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딸의 결승전 대국서 심판 보는 게 아빠의 꿈이라오”
김다영은 ‘삼부녀 기사’로 유명하다. 부친이 프로기사 김성래 5단이고 언니는 이미 여류국수를 차지한 바 있는 김채영 2단이다. 부녀기사도 쉽지 않은데 삼부녀 기사는 정말 희귀한 케이스. 현재 한국여자바둑리그 포항 포스코켐텍에서 뛰고 있는 김채영, 여수 거북선 소속의 김다영 자매의 반상(盤上) 이야기를 들어봤다.
언니 김채영 2단(왼쪽)은 ‘아웃파이터’, 동생 김다영 초단은 ‘인파이터’로 자매는 서로의 바둑 스타일이 다르다고 평가했다.
“다영이는 제가 가지지 못한 걸 갖고 있어요. 뭐랄까, 전투력이 강해요. 수읽기가 세죠. 돌이 맞붙으면 힘을 발휘하는 스타일이이에요. 단점이요? 아, 초반 감각이 안 좋아요. 그래서 자꾸 싸우나(웃음)?” 언니 채영은 동생을 그렇게 평했다. 똑같은 질문을 동생에게도 던져봤다.
“언니는 저랑 좀 스타일이 다른 것 같아요. 어려운 모양을 간명하게 잘 처리해요. 저 같으면 틀림없이 싸울 장면에서 타협을 잘하지요. 단점은 음…, 힘은 센데 사활이 좀 약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동생은 인파이터, 언니는 아웃파이터라는 얘기.
자매의 첫 대결은 지난 3월 18일 한국여자바둑리그에서 이뤄졌다. 언니 채영(오른쪽)이 불계승을 거뒀다.
자매의 첫 대결은 2016 한국여자바둑리그에서 이루어졌다. 3월 18일 열린 5라운드 2경기 장고대국에서였다.
“동생이랑은 안 만났으면 했어요. 부담스러웠죠. 포항과 여수의 대결이 다가올 때만 해도 설마 했어요. 그런데 오더를 보니 우리가 첫 대결에서 만나는 거예요. 완전 멘붕. 대국 당일까지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이제 와서 밝히는 거지만 못된 짓도 했어요. 대국 며칠 전에 국가대표 연구실에서 다영이랑 신형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다영이가 결론을 잘못 알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혹시 우리들의 실전에 나올까봐. 그러고는 대국이 끝난 다음에 알려줬지요(웃음).” (채영)
“(눈을 흘기며)진짜 못됐다. 저는 상관없을 줄 알았는데 막상 바둑판 앞에 앉으니 기분이 막 이상했어요. 그래서 다른 대국보다 더 막 싸운 것 같아요. 정신이 없어서 대국 내용이 기억도 안 나요.” (다영)
“우리는 삼부녀 프로기사.” 왼쪽부터 큰딸 김채영 2단, 김성래 5단, 막내딸 김다영 초단.
바둑은 둘 다 여섯 살부터 시작했다. 아버지 김성래 5단이 바둑도장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아버지는 과거 딸들의 성적에 대해 엄격하게 대했는데 자매가 프로가 되고나서는 잘하든 못하든 모른 척해준다. 엄했던 아버지는 두 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채영이는 제 생각보다 훨씬 좋아졌어요. 뭐랄까, 진짜 프로다워졌다고 해야 하나. 바둑을 열심히 대한다는 느낌을 줍니다. 중국에서 열린 황룡사쌍등배 4연승은 그런 바탕에서 나왔을 거라 봅니다. 다영이는 (오)유진이와의 대국을 집에서 TV로 봤는데 정신이 없어요(웃음). 강약조절도 안 되고 한마디로 급하죠. 뭐, 한참 그럴 나이니까…. 차차 좋아지겠죠.”
바둑을 떠나 10대 후반의 소녀들이라 바둑 외에 하고 싶은 일들도 많겠지만 자매는 바둑 외에 다른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오전에 국가대표 연구실에 나와 오후 5시까지 연구도 하고 자체 리그전도 해요. 끝나면 다시 한국기원 옆 한종진 바둑도장으로 옮겨 공부를 하죠. 집에는 10시 넘어 들어가요. 요즘은 동생이 옆에 있어서 든든합니다.”
목표를 물었다. 공교롭게도 언니 채영은 현 여자랭킹 1위 최정과 동갑이고 다영은 2위 오유진과 같은 나이다. 숙명적으로 그들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데, 아니나 다를까 라이벌들의 이름이 등장했다.
“입단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제 목표는 언제나 타이틀을 많이 따는 것이었고, 세계여자바둑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공부하는 최정을 보고 요즘 배우는 바가 많아요. 정이는 더 이상 여자대회가 목표가 아니에요. 바둑에선 그동안 여자는 남자보다 못하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정이는 여자라 안 된다는 시선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저도 목표를 수정해서 성적보다 남녀 간의 차이를 줄이는 데 매진하려 합니다.” (채영)
다영 역시 동갑내기 오유진을 비롯해 극복해야 할 대상들이 첩첩산중이다. “여자바둑리그를 처음 시작했을 때 목표가 8승 6패였어요. 현재 6승 5패니까 아직까지는 계획대로인 셈인데 부족한 게 너무 많습니다. 그래도 정상에 오를 때까지 열심히 해봐야죠.” (다영)
자매와 아버지, 삼부녀 기사의 꿈은 야무지면서도 소박하다. 그 꿈은 아버지 김성래 5단이 말해줬다. “꿈이 있다면 채영이와 다영이가 어느 대회고 결승전에서 한번 대결해봤으면 좋겠어요. 내가 가운데서 심판을 보고 말이지. 그런 날이 올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꿈이고 목표겠지요.”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