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우의 백토스] 코트 떠난 ‘갈색 폭격기’ , 신진식

“세상살이에 홀로서기… 리베로 변신 중”

	▲ 신진식은 어학연수를 위해 다시 가족과 함께 호주로 떠난다. 이종현 기자 [e-mail]

<일요신문>에선 열기를 더해가는 프로배구 시즌 동안 김상우 KBS N 해설위원과 함께 ‘김상우의 백토스’란 인터뷰 코너를 진행합니다. 김상우 위원은 삼성화재 출신으로 지난 12월 16일 신진식 방지섭과 함께 은퇴식을 가졌습니다. 오랜 선수 생활을 마치고 해설위원으로 맹활약 중인 김상우 위원의 새로운 변신에 많은 관심과 응원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

12월 16일 대전 충무체육관. 홈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늘 찾았던 체육관이 이 날은 유독 낯설게 느껴진다고 한다. 유니폼이 아닌 양복을 입어서 그런가. 삼성화재 경기 후 은퇴식이 예정된 터라 깔끔하게 양복을 차려 입었지만 가장 큰 이유라면 두 사람이 전혀 다른 신분으로 나타났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과 프로팀에서 오랫동안 한솥밥을 먹으며 남다른 ‘우정’을 쌓았던 두 남자. 잠시 후 똑같이 은퇴식을 치르는 입장이지만 한 사람은 인터뷰이로, 다른 한 사람은 인터뷰어라는 낯선 상황이 설정됐다. 11월 초 어학 연수 차 호주로 출국했던 ‘갈색 폭격기’ 신진식을 김상우 위원이 은퇴식 전에 만나 인터뷰했다.

김상우(김): 진식이 얼굴 보니까 기분은 좋은데 이렇게 만나니까 진짜 쑥스럽다. 너도 그렇지?

신진식(신): 형, 난 꿈에도 생각 못했어. 진짜 어색하다. 이젠 형이 취재 기자나 마찬가지네.

김: 취재 기자는 무슨….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네가 첫 ‘타자’라는 게 신기하다. 호주 간 지 한 달 정도 지났나? 그동안 바쁘게 보냈지?

신: 5주 정도 됐어. 공부보다 생활 기반 마련하느라고 정신없었지. 집 구하고 차 장만하고 전화, 인터넷 등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바쁘게 뛰어 다녔거든. 이번엔 가족들도 함께 출국해. 가족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미리 준비해 놓느라 좀 힘들었지.

김: 난 네가 호주 간다고 했을 때 길 잃어 버릴까봐 걱정했는데 잘 찾아갔네(웃음).

신: 형, 생각해보니까 혼자 비행기 타고 외국 나간 게 그때가 처음이었어. 생활도 그래. 항상 정해진 훈련 프로그램에 맞춰서 움직였고 밥도 정해진 시간에 먹었잖아. 그런데 호주에선 내가 알아서 일어나야 하고 밥도 알아서 사 먹는 등 시간을 내가 조절해야 했어. 그게 처음엔 혼란스럽더라구. 호주에 나 혼자만 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지.

김: 배구 선배들 중에서 은퇴한 뒤 외국으로 영어 공부하러 갔던 분들이 꽤 있었지? 그런데 큰 성과는 거두지 못한 걸로 기억나. 진식이 넌 어때?

신: 유학 기간을 2년으로 정해놨지만 변동이 있을 수 있어. 2년 동안 영어를 완전정복할 수는 없으니까. 상황에 따라 2년 안에 돌아올 수도 있고 2년을 넘길 수도 있고…. 노력해봐야지. 그런데 공부라는 게 힘들더라구. 운동하면서 책과는 담 쌓고 지냈잖아. 호주에서 늘어난 건 한숨과 담배뿐이야(웃음).

김: 진식아, 이건 꼭 밝혀야 할 사항이야. 네 나이가 ‘보도용’ 나이랑 ‘비보도용’ 나이랑 차이가 있잖아. 진짜 나이가 몇 살이야? 옛날에는 동사무소에 웬 불이 그렇게 많이 났는지…하하.

신: 어머니가 점 보러 가실 때 써내는 생년월일은 73년 7월생이야.

김: 그러니까 점괘가 안 맞지.(일동 폭소)

김: 이제 나이는 확실히 밝혀진 거네. 선수 생활하면서 진식이한테 가장 부러웠던 게 체력이었어. 어떤 이들은 널 두고 체력의 화신이라고도 하던데, 비결이 뭐냐?

신: 형도 알다시피 특별한 게 없어. 내가 육상 출신이라 그런지 뛰는 데엔 자신 있었거든. 이전에는 힘들게 뛰고 나면 몸이 개운했어. 그런데 어느 순간부턴 뛰면 뛸수록 개운한 맛이 없어지더라구. 맛이 갔다는 증거지. 체력 유지 비결? 술? 담배? ㅋㅋ 감독님 아시면 뭐라 하시겠다.

김: 진식이의 배구 인생을 힘들게 했던 ‘결정타’가 있었니? 널 나락으로 떨어트린 뭔가가 있었을까?

신: 아무래도 2001년에 다친 발목 부상이 결정타였지. 발목이 아프니까 점프를 제대로 못하고 팔로만 때렸거든. 어깨에 부담이 올 수밖에…. 결국 2004년에 어깨 수술까지 받았잖아. 수술하고 재활하는 데 1년이 걸렸어.

김: 배구계에선 신치용, 김호철 감독님이 유명한 라이벌이시잖아. 선수들 중에는 진식이랑 후인정의 라이벌 관계가 만만치 않았어. 라이트와 레프트를 보니까 10년 이상 네트를 사이에 두고 맞붙었잖아.

	▲ 지난 16일 신진식(오른쪽) 김상우의 은퇴식 직전, 한 명은 미래의 지도자로 한 명은 해설위원으로 인터뷰 자리를 가졌다.

신: (후)인정이 하면 ‘지긋지긋’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 서로의 스타일을 너무 잘 아니까 시합 때는 짜증이 날 정도였지. 대학 때는 인정이랑 친하게 지냈어. 실업팀 가면서 자주 연락을 못 했는데, 그렇잖아 형, 우리가 허구헌 날 우승하니까 괜스레 미안해지는 게 연락을 못 하겠다구. 재작년인가? 현대캐피탈이 처음으로 우승한 날, 인정이가 전활 해왔어. 자기는 우승하니까 친구인 내가 너무 보고 싶더래. 그날 밤에 만나서 술 진탕 먹고 더 친해졌지. 나보다 인정이가 나은 놈이야. 난 우승을 9번이나 해도 전화 못 했는데…. 난 은퇴를 했지만 인정이는 오랫동안 코트에서 뛰었으면 좋겠어.

김: 진식이의 꿈은 지도자가 되는 거잖아. 어떤 스타일의 지도자가 되고 싶니? 지장? 용장? 덕장?

신: 난 그저 선수들을 잘 가르치는 지도자가 되고 싶어. 김호철 감독이 오셔서 현대캐피탈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듯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감독이 된다면 너무 좋겠지. 신진식만의 새로운 지도자 형태를 보여주고 싶어.

김: 조금 있으면 은퇴식인데 만약 다시 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할래?

신: 저 그냥 은퇴식 할래요(웃음). 지금 내 몸 상태론 절대 다시 뛸 수 없어. 근육이 다 빠져 나갔는데 뭘. 이젠 걷는 것도 힘들어요(일동 폭소).

시종일관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배구계 ‘별’들의 인터뷰는 유쾌하게 마무리 됐다. ‘선수’끼리만 알 수 있는 공감대가 형성됐던 김상우 위원과 신진식. 지금은 서로 다른 제 2의 인생에 도전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들의 레이스가 맞닿는 순간이 있을 것만 같다. 지도자로서 말이다.

정리=이영미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