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확보 차원 ‘제값 받을 수 있을 때’ 팔자 분위기
여기에 하이투자증권과 한화투자증권 등 예상치 못했던 회사들까지 매물로 나왔다는 얘기가 들린다. 뜻하지 않은 큰 장이 서며 여의도를 달구고 있는 대기업 계열 증권사의 잇단 매각설의 앞과 뒤를 살펴봤다.
올해 상반기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서 가장 뜨거웠던 이슈 중 하나는 대우증권과 현대증권 매각이다. 초대형 매물이던 대우증권의 경우 인수자가 단숨에 업계 1위에 올라설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과열 양상마저 보였지만 결국 미래에셋의 품에 안겼다. 현대증권도 예상 외 흥행을 기록하며 KB금융그룹을 새 주인으로 맞았다.
이런 현상에 고무된 것인지 5월 들어 여의도 증권가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증권이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우선 지난해 매각설이 제기됐다가 당사자가 손사래를 치면서 물밑으로 가라앉았던 SK증권 매각 재추진설이 눈길을 끈다.
SK그룹은 지난해 8월 지주사인 SK㈜와 SKC&C를 합병했는데, 이 과정에서 SKC&C 소유였던 SK증권 지분 10%를 통합법인인 SK㈜가 보유하게 됐다.
문제는 SK㈜는 금융지주사가 아니기 때문에 공정거래법상 금융사 지분을 보유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SK㈜는 내년 8월 전에 SK증권 지분 10%를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만 지난 2월 ‘원샷법’이라 불리는 기업활력제고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지분 처분 유예 기간을 1년 더 연장받았다.
하지만 시간을 조금 더 벌었을 뿐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또 SK증권의 경우 업계 중위권으로 그룹 위상과 다른 입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아예 이번 기회에 정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SK그룹이 사업재편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그룹의 사업영역이 통신과 에너지, 반도체 중심으로 바뀔 예정이어서 SK증권의 입지가 애매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들 두 회사 외에 최근 ‘핫매물’로 급부상하고 있는 증권사는 현대중공업 계열인 하이투자증권이다. 모 회사인 현대중공업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유동성 확보를 위해 매각에 나섰다는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계열사인 하이투자증권 매각설이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
하이투자증권 매각설은 최근 서태환 전 대표가 물러나고 주익수 전 하나금융투자 대표가 새로 투입된 이후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주 대표는 ‘9·11테러 생존자’로 증권가에서는 나름 유명인사지만, 현대중공업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다. 이번 하이투자증권 사장 부임도 헤드헌팅 회사를 통해 성사됐다.
게다가 주 대표는 취임 직후 M&A자문이 전문인 컨설팅 전문회사 EY한영에 경영컨설팅을 의뢰하고, 현대중공업에서 해양플랜트사업 구조조정을 맡았던 양동빈 전무를 하이투자증권으로 불러들였다. 금융권은 EY한영이 컨설팅을 맡고 증권업과 거리가 먼 양 전무가 투입된 것은 매각 사전작업일 가능성이 높다는 반응이다.
금융사 한 고위 관계자는 “M&A 전문가가 아니라도 한눈에 알 수 있는 수순”이라면서 “EY한영을 통해 매각협상에서 불거질 수 있는 우발채무 등을 파악하고 양 전무에게 구조조정을 맡겨 회사 몸값을 높이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실제로 양 전무는 최근 하이투자증권 직원들에게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인수자가 나타난다면 매각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말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하이투자증권 측은 “새로 부임한 대표가 경영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외부 컨설팅을 실시한 것뿐”이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그룹 내부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최근 현대중공업 노조가 직접 나서 하이투자증권을 매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지난 4월 말 기자회견을 통해 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사재출연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하이투자증권 등 불필요한 사업을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하이투자증권 노조가 현대중공업 노조와 긴급 회동을 하는 등 후유증이 일었다. 금융권에 따르면 하이투자증권 노조 집행부는 지난 어린이날 연휴 기간 현대중공업 노조 집행부를 만나 양사 간 협력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화투자증권도 잠재 매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인수협상 등 구체적인 상황은 진행되지 않지만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어 한화그룹이 매각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 증권가의 관측이다. 한화투자증권은 지난해 애널리스트들이 대거 회사를 떠나고 88억 원에 달하는 적자를 내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금융권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번 기회에 증권업에서 손을 떼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금융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장기간의 증시 침체로 지난해까지 증권사는 팔고 싶어도 살 사람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올해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면서 “대우증권은 물론 계륵이라는 평가까지 받던 현대증권도 비싼 값에 팔리면서 제값을 받을 수 있을 때 파는 게 낫다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