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대표, 전대 앞둔 7~8월께 ‘대선 판흔들기’ 정계개편 나설 수도
그간 친문(친문재인) 등 범주류와 비주류가 ‘7월 말~8월 초’ 안과 ‘12월 말~1월 초’ 안을 둘러싸고 제로섬 게임을 벌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파국만은 피하자는 일종의 절충점을 찾은 셈이다. 이로써 4·13 총선을 앞두고 손을 잡았던 김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는 ‘시한부 동거체제’로 전환했다. 꼬박 4개월 남았다. 이 기간 차기 대권을 겨냥한 이들의 대결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2018년 체제를 향한 새판짜기가 도래할 수 있다는 얘기다.
김종인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
“당 대표에 관심 없다. 인격과 예의를 갖춰라.”
김 대표가 5월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대 국회 당선자·당무위원 연석회의에서 던진 말이다. 격론도 반발도 없었다. 각 계파 세력구도의 중대 분수령인 차기 당권 선출 시기를 둘러싼 논쟁에서 더민주 내 친노계와 비노계는 속전속결로 절충점을 찾았다. 범주류는 물론, 김 대표 측과도 가까운 한 재선 의원은 “(더민주에서) 이런 총회 결정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그만큼 김 대표의 행보는 세간의 예상을 깼다. 실제 김 대표는 이 자리에서 자진 퇴진 의사를 시사했다. 낭떠러지에 걸친 당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퇴로를 연 것이다.
다만 그는 당 주류 측을 겨냥, “더민주에 올 적에 당 대표가 되려는 생각하고 온 사람이 아니다”, “비대위 체제를 연기해달라고 요청한 적도 없고 연기하는 걸 바라지도 않는다”, “한시라도 (빨리) 비대위를 해산하고 떠날 용의를 가지고 있다”며 날을 세웠다. 연석회의가 비공개로 전환하자, 김 대표는 본청 2층 당 대표실로 돌아왔다. 그 시각 연석회의가 열린 의원회관에선 총 5명의 의원들이 발언에 나섰지만 이견은 없었다. 그렇게 ‘김종인 시한부 지도부’ 체제는 37분 만에 박수를 통한 만장일치로 결정됐다.
이는 당 주류와 비주류가 ‘윈-윈’하는 안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렸다. 김 대표 측 내부에선 애초 당 대표에 욕심 없었던 김 대표의 결단력이 더민주를 벼랑 끝에서 다시 구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 대표는 전날 측근들에 “(당 논란을) 내가 정리해야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다음 날 자진 퇴진의 문을 열었다.
김 대표는 당의 만장일치 결정 직후 일부 기자들과 만나 “(그동안) 내가 말한 그대로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당권이나 대권 모두 관심이 없다고 누누이 말한 것을 재차 강조한 셈이다. 김 대표 측 내부에선 친문계가 20대 총선에서 제1당을 만든 김 대표의 공을 폄훼하고 있다는 불만이 팽배했다. 한 관계자는 “총선 이후 정국은 ‘다시 경제민주화’ 아니냐”면서 “그런데도 당 주류가 김 대표의 보폭을 줄이는 자충수를 뒀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선 김 대표 측과 최대 주주인 친문계 측이 전대 시기를 놓고 사전에 조율한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전대를 통한 판 흔들기가 필요한 주류와 강제 퇴진 대신 ‘명예로운 사퇴’를 선택한 김 대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김종인 토사구팽’ 논란을 차단하기 위한 노력도 엿보였다. 더민주는 시한부 지도부 체제 결정 직후 김 대표를 원톱으로 하는 경제비상대책기구를 구성키로 했다. 박광온 대변인은 “김 대표가 ‘그 문제(경제비상대책기구)는 내가 직접 챙기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 제기된 탈당 및 비례대표 사퇴설을 일축한 것이다. 양측이 최종 승부를 2라운드로 넘기고 숨 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계파의 첨예한 갈등을 예고했던 전대 시기가 격론 없이 37분 만에 결정된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합의 추대 없이는 김 대표의 당권 유지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범주류 관계자는 “총선 임무가 끝난 마당에…”라며 “(김 대표가) 조직이 있는 것도 아니고…”라고 말끝을 흐렸다. 실제 20대 총선 당선자 123명 중 김종인계는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비노계 내부에서도 ‘김종인 대안론’을 둘러싸고 견해차가 적지 않다. 비노계 한 관계자는 “합의 추대 불가론은 물밑에서 꾸준히 얘기됐던 부분”이라고 말했다. 강제 퇴거 대신 명예로운 사퇴를 선택한 김 대표의 선택은 세력도 대중성도 없는 ‘한시적 지도부’의 운명이라는 얘기다.
관전 포인트는 정계개편 ‘시기와 방향’이다. 이는 시한부 체제인 ‘문재인·김종인’의 관계설정과 직결된 문제다. 일단 정계개편 시기는 거대 양당(새누리당과 더민주) 전대와 맞물린 7∼9월 초로 예상된다. 이때 여야 모두 메가톤급 정계개편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주인 없는 여권은 이 시기 청와대 낙인찍기 끝에 탈당해 생환한 유승민 무소속 의원의 복당 문제를 비롯해 친박(친박근혜)계와 비박(비박근혜)계 간 갈등이 극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민주 역시 친노계와 비노계의 사생결단식 대치가 불가피하다.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은 손학규 전 상임고문과의 연대설을 시작으로, 정계개편 과정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로 양당을 갈라치기할 가능성이 있다. 20대 총선을 통해 ‘새누리당·더민주·국민의당’의 3당 체제가 형성됐지만, 경우에 따라 어느 한쪽에 균열이 생길 수도 있다. 보수의 유승민 의원과 진보의 김 대표가 판을 흔드는 이른바 ‘제3의 길’이다.
정치권 안팎에선 4·13 총선 이후인 지난 4월 22일 김 대표와 국민의당 신임 원내대표로 합의 추대된 박지원 의원이 비공개 조찬회동을 하자 더민주 균열이 국민의당 세력 구축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전망한다. 김 대표가 시한부 지도부 체제를 받아들이면서 탈당 및 비례대표 사퇴에 선을 그었지만, 문 전 대표와의 전략적 제휴 관계가 시한부 동거 체제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양측의 결별은 시간문제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숨 고르기에 들어간 김 대표가 여의도 발 정계개편이 본격화하는 7∼8월쯤 2017년 대선판을 흔들기 위한 정계개편에 전격적으로 나설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명분은 ‘도로 친노·운동권 정당’, ‘경제민주화 후퇴’ 여부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손을 맞잡았던 김 대표는 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에 대한 의지를 보이지 않자 미련 없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소신행보가 김 대표의 트레이드마크다. 정치적 상황은 김 대표의 원심력을 이끄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더민주는 20대 국회 첫 원내대표로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 핵심인 우상호 의원을 선출했다. ‘도로 운동권 정당’으로 회귀하는 변곡점이 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정기국회 직전 최대 화두는 경제민주화다.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의 3대 대형 조선사에 대한 임원 감축을 시작으로 좀비기업의 구조조정이 초읽기에 돌입했다. 그 어느 때보다 경제이슈의 위력이 강하다. 더민주 주류의 토사구팽에도 ‘김종인 역할론’이 끝나지 않았다는 얘기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김 대표가 더민주의 수권정당화 실현이 어렵다고 판단한다면, 문 전 대표와 전면전을 선언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물과 기름’ 사이인 문 전 대표와 김 대표의 벼랑 끝 대결이란 시한폭탄의 작동이 시작된 셈이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