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 밖은 ‘봉숭아 학당’ 수준?
▲ 정몽준 축구협회장, 이영무 기술위원장, 조영증 기술교육국장(오른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이운재(수원 삼성) 등 ‘음주 4인방’이 징계를 받았던 지난 2일, 한 축구인은 조롱 섞인 말투로 대한축구협회를 비판했다. 일부 축구협회 인사들의 무능함을 꼬집으며 상벌위에 회부될 장본인은 축구협회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시 대한축구협회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어느 체육단체보다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가장 많은 재정을 가지고 ‘부티나는’ 행정을 펼치는 것 같지만 정작 그 안을 들여다보면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 그 내용을 알아본다.
#뻔뻔한 기술위원회
이영무 기술위원장은 2005년 12월 8일 번드르르한 청사진을 내놓으며 취임했다. 하지만 이 위원장의 기술위가 내놓은 결과물은 2006년 독일월드컵 16강 진출 실패,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및 2007년 아시안컵 결승 진출 좌절이었다.
기술위는 독일월드컵 경기 내용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가 나오기도 전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대표팀 새 감독을 뽑았다. 그러고는 약 1년 정도가 흐른 뒤 감독을 내보냈다. ‘이것이 정답’이라고 외쳐놓고 ‘아닌가?’하는 식이었다.
자신들이 뽑은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물러났지만 기술위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이 위원장은 기술위가 대표팀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때마다 “일단 일을 마무리 하고…”라며 어물쩍 넘어갔다.
기술위는 지난 8월 말 부산 아이파크 감독으로 취임한 지 17일밖에 안된 박성화 감독을 올림픽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하는 무례를 범했다. 겉으로는 리그와 대표팀의 상생을 외치면서도 리그를 안중에도 두지 않는 거만함을 보였다. 기술위는 K리그 팬들의 분노가 가시기도 전에 잉글랜드에서 유학 중인 인천 유나이티드 장외룡 감독에게 비밀리에 19세 대표팀을 맡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감독 보쌈’이 웬 말이냐는 여론과 언론의 비판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또 다시 황당한 영입을 시도한 것이다.
축구인들은 F학점 기술위를 보며 이대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비상근에 무보수인 기술위원들을 무작정 다그치는 건 진정한 해결책이 아니다”라며 “기술위의 권한을 강화해 준 뒤 책임을 묻는 게 옳다”라고 제안한다. “무색무취한 관리형 기술위원장과 분석능력이 떨어지는 위원들 대신 세계축구의 흐름에 밝은, 일하는 인물들로 기술위를 구성해 협회에 상근하게 하고 일정 수준의 급여를 지급해 이들의 노력에 대한 금전적인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조언한다.
#끝나지 않은 당파싸움
조영증 기술교육국장 취임으로 진화가 됐지만 한동안 기술위와 기술국 사이에는 불협화음이 있었다. 엇박자의 시작은 이영무 기술위원장과 강신우 기술국장의 알력에 있었다. 유소년부터 대표팀까지 선수 발굴과 육성이 주 업무인 두 조직은 상부상조는커녕 서로 헐뜯고 무시했다.
일이라도 똑 부러지게 해놓고 싸웠으면 그나마 욕을 덜 먹었겠지만 두 조직은 그렇지 못했다. 기술위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무능력을 드러냈고 기술국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기술국은 올해 초 2006년 독일월드컵 기술보고서를 뒤늦게 내놓으면서 협회 직원들에게 수고비를 주고 국제축구연맹(FIFA)이 발간한 리포터를 베꼈다. 일부만 기술국이 작성했다. 기술국은 독일월드컵 때 당시 대표팀을 이끌던 딕 아드보카트 감독에게 토고, 스위스, 프랑스 등 상대팀들에 대한 분석자료를 건넸다. 하지만 아드보카트 감독은 어찌된 일인지 기술국이 건넨 자료보다는 지인들을 통해 얻은 자료를 토대로 대회를 준비했다. 축구협회 안팎에서는 아드보카트 감독이 기술국이 건넨 자료에 실망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축구협회는 기술위와 기술국의 알력싸움이 심화되자 9월 28일 2007 제3차 이사회를 열고 기존의 기술국과 기술교육부를 통합한 기술교육국을 신설하기로 하고 그 아래에 기술부와 대표팀지원부, 교육부를 두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기술위로부터 본업보다는 방송에 더 열심이라는 비판을 받은 강신우 기술국장은 사표를 냈다. 하지만 조직 개편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기술국과 기술위 임무가 중복됐던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아 불화의 불씨는 남은 상태다.
#의혹 짙은 후원사 선정
대한축구협회는 지난달 23일 이사회를 열고 각급 대표팀의 유니폼 후원사로 나이키를 선정, 승인했다. 계약조건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년간 현금 250억 원(연 62억 5000만 원), 현물 240억 원(연 60억 원)을 지원받는 것이다.
대한축구협회 수뇌부는 대박 계약을 자축했지만 협회 노동조합의 반응은 달랐다. 김정훈 협회 노조위원장은 “공정하고 투명한 협상을 진행해야 할 협회 집행부가 특정 후원사 봐주기를 하고 있다는 의혹이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가 지적한 유니폼 후원사 계약 의혹은 크게 세 가지다. 경쟁업체의 참여를 원천적으로 봉쇄한 계약 진행 과정이 그 첫 번째다. 협회는 기존 후원사인 나이키와 9월 30일까지 배타적 협상 기한이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별다른 이유 없이 배타적 협상 기한을 10월 22일까지 연장했다.
축구협회가 먼저 후원금액(현금)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도 노조가 고개를 갸웃거린 대목이다. 노조는 “협회가 나이키 외에 아디다스라는 협상카드가 있음에도 특정업체와 수의계약을 하는 듯한 행동을 취했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축구협회가 ‘블랙아웃’ 조항에 발목이 잡혀 나이키에 끌려 다니는 것 같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블랙아웃은 후원사 외에 브랜드가 노출되지 않도록 축구화의 상표 마크를 검은 펜으로 지운데서 유래한 말이다.
나이키는 협상 과정에서 축구협회가 블랙아웃 조항을 위반했다며 재계약을 하지 않을 경우 위약금 청구소송을 내겠다고 압박했는데 노조는 “이미 1998~2002년 나이키와 1차 계약 기간에 블랙아웃 조항이 있었는데도 2002년 2차 계약을 할 때 다시 이 조항에 발목이 잡혔다”며 협회의 어정쩡한 일처리에 물음표를 달았다.
축구협회는 노조의 지적을 받고 “우선협상권 조항은 국제축구연맹(FIFA)과 국제올림픽총회(IOC) 같은 스포츠 단체들이 공식 후원 계약을 진행할 때 관행적으로 하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허울뿐인 협회 수뇌부
지난 봄 정몽준 회장은 입원 중인 가삼현 사무총장 대신 보고하러 들어온 축구인 출신의 한 협회 임원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알맹이가 없는 보고서를 내민 채 얼어 있는 그를 보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정 회장은 이후 몇 명의 임원에게 총장 대행 업무를 맡겼지만 모두 시원치 않자 현대 출신인 고승환 대외협력국장에게 협회 행정 임시 지휘봉을 맡겼다. 현대 출신의 국제통인 가 총장의 공백으로 축구협회가 휘청거린 일화는 개혁이 어디부터 시작돼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줬다.
축구협회를 축구인이 이끌어야 한다는 허울 좋은 주장만 앞세우면 축구협회는 언제나 ‘봉숭아 학당’ 수준이다. 현장 경험과 행정 능력을 겸비한 축구인이 없다면 행정은 행정 전문가에게, 기술 관련 업무는 축구인 출신에게 맡기는 행정과 기술의 분리 인사가 필요하다.
대전 시티즌 김호 감독은 최근 “누가 뭐래도 정몽준 회장은 한국축구에 큰 공헌을 했다. 하지만 문제는 회장의 눈과 귀를 가리는 사람들”이라며 능력도 없이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축구협회 일부 임원들의 퇴진을 요구했다.
전광열 스포츠칸 축구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