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타는 현실에 발목 잡힌 ‘제2 황영조’
▲ 2005년 경주 코오롱 고교 구간 마라톤 대회에서 2구간 1위로 질주하고 있는 전은회. 뉴스뱅크이미지 | ||
전은회(19·건국대)는 두 말이 필요없는 한국 육상의 희망이다. 배문고 시절 이미 황영조의 고교기록을 넘어섰고 향후 한국 남자 마라톤을 이끌 최고의 재목으로 언론의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다. 2005년 배문고 졸업 당시 대학과 실업팀의 집요한 스카우트 공세를 받았고, 육상명문 건국대 황규훈 감독(대한육상경기연맹 전무이상)이 은행 대출까지 받아가며 목돈을 투자한 끝에 영입에 성공했을 정도다.
건국대는 2007년 전은회를 더 큰 선수로 키우기 위해 일본 준텐도 대학으로 연수를 보냈다. 육상 선진국인 일본에서 기량을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전은회도 올시즌 최고 기록을 세우는 등 6월까지는 예상대로 잘 성장했다.
그런데 지난 7월 중순 전은회가 사라졌다. 준텐도 대학에서 자신을 봐주는 매니저에게 ‘할머니가 위독하다. 한국에 가겠다’는 간단한 메모만 남기고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물론 할머니 위독은 거짓말이었다. 전은회는 짐도 대부분 그대로 둔 채 떠났다. 이후 한 차례 아버지와 통화한 것으로 봐 한국에 있는 것만 확인됐을 뿐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유영훈 건국대 코치는 “답답해 미칠 노릇이다. 얼굴을 봐야 속사정을 알 수 있는데 도무지 나타나질 않으니 무엇 때문에 잠적했는지 이유조차도 확인할 수가 없다. 가능한 모든 주변인물들에게 행방을 수소문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연락이 안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유 코치에 따르면 전은회는 7월 초까지도 한국과 인터넷 상으로 연락하면서 정상적으로 U대회 출전 준비를 했다고 한다. 잠적을 짐작할 만한 어떤 행동이나 말도 없었다는 것이다. 지금 상황으로는 잠적 이유를 다양하게 추측하고 있지만 본인이 나타나 정확하게 말을 하기 전까지는 진의를 파악할 수 없다는 얘기다.
대한육상경기연맹측도 “본의 아니게 언론에는 부상이라고 밝혔다. 정말 잠적한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배문고 은사인 조남홍 감독도 “졸업 후에도 자주 연락하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동창들이나 누구에게 물어봐도 전은회의 행방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잠적기간이 길어지자 육상계에서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전은회가 진로 문제 때문에 잠적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당장 실업팀에 진출해도 억대의 스카우트 금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대학 졸업까지 기다리지 않겠다는 의사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전은회의 아버지가 몇몇 실업팀과 접촉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하지만 현재 대한육상경기연맹 규정상 건국대가 이적동의서를 발급하지 않는 한 전은회가 대학을 중퇴하고 실업팀에 갈 수는 없다. 이적동의서가 없으면 2년간 공식대회에 출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실업팀의 관계자는 “전은회는 모든 실업팀이 탐내는 선수다. 오겠다면 환영이지만 건국대로부터 거액의 스카우트비를 받고 진학했는데 소속팀과 마찰을 빚어가며 실업팀에 오겠다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라고 말했다.
어찌됐건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에서 한국의 유일한 우승 후보로 꼽히고 있는 기대주가 잠적했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한국 남자마라톤의 사관학교로 불리는 건국대로서는 선수 관리에 치명적인 허점을 드러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또 대한육상경기연맹도 안 좋은 일이 터지면 대외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쉬쉬하기만 하는 고질적인 병폐를 또 한 번 보여줬다.
육상인들은 하루속히 전은회가 돌아와 속시원하게 모든 것을 해명해 주기만을 기대하고 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