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당의 추억’ 또 다시 리플레이?
▲ 국회의원 5명의 미니정당 국민중심당이 쪼개질 위기에 처했다. 1월 17일 중앙당 창당대회의 이인제 의원(왼쪽)과 심대평 대표 모습. | ||
지난 14일 국중당 서울시당 대표인 이신범 전 의원이 시당을 자진 해산, 탈당을 선언했다. 서울시당은 해산결의문을 통해 “소수의 지도부가 자신의 출세를 위해 당과 지역기반의 자존심을 팔겠다는 의도를 노골화해 더 이상 존재의 이유가 없다”라고 선언했다. 이 전 의원은 “이인제 의원도 10월 탈당해 노선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신당을 창당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대 대상으로 한나라당 홍사덕 전 의원과 새정치연대의 장기표 대표를 거론했다. 이 전 의원은 신당의 모태가 될 ‘국민통합정당추진연대’(통합연대)를 발족할 예정이며 이인제 의원도 상임고문으로 여기에 참여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들이 세운 연대의 기치는 ‘반노비한’(반노무현 비한나라당)이다. 이 전 의원에 따르면 국중당의 경기 인천 강원 경남 시도당도 곧 해산절차를 밟고 통합연대에 참여할 것이라고 한다.
이인제 의원도 이런 움직임과 관련 최근 기자와 만나 “국민들은 보수와 진보의 낡은 틀을 깨고, 지역패권에 반대하는 새로운 제3 정치세력을 항상 원했다. 그런 희망이 92년 대선에서는 정주영씨를 통해서, 97년 대선에는 나 이인제, 2002년 대선에서는 정몽준 의원을 통해 표출된 것 아닌가”라며 “다음 대선도 마찬가지다. 제3세력 형성을 위해 노력하고 중심을 잡겠다”라고 말해 탈당을 거의 굳혔음을 시사했다. 이 의원은 “그동안 무기력하고 기회주의적인 모습만을 보여 온 심대평 신국환 공동대표 등 당 지도부와는 함께 갈 수 없다”고 소리를 높였다.
창당 9개월 만에 최대 위기를 맞은 국중당의 혼란은 5·31 지방선거 패배가 표면적 이유다. 이 의원은 “충청권을 기반으로 한 국중당이 지역에서 광역단체장 한 명도 못 건졌다. 선거 패배에 책임을 지고 지도부가 사퇴해야 한다”고 당을 비판했다. 이 의원은 “그러고도 심 대표가 개인의 이익과 출세만을 쫓아 당무회의에서 ‘당을 비싼 값에 팔려면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라는 말이나 하고, 야당인지 여당인지 구별도 못하며 현 정부에 대해 애매한 입장만 취해왔다”며 “당직에 자기 사람들을 심어 사실상 국중당을 사당화했다”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심대평 공동대표 측의 생각은 이 의원과 다르다. 이욱열 사무부총장은 “당을 출범시키고 지금까지 내부의 적하고 싸워온 기분이다. 일반적인 상식에서 벗어나 지능적으로 당을 흔들어댔다”고 오히려 책임을 이 의원 측에 넘겼다. 이 부총장은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서도 이 의원과 다른 해석을 곁들였다. “광역 단체장은 당선시키지 못했지만 지방의원과 기초단체장을 포함해 89명이 당선됐다. 기대했던 만큼의 성공은 아니지만 완전한 실패로 보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 의원이 충남지사에 출마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불출마하지 않았느냐. 이 의원도 당을 위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공격하며 “심대평 신국환 공동대표 모두 정치 초년생 아닌가. 경험 많은 이 의원이 도와주지는 않고 분파적인 행동만 보여 왔다”고 말했다.
만일 이 전 의원의 시당 해산에 이어 이 의원이 탈당을 결행할 경우 국중당이 입을 정치적 타격은 심각한 수준이다. 먼저 분기당 3억 7000만 원을 받는 국고보조금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다. 지금도 빈사상태인 국중당으로서는 심각한 재정난을 겪게 될 것이다. 또한 정당법상 최소 5개 시도당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 전 의원이 서울시당을 해산했고, 이 전 의원의 주장처럼 경기 인천 강원 경남 시도당도 이에 동참한다면 국중당은 10개 시도당 중 절반이 해산돼 존립근거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충청권을 기반으로 캐스팅보트나 킹 메이커의 역할을 자임하던 국중당이 단일대오를 형성하지 못하고 벌써 삐걱거림으로써 대선이라는 큰 장에서 ‘장사’ 한번 못해보고 사라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의원도 탈당을 당장 결행하기는 어려운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여기저기 당을 옮겨 다닌 이 의원으로서는 다시 한번 탈당을 함으로써 ‘대통령 병’운운하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는데 부담을 느낄 뿐더러 신당 창당이 순조롭겠느냐는 점 때문이다. 이 의원 자신도 언제 탈당할 것이냐는 질문에 “생각 중이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 의원 측의 한 인사도 “원칙만 정해졌을 뿐 결단의 시기와 방향에 대해서는 아직 정해진 바 없다”라고 한발 물러서 있다. 한나라당 홍 전 의원과 새정치연대 장 대표와의 연대에 대해서도 이 의원은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고만 전했다.
실제로 당내에서도 이번 일을 계기로 국중당이 해체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데 동의하는 인사는 별로 없다. 국중당의 한 관계자는 “이인제 의원이 당장 탈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대선을 1년 넘게 남겨놓은 시점에서 지금 이 의원이 탈당해봐야 명분도 실익도 없다. 국회 일정상 정계개편 논의는 연말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인데 굳이 지금 탈당해 무소속으로 남아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등 정계개편의 주축이 될 정당이 꿈쩍도 하지 않는데 이 의원이 움직일 공간이 보이지 않는다. 이 의원이 일정한 세를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자금과 조직이 미미한 수준이어서 신당창당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최소한 정치판의 지각변동이 시작될 올 12월까지는 정중동의 행보를 유지하며 국중당에서 세를 키우는 것이 이 의원을 위해서도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심 공동대표가 이 의원의 탈당 움직임에 ‘개의치 않는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보인다.
당내에서는 일단 심 공동대표가 당무복귀를 선언하고 당의 중심을 잡아갈 것에 기대를 하는 눈치다. 심 공동대표는 그동안 대표직은 유지하고 있었으나 지방선거 책임을 지며 당무에 물러난 상태였다. 이 의원이나 심 공동대표나 충청권을 기반으로 제3의 독자적인 정치세력을 만들겠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하지만 한 명은 이를 기반으로 ‘킹’이 되려하고 또 다른 한 명은 ‘킹메이커’가 되려한다는 점이 둘 사이에 메울 수 없는 불화를 낳은 이유다. 지금 국중당으로서는 백척간두에 서있는 상황이다.
김지훈 기자 rapi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