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잘못은 오노가 아니라 심판이 했다
▲ 한국서 워낙 많은 아픔들을 겪었던 전재수 감독은 파벌과 관계 없이 선수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는 외국 생활이 만족스럽다고.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한국 쇼트트랙의 고질적인 파벌 문제로 인해 한국여자대표팀 코치에서 해임된 후 1년 여간 빙상장 밖을 떠돌다 2006년 캐나다대표팀 코치로, 그리고 2007년부턴 미국대표팀 헤드코치(감독급)로 활발한 활약을 펼쳤다. 한국에서 워낙 많은 상처와 아픔들을 겪었던 전 감독은 파벌과 관계없이 오로지 선수들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는 외국 생활이 크게 만족스럽다고 한다. 아폴로 안톤 오노가 한국 문화를 좋아하고 한국 음식 애호가라 전 감독을 잘 따른다며 기분 좋게 웃었다. ‘반칙왕’ ‘할리우드 액션’ 등의 타이틀이 붙은 오노에 대해서 전 감독은 우리 국민 정서에 반하는 의견을 나타내기도 했다. 지난 5일, 강릉에서 전재수 감독을 만났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출신인 전재수 감독은 2005년 4월 여자대표팀 헤드코치로 선임됐다. 남자대표팀의 헤드코치는 김기훈 코치였다. 동생인 전재목 코치가 남자 대표팀의 코치로 선임된 터라 당시 언론에선 한국 쇼트트랙 사상 최초의 형제 코치가 대표팀을 맡게 됐다며 뜨거운 관심을 나타냈다. 그러나 전 감독은 불과 3개월 후에 해임됐다. 당시 빙상연맹은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승부 조작과 폭행 방조 등으로 물의를 빚고 물러났던 윤재명 전 코치를 다시 남녀 국가대표 감독으로 선임했다. 이에 대해 안현수, 최은경은 물론 전재수 코치와 박세우 코치가 나서 강하게 반발했고 이들과 학부모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연맹의 납득할 수 없는 감독 선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집행부의 총사퇴를 주장했다. 이로 인해 전 코치는 곧장 빙상연맹으로부터 해임 통보를 받게 된다. 전재수 감독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밖에선 제자들의 앞날과 지도자의 사명감 운운하면서 밥그릇을 걷어차고 나왔지만 당시 아내가 둘째를 임신 중이라 가장의 실직은 가족들에게 커다란 불안감을 줬다. 그러나 수입보다도 연맹에 대한 실망감, 선후배 코치들에 대한 배신감, 그리고 한국에선 더 이상 내가 설 자리가 없다는 막막함이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불러일으켰다. 1년 가까이 폐인처럼 지낸 것 같다. 당시 날 살린 건 자전거였다.”
1년 동안 사람들과의 만남을 피하고 잠행을 거듭했던 전 감독은 우연히 알게 된 산악자전거 타는 재미에 푹 빠져 집이 있는 목동에서 속초까지, 또 땅끝마을 등으로 자전거 순례를 하며 그동안 마음 속 켜켜이 쌓아두었던 앙금들을 조금씩 털어 냈다고 한다.
“그렇게 조금씩 인간의 모습을 되찾아갈 때쯤 이전부터 관심을 보였던 캐나다대표팀에서 연락이 왔다. 한국 쇼트트랙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면 외국에서의 지도자 생활도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고 어쩌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가족들과 함께 캐나다로 향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캐나다에서의 지도자 생활은 예상했던 부분과 큰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헤드코치가 아닌 보조 코치를 맡다보니 전 감독이 뭔가를 해볼 수 있는 영역이 거의 없었던 것.
“헤드코치와 훈련 방법을 놓고 약간의 갈등을 빚고 있는 와중에 미국에서 먼저 대표팀 코치로 일하고 있던 장권옥 선배가 ‘러브콜’을 보내왔다. 미국팀의 헤드코치를 맡아달라는 부탁이었다.”
미국은 이미 장 코치가 선수들을 잘 훈련시킨 상태라 캐나다보단 부대낌이 덜했다고 한다. 장 코치는 자신이 헤드코치를 맡을 수도 있었지만 미국팀의 발전을 위해선 전 감독의 지도가 절실히 필요했다고 설명한다. 즉 쇼트트랙의 기술적인 측면과 선수들의 정신 자세를 고양시키는데 전 감독이 적임자라고 믿었고 결국엔 헤드코치 자리를 후배에게 양보한 셈이다. 장 코치는 “미국올림픽위원회에선 쇼트트랙 대표팀에 한국인 코치를 두 명이나 쓰는 데 대해 반대 의견도 있었지만 워낙 한국이 쇼트트랙 강국이다 보니까 결국 오케이 사인을 냈다”고 설명한다.
전재수 감독은 아폴로 안톤 오노에 대한 한국 내의 부정적인 이미지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 전재수 감독은 어시스트 코치인 선배 장권옥 코치와 함께 미국대표팀을 맡아 열정적인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 ||
전 감독은 2002년 동계올림픽에 대해서 색다른 시각을 나타냈다. 김동성이 금메달을 빼앗긴 건 오노가 할리우드액션을 해서가 아닌 심판의 홈어드밴티지, 즉 편파 판정 때문이라는 것.
“그 당시 난 미국과 전혀 관계없이 한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다. 즉 미국대표팀을 맡은 뒤의 생각이 아닌 2002년 때의 생각이었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 부분은 당시 SBS에서 중계 해설을 맡았던 김기훈 코치에게도 전화를 걸어 항의했던 부분이다. 오노는 반칙하지 않았다. 오노가 손을 들었던 건 김동성이 인코스로 들어오는 상황에서 자신은 김동성 몸에 닿지 않았다는 걸 알리기 위해 손을 든 거다. 당시 방송에선 오노가 김동성과 부딪히지도 않았는데 부딪혔다고 손을 들었다며 할리우드 액션 운운했다. 그러나 오노는 오히려 그 반대였다. 문제는 심판이었다. 동성이가 인코스로 들어올 때 심판의 보는 기준에 따라 반칙이라고 볼 수도 있는 장면이 있었다. 그렇다고해도 만약 한국이었다면 그런 상황에서 금메달을 빼앗진 못했을 것이다. 그곳이 미국이었고 미국 선수랑 한국 선수가 1위 다툼을 하는 상황에서 미국 선수에게 홈어드밴티지를 적용한 것이다.”
이 부분은 3년 후 김동성이 MBC 쇼트트랙 해설위원으로 변신한 뒤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말한 적이 있다. 김동성은 “2002년 동계올림픽 당시 상황은 오노의 잘못이라기보다 심판들이 잘못 봤던 것”이라며 “판정이 내려지는 동안 모든 관중들이 발을 구르면서 ‘USA'를 외치는 분위기였다”고 설명했다. 또한 김동성은 “마치 2002년 한일월드컵 때 한국 축구대표팀에 대한 붉은 악마의 응원전과 같은 상황이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전 감독은 2002년 사건 이후 지금 특급 스타로 떠오른 남자 연예인 K 씨가 인터넷 방송에 내보내기 위해 시애틀에 있는 오노의 아버지의 가게를 찾아가 머리를 자른 뒤 가게 안에 한국어로 욕을 써놓고 나왔다며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했다. 이 장면은 동영상으로 남아 있어 지금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오노를 오랫동안 지도한 장권옥 코치는 “오노는 그 후 생명의 위협을 느낄 만큼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냈다”면서 “그 일이 있은 후 국제 대회 참가 차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미국과 한국에서 경호원을 4명이나 붙일 만큼 신변 보호에 신경을 썼다”고 말한다.
전재수 감독은 한국 쇼트트랙에서 비일비재하게 이뤄지는 반칙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깨끗하게 플레이하는 선수는 안현수다. 현수의 테크닉은 세계 최고다. 다른 선수들과 부딪히지 않고 물 흐르듯이 경기를 펼친다. 그러나 그 외의 많은 선수들이 알게 모르게 반칙을 자행한다. 나 또한 한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할 때는 내 제자들을 살리기 위해 심판들 눈을 피해 반칙하는 기술을 가르친 적이 있다. 생존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만큼 쇼트트랙이 치열하다는 소리다. 또 그런 점에서 아폴로를 향해 ‘반칙왕’ 운운하며 비난하기가 힘들다는 얘기다.”
미국대표팀에서 아폴로 오노를 능가할 만한 선수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나머지 선수들이 1년 사이에 급속한 성장을 이뤘다는 게 한국 쇼트트랙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 중심에는 전재수 감독과 장권옥 코치가 있다. 전 감독은 2010년 동계올림픽에 모든 초점을 맞춘다고 밝혔다.
“외국 나가서 보니까 한국의 교육 방법과 훈련 방법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 선수들이 한국을 따라잡지 못하는 건 기량 차이도 있지만 정신적인 부분에서 한수 접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난 그런 점을 선수들에게 집중적으로 가르친다. 비록 한국인이지만 승부 세계에선 한국 선수를 상대로 승리를 따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재밌는 건 미국팀이 지는 건 마음 안 아파도 한국이 중국이나 캐나다를 상대로 패하는 건 밥을 못 먹을 정도로 우울하고 기분이 안 좋다.”
“한국이 금메달을 따고 좋은 성적을 내야 외국에서 일하는 지도자들의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한국 쇼트트랙 출신이라는 자부심은 정말 대단한 커리어다. 그걸 후배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