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이제 저 때문에 울지 마세요”
▲ 경산 볼파크에서 훈련 중인 조진호를 만났다.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24개월간의 공익근무를 마치고 제대한 조진호는 1년 전부터 관심을 나타낸 삼성라이온즈 볼파크에서 훈련을 재개하며 입단 테스트를 준비했다. 결국 지난 5일 삼성이 조진호와 연봉 5000만 원에 입단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하면서 정식으로 삼성 유니폼을 입게 됐는데 연봉보다도 다시 유니폼을 입었다는 사실에 조진호는 감동했다.
인터뷰를 하기 전 경산볼파크 선수단 식당에서 조진호와 같이 점심 식사를 했다. 그런데 조금 있다 김응용 사장이 식당으로 들어와선 인사를 하는 조진호에게 “아직도 수염 안 깎았냐?”며 한마디 하고 지나갔다. 파란색 운동복을 입은 조진호도 낯설었고 조진호가 김응용 사장과 같이 있는 장면도 생경스럽기만 했다. 하긴 조계현 코치가 조진호의 몸 상태에 대해 이래저래 말 하는 부분도 자연스럽게 와 닿지 않았다. 왜 이럴까. 아마도 기자가 야구선수 조진호를 만날 준비가 안 돼 있었나보다.
재입대 전 조진호와 ‘취중토크’를 하며 흠뻑 취해버렸던 기자, 인터뷰하다가 신분을 망각하고 선수 앞에서 울어버렸던 지난 일들이 떠올랐고 병역비리 문제로 구치소에 수감 중일 때 면회갔던 기억도 새로웠다. 언급하기조차 싫은 과거를 이렇게 끄집어 낼 수 있는 이유는 파란색 유니폼의 조진호가 너무 환하게 웃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진호는 “공익근무를 시작하면서 바로 팔꿈치 수술을 했다. 만약 야구를 포기했더라면 수술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퇴근하면 곧바로 헬스클럽으로 가서 꾸준히 재활훈련을 했는데 혼자하다보니 어려운 점이 많았고 회복도 더뎠다. 그래도 꼭 뭔가 보여주고 싶었다. 조진호라는 사람이 야구선수라는 사실을 말이다.”
SK 시절 인연을 맺은 김평호 코치(삼성)의 도움으로 삼성에 입단 테스트를 받을 수 있었다는 조진호는 제대하기 전 휴가를 얻어 경산볼파크에 들어왔을 때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두려움 반, 설레임 반이었다. 과연 다시 유니폼을 입을 수 있을까. 삼성에서 날 뽑아줄까. 경산에 온 지 2주, 3주가 지났는데도 구단에서 계약하자는 얘기가 안 나와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는데 지난 5일 계약 통보를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조진호는 계약 소식을 듣고 곧장 대전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아들의 남다른 인생역정에 눈물 훔치신 나날이 너무 많아 항상 불효자의 심정이었던 조진호로선 막내 아들이 다시 마운드에 서는 걸 소원했던 어머니에게 제일 먼저 소식을 전하고 싶었던 것.
“우실 줄 알았는데 안 우셨다. 하긴 그동안 너무 많이 우셔서 기쁜 일인 만큼 울지 않으셨던 것 같다. 항상 웃게 해드리고 싶은데…. 어머니 생각만 하면 마음이 아프다.”
오랜만에 훈련에 합류하다보니 몸이 뜻대로 안 따라 줄 땐 두려움도 스쳐 지나간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조계현 코치가 “천천히 몸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하고 절대 서두르지 말라”고 조언을 해주는데 어린 시절 우상과도 같았던 선배와 한 팀에서 만난 게 신기할 따름이라고 한다.
▲ 고무공을 주고받으며 체력단련을 하는 모습. 그는 훈련 한 달여 만에 뱃살이 쏙 들어갔다며 웃음을 지었다. | ||
조진호는 원광대 4학년 시절인 1998년에 계약금 80만 달러를 받고 미국 보스톤 레드삭스에 입단했다. 입단 첫 해 루키, 싱글A, 더블A 등을 거쳐 그 해 7월 5일 시카고 화이드삭스와의 홈경기에 선발로 등판, 인상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그러나 두 시즌 이후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다 2002년 8월, SK로 전격 복귀했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과 코칭스태프와의 갈등으로 2004년 11월 방출 수순을 밟게 된다.
“처음부터 너무 쉽게 풀렸고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빨리 올려지면서 ‘메이저리그도 별 게 아니다’란 자만심과 나태함이 날 무너뜨렸다. 그때 고생부터 배우고 어려움을 맛봤더라면 내 야구인생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이젠 더 이상 아플 일도 없고 어떤 역경이 와도 다 이겨낼 자신이 있다.”
삼성에서 훈련을 시작한 지 한 달여 만에 8㎏이 빠졌다는 조진호는 고된 훈련으로 뱃살이 쏙 들어갔다며 기분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선동열 감독을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아직 못 뵈었다. 공을 제대로 던지기 전에는 뵙고 싶지 않다”는 각오를 내비쳤다.
조진호가 1군 마운드에 서는 날, 그 자체만으로도 ‘드라마’가 될 것 같다는 말에 수염이 덥수룩한 그 남자는 하늘을 보며 이렇게 되뇌인다. “연예인 중에서 저랑 친한 정경호란 동생이 있어요. 경호가 하는 말이 제가 야구장에서 던지는 걸 보면 울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후회없이, 아쉬움 없이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이제 제 인생은 모 아니면 도잖아요.”
대구 경산=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