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못쓸바엔 차라리 떠나련다”
지난 9월 20일 수원구장에서 현대와 두산의 경기가 열렸는데 이날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개인통산 1000경기째를 맞은 홍성흔은 5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했다. 첫 타석에선 2루 땅볼. 그리고 4회 두 번째 타석이 돌아오자 가차 없이 지명타자 최준석으로 교체됐다. 개인으로 기념비적인 1000번째 경기에서 한 타석만 치르고 교체되는 수모를 당한 것이다. 이날 경기는 홍성흔의 팀내 입지가 어떤지를 잘 보여준 사례였다. 올시즌을 치르면서 두산의 주전 포수 마스크는 명백하게 3기수 아래인 채상병에게로 넘어갔다. 홍성흔은 지난 6월 4년 만에 2군행을 겪는 등 온전치 못한 시즌을 치렀다. 올시즌 성적은 2할6푼8리에 5홈런 39타점. 주로 시즌 중반 이후 지명타자 혹은 대타로 나간 게 전부였다. 예전처럼 포수 마스크를 쓰고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난해 홍성흔은 오른쪽 발목과 오른쪽 팔꿈치에 칼을 댔다. 골칫거리인 통증을 근본적으로 치료해 포수로서 롱런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2루 송구 능력이 아플 때와 비교해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송구 능력은 포수 가치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 중 하나. 이미 오래 전부터 홍성흔에게 1루수 전업을 권고해왔던 김경문 감독은 채상병을 중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주전 교체를 진행시킨 것이다.
▲ 지난 10월 한국시리즈에서 패한 후 준우승 트로피를 들어 보이는 홍성흔.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홍성흔은 99년 두산에서 데뷔해 그해 신인왕에 올랐고,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두 차례 차지했다. 잘생긴 외모 덕분에 여성 팬도 많다. 무엇보다 쾌활하고 농담을 즐기는 성격이 장점이다. 홍성흔은 야구장에서 기자와 만났을 때 “솔직히 이제는 나이도 있고 와이프와 가족이 보는데 너무 입으로만 떠드는 선수로 비쳐지면 안될 것 같다”는 속내를 털어놓은 적이 있다. 팀 분위기를 위해 누군가는 나서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떠버리’를 자청했을 뿐 그 역시 야구만으로 평가받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음은 당연하다.
아무리 공손하게 부탁했다 하더라도 선수가 먼저 트레이드를 요구하는 건 상당히 드문 일이다. 9년간 소속됐던 두산에서 뛰쳐나갈 수도 있다는 홍성흔의 결심은 굳건해 보인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