 개 던지는 상황 중에 한 번의 찬스를 노려야 하는데 더그아웃에선 한 번에 사인내서 그 공에 뛰어서 죽든지 살든지 승부를 보기 원해요. 야구는 만화가 아니에요. 과학적으로 해야하는 거죠.
―핵심은 변하자는 건데 다른 건 변해도 롯데 팬들은 변하면 안 되죠. 어때요? 팬들 응원 속에서 야구하는 맛이.
▲좋아요. 팬이란 엄청난 전염성이 있기 때문에 부산에서만 이러는 게 아니거든요. 조금씩 하나씩 올라가다보면 8개 구단? 그냥 가는 거예요! TV로 우리 구장 비추면 야구에 관심 없던 사람들도 흥미를 갖게 돼요. 뭔데 관중이 저렇게 많아? 그러면서 보거든요. 전염되는 거죠. 그래서 부산이 중요하고 롯데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올스타 선정, 실력으로 보답
―우리 나이로 서른한 살이에요. 30대… 어때요?
▲한창 잘할 나이에 좋은 성적 못 보여서 아쉽고 이런저런 고생하면서 성숙해진 것도 같고 그러면서 야구를 좀 알 것도 같고 잘할 자신도 있고 그런데, 아직은 내 맘대로 못하는 거 같아서 답답해요. 최근에 이혼하고 악플 달린 거 보면서 속도 많이 상했죠. 저 그렇게 나쁜 놈 아니거든요.
―그래도 올스타에 뽑혔어요. 15만 명에 육박하는 야구 팬들이, 롯데 팬들이 아직까지 여전히 정수근을 믿고 좋아하고 있다는 증거잖아요.
▲감사하죠. 6년 계약, 올해 4년짼데 처음 제 희망대로 관중 동원엔 일단 성공했어요. 지금부터는 올해까지 남은 3년, 반전 들어가야죠. 돈값, 몸값, 실력으로 그동안 실망시켜드린 거 다 갚으려구요.
10대에는 야구가 즐거웠다고 한다. 20대에는 꿈을 향해 달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30대, 정수근의 야구는 된장처럼, 와인처럼 숙성에 들어갔다.
잘 익은 정수근표 야구, 톡 쏘는 재미가 있던 정수근표 FunFun야구를 다시 맛볼 수 있기를 소원해 본다.
김은영 MBC라디오 아이러브스포츠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