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주자와 겨룰 새 인물로 유승민·원희룡·남경필 등 거론
유승민 무소속 의원.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새누리당은 총선 패배 후유증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총선 승리를 발판으로 내년 대선을 준비하려던 일정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일단 내부를 수습하는 데 당력을 쏟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계파 간 득실이 엇갈리며 여의치 않은 상황인지라 대권 논의는 당분간 수면 아래서 맴돌 전망이다.
대권 잠룡들이 처한 현실도 별반 다르지 않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대선 얘기가 쑥 들어갔다. 총선이 끝난 후 국민의당이나 더민주 의원들이 결선투표제 등을 언급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는 그만큼 당의 위기감이 심각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대로라면 질 것이라는 패배의식도 팽배해 보인다. 차기 주자들로선 언제 치고 나갈지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무성 전 대표의 총선 득실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여소야대로 인한 박근혜 대통령 레임덕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김 전 대표 대권 행보에 유리할 것이란 관측도 있지만 총선 패배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회의적 시선도 만만찮다. 김 전 대표 측근들은 “이번 총선에서 김 전 대표가 주장한 상향식 공천을 했다면 이 지경까지 오진 않았을 것이다. 공천 파동을 일으킨 친박 핵심부의 책임”이라고 항변하지만 어찌됐건 당 얼굴인 대표로서의 정치적 책임은 피하기 힘들다.
여권 지지기반인 보수 진영에서 ‘김무성 대체재’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는 점도 김 전 대표에겐 뼈아프다. 지금까지 김 전 대표는 새누리당의 거의 유일한 대권 주자였다. 그런데 이번 총선 패배로 김 전 대표로는 내년 대선이 힘들어졌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선 7월경으로 예정된 것으로 알려진 김 전 대표의 대선 캠프 출정식이 무기한 연장될 것이란 말도 들린다. 이는 총선 후 조사된 대선주자 지지율에도 잘 나타난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4월 28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김 전 대표는 6.3%로 4위를 기록했다. 총선 전에 비해 1.5% 하락한 수치다. 각각 1, 2위를 차지한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물론 오세훈 전 서울시장(10.6%)에게조차 밀렸다. 김 대표가 여권 부동의 1위 자리를 내준 것이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어차피 야당 지지자들은 김 대표에게 별 관심이 없다. 그렇다면 여당 지지율이 빠진 것인데 이는 김 대표가 이끌었던 총선에서의 참패가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친박계 상처는 더욱 크다. 비박 진영에서 독주체제를 갖췄던 김 대표에 대항하기 위해 검토했던 잠룡들이 줄줄이 쓴 잔을 마셨기 때문이다. 총선 승리를 통해 대권 불을 지피려던 전략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우선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자신의 고향이자 새누리당 심장인 대구에서 김부겸 더민주 후보에게 패했다. 대구에 공천 역풍이 불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김 대표의 정치적 무게감을 생각한다면 그 내상이 깊을 수밖에 없다.
총선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종로에서 승리하면 친박계가 대선 후보로 밀 것이라는 소문이 돌며 주가가 상승했던 오세훈 전 시장도 기세가 한풀 꺾였다. 다만, 오 전 시장의 경우 박 대통령이 요직을 맡기거나 또는 7월 전당대회에 출마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진박’ 후보 안대희 전 대법관도 국회 입성에 실패하며 친박계의 기대감을 무너트렸다.
이쯤되면 정치권 시선은 자연스레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으로 모아질 듯하다. 친박이 ‘김무성 대항마’로 오래전부터 공을 들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친박계의 한계를 더욱 드러나게 해줬다. 한 친박 의원은 “반 총장만 바라보고 있다가 출마를 안 하면 어떻게 하느냐라는 말이 나왔다. 이는 친박뿐 아니라 새누리당 역시 마찬가지다. 총선 패배가 약이 됐다. 정신을 차렸다. 대권 주자를 제로베이스부터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여권 안팎에선 지금까지 구상해왔던 것과는 다른 차원의 대권 로드맵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현상 유지만 하면 대선은 무난하게 이기지 않겠느냐는 안일한 생각이 총선을 통해 깨진 결과다. 그 핵심은 김무성 반기문 등 기존의 차기 주자가 아닌 새로운 인물을 찾는 것이다. 이른바 ‘50대 기수론’이 불거지고 있는 배경이다.
또한 여기에는 잠룡들의 부족 현상도 한몫을 했다. 국회 의석수뿐 아니라 내년 대선에 출마할 가능성이 있는 후보군의 질과 양 역시 야권이 우위를 보이고 있다는 얘기다. 현재 야권엔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를 제외하곤 주요 잠룡들이 대부분 50대다.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 김부겸 더민주 당선자, 안희정 충남지사 등이 있다. 다음은 새누리당 전략통으로 꼽히는 한 보좌관의 말이다.
“의석수만 그런 게 아니라 대권 후보들도 여소야대 현상이다. 우리는 차기 주자들이 이번 총선에서 상처를 입었다. 그런데 야당을 봐라. 안철수·문재인·박원순·김부겸·안희정 등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즐비하다. 새누리당으로선 이들과 겨룰 경쟁력 있는 새로운 후보를 발굴해내야 하는데 50대 기수론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상대 후보가 같은 50대일 경우 ‘맞불’을, 만약 나이가 많다면 우리는 ‘세대교체’를 내세울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원희룡 제주지사와 남경필 경기지사.
특히 새누리당은 그동안 ‘선거의 여왕’과 ‘선거의 남왕’으로 통했던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고도 참패했다. 새로운 인물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도권에서 승리한 새누리당의 한 당선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박근혜 간판으로 내년 대선은 힘들다. 당이 대통령 탈당을 요구해야 한다”면서 “50대 기수들은 당·청 수평관계 정립 차원에서 ‘탈 박근혜’를 기치로 내걸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 측면에서 유승민 의원 스탠스가 주목을 받고 있다. 50대(1958년생)인 데다가 총선 과정에서 친박과 대립각을 세우며 전국적인 인지도를 쌓았기 때문이다. ‘핍박받는 정치인’ 이미지도 향후 행보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유 의원이 50대 기수론의 최적임자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유 의원은 <리얼미터>가 총선 직전인 4월 20일 발표한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17.6%를 차지하며 김 전 대표(10.7%)를 제치고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유 의원은 한때 7월 전당대회 출마가 점쳐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내년 대선 출사표를 던질 것이란 견해가 우세하다. 유 의원과 가까운 한 새누리당 의원 역시 “(유 의원) 알람은 내년 12월(대선)에 맞춰져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남경필 경기지사와 원희룡 제주지사도 50대 기수론의 수혜를 입을 수 있는 후보들이다. 둘은 “도정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진 않고 있지만 여건만 조성된다면 차기에 도전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남 지사가 최근 ‘여의도 책사’로 불리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을 영입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서 받아들여진다.
취재과정에서 접촉한 남 지사와 원 지사 측은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큰 꿈을 꾼다. 국민들 요구가 있다면 출마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 지사 관계자는 “제주도를 맡고 있는 원 지사가 먼저 입장을 표명하긴 힘들다. 제주도민들이 “이만하면 됐다. 서울 가서 큰 정치를 하라”고 이해를 해 주면 그때 가서 움직이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이밖에 총선에서 패배하긴 했지만 여전히 잠룡군에 분류되는 오세훈 전 시장과 얼마 전 대선 출마 의사를 시사했던 김기현 울산시장 등도 50대 기수론의 일원으로 꼽힌다. 새누리당의 한 친박계 중진 의원은 “기존의 대선 후보로는 안 된다는 인식이 50대 기수론 밑바탕에 깔려있다. 유승민 남경필 원희룡 등은 우리 당의 훌륭한 자산이다. 이들 외에도 문호를 개방해 새로운 인물들을 영입해 치열한 내부 경쟁을 거쳐야만 대선에서 희망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