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먹은 떡값은… ‘와일드카드’로 결제
▲ WTF 조정원 총재가 마이타 공주를 올림픽에 출전시키는 과정에서 향응을 받았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 ||
마이타 공주는 아랍에미리트연합을 이루는 7개 에미리트 중 하나인 두바이의 국왕이자 UAE의 부통령 겸 총리를 맡고 있는 셰이크 무하마드 빈 라시드 알 막툼(58)의 딸이다. 170cm가 넘는 늘씬한 키에 빼어난 마스크를 갖췄다. 엄청난 부와 권력, 여기에 미모까지 갖춘 까닭에 태권도가 아니더라도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지난해 9월 미국의 경제 전문잡지 <포브스>가 뽑은 ‘결혼하고 싶은 독신 왕족 16인’에 포함됐을 정도다.
그런데 이 부러울 게 하나 없는 ‘공주님’이 요즘 태권도에 푹 빠져 있다. 태권도라기보다는 원래 동양무술에 심취했고, 태권도에 앞서 가라테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 출전했을 때 할리우드 톱스타 수준의 경호를 받고 호텔 특실에 매트리스를 깔고 훈련한 것이 화제가 된 바 있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서는 가라테 여자 60㎏이상급에서 은메달을 따기도 했다.
마이타 공주는 2008년 올림픽 본선 출전을 목표로 정했고, 이후 태권도에 전념하고 있다. 2007년 5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태권도선수권에 출전했고 비록 16강의 고비를 넘지 못했지만 워낙 신분이 신분이었던 만큼 화제를 모았다. 당시 현장에 있던 조정원 WTF 총재는 마이타 공주의 올림픽 출전을 돕겠다고 약속했고, 마이타 공주는 조 총재를 두바이에 초청하겠다고 제안했다.
마이타 공주는 일단 실력으로는 올림픽 출전이 어렵다. 세계예선이나 지역예선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총 8체급에 걸쳐 16명씩, 총 128명이 출전하는 올림픽 태권도에서 WTF는 4장의 와일드카드(연맹추천선수)를 행사할 수 있다. 이는 스포츠약소국의 올림픽 출전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로 IOC와 WTF의 협의사항이다. 조정원 총재는 이 중 하나를 공주를 위해 사용할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의심받게 된 것이다.
문제는 세계선수권이 끝나고 채 한 달도 안 된 2007년 6월에 발생했다. 조정원 WTF 총재와 경희대 태권도선수 10여 명은 두바이로 2주간의 전지훈련을 떠났다. 마이타 공주의 초청에 응한 것이다. 조 총재 등 일행은 현지에서 과분한 대접을 받았고, 항공료 숙박 선물 등 일체를 공주 측이 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의 한 태권도인은 “세계태권도연맹의 수장이라고 하는 분의 행보가 가슴을 아프게 한다.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공주의 초청에 세계선수권이 끝나자마자 두바이로 향했다. 세계연맹 총재가 공주의 개인적인 목적을 돕기 위해서 공식적인 업무가 아닌 방문을 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공주 측으로부터 엄청난 접대와 선물을 받았으며 경희대 태권도팀 또한 과분한 대우를 받았다고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한국 교민들이나 운동하는 사람들이 왕자나 공주라 하면 자존심 없이 접근해 개인의 목적을 위하여 아부하는 모습은 많이 봐왔다. 이번 일도 한국인으로 망신이며 세계연맹의 위상과 기강을 완전히 땅에 떨어뜨렸다고 할 수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일단 초청에 응한 것이 문제고, 총재와 특수 관계(조정원 총재는 조영식 경희대 창설자의 장남으로 총장을 역임했다)인 특정학교를 동원한 것이 문제로 추가 지적됐다.
▲ 지난해 도하아시안게임 가라테 여자 60㎏ 이상급에서 은메달을 따낸 마이타 공주. 연합뉴스. | ||
이런 과정이 지난 3월 13일 WTF 노조의 기자회견을 통해 구체적으로 폭로됐다. WTF 측은 3월 초 노조원 2명을 해임했는데 이에 반발한 노조 측이 WTF의 비리를 폭로했고, 여기에 공주파문이 적시된 것이다. WTF 노조 지부장을 맡고 있는 김동민 계장은 “노조원들을 해임한 사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향응 접대였다. 그런데 WTF 수장이 올림픽 추천선수를 미끼로 엄청난 향응을 받았다. 특정 학교 인맥이 판을 치고 부패와 비상식이 난무하는 현 WTF체제는 이미 전세계 태권도인의 신뢰를 잃었다. 올림픽 종목 유지, 세계 태권도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시급히 개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물론 WTF는 발칵 뒤집혔다. 일단 내용을 떠나 IOC와 협의사항으로 대외비로 분류된 올림픽 추천선수 명단이 공식발표 이전에 외부로 누출됐기에 경찰청 수사의뢰 등 강력한 대책을 준비 중이다.
김완표 WTF 총무부장은 “추천선수는 물론 WTF의 의견이 존중되기는 하지만 IOC, ANOC(국가올림픽위원회총연합회) 등과 협의 후 최종 결정하게 돼 있다. 대외비라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마이타 공주는 WTF의 제안이 아니었다”라고 해명했다. 또 조정원 총재와 경희대선수단의 두바이 호화 전지훈련에 대해서는 “태권도 국제교류를 위해 두바이 외에 다른 나라도 갔었다. 문제될 게 없다”고 일축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