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말고 제일 잘한 일은 결혼이에요”
▲ 사진=홍순국 메이저리그 사진전문 기자 | ||
지난 시즌 팔꿈치 수술로 기나긴 재활 과정을 거친 추신수는 시즌 중 메이저리그 복귀를 위해 차근차근 몸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플로리다주 윈터헤이븐의 클리블랜드 캠프에는 추신수의 재기를 기대하고 기다리는 팬들과 구단 관계자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지난 3월 14일, 훈련이 끝난 추신수와 함께 근처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며 인터뷰를 가졌다.
수술▶ “제 야구 인생에서 부상이란 단어는 처음 접해 봤어요. 물론 수술도 처음이었고요. 그러다보니 몸이 아픈 것 보다 마음이 부대꼈던 것 같아요. 너무 중요한 시기였거든요. 대표팀 문제도 걸렸고 빅리그 복귀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고요. 수술 결정하는 데만 2개월 이상이 걸렸어요. 그만큼 수술 시기가 중요했던 거죠. 수술하고 일주일 뒤에 깁스를 푸니까 팔이 펴지질 않는 거예요. 펴지지도 않고 굽혀지지도 않고….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재활▶ “아시다시피 재활, 재미없잖아요. 지루하고. 제 성격상 항상 다른 선수들보다 앞서가고 싶어하는데 선수들 운동할 때 전 치료를 받아야 하니까 ‘왕따’가 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신기한 게 아픔이 가시고 조금씩 몸이 회복되니까 정말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방망이를 휘두르고 송구를 할 수 있다는 자체가 너무 감사했죠. 오늘 70개 정도 캐치볼을 했거든요. 별다른 통증을 느끼지 못했어요. 여긴 재활을 절대 서두르지 않아요. 야구 1~2년 하고 마는 게 아니니까.”
성격▶ “좀 완벽주의자 스타일이에요. 뭘 하다가도 삐끗거리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서 끝을 내야 개운해요. 운동을 해도 몇 백 개를 하든 제가 만족할 때까지 무조건 해야 해요. 와이프는 가끔 절 더러 여자 같대요. 성격이. 더러운 걸 끔찍이 싫어하고 옷을 개는 것도 네모 반듯하게 해요. 라커룸에서 동료 선수들이 제가 옷 쌓아놓은 걸 보고선 마치 블록을 쌓은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조금이라도 튀어나오는 걸 못 참거든요.”
아내▶ “전 와이프를 존경해요. 스물한 살에 결혼해서 쭉 미국에서 살았어요.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겠어요. 그래도 절대로 내색 안 해요. 전 요즘 남자가 아기 같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여자가 정신 연령이 더 높다고 생각해요. 제가 새벽 5시30분에 운동장으로 출근하는데 항상 먼저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해 놔요. 저녁에 배고프다면 언제든지 먹을 걸 만들어주고. 남편과 아이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현명한 여자예요. 제가 한번은 이렇게 말했어요. ‘당신이 나한테 자기의 인생을 바친 만큼, 내가 야구 그만두면 죽을 때까지 당신을 위해서 살 것이다’라고요. 제가 야구말고 가장 잘한 일이 결혼이에요. 만약 가족이 없었다면 힘든 얘기 누구에게 하겠어요. 처음 미국 왔을 때 말할 사람은 없고 운동은 힘들고 해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원형탈모에 걸리기도 했어요.”
꼬인 인생▶ “시애틀에 있을 때의 일이에요. 제가 마이너리그에서 매년 3할을 치고 탑에 들어갈 정도의 성적을 올렸지만 팀에선 이치로라는 대선수가 있기 때문에 절 (빅리그로) 올려 보내지 못했어요. 제가 아무리 용을 써도 이치로를 빼고 절 넣을 순 없는 거니까. 시애틀에선 제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클리블랜드로 이적 후엔 잘 풀릴 것 같던 상황이 몸이 아프면서 삐거덕거리는 거예요. 선수들에게 메이저리그 진출이 꿈일 수도 있지만 더 큰 꿈은 플레이오프예요. 이치로가 아무리 잘해도 팀이 못하면 플레이오프에 나갈 수 없잖아요. 그런데 지난 해 그런 꿈의 기회가 올 뻔했었어요. 몸만 아프지 않았다면 말이죠. 팔에 깁스해서 클리블랜드의 플레이오프 경기를 보고 있는데 속에서 불이 나더라고요. 제가 뛰어야 할 자리에 다른 선수가 뛰고 있으니까. 참, 추신수 인생 기구하다는 생각도 들고.”
대표팀▶ “제 소원이 가슴에 태극마크 달고 뛰어 보는 거예요. WBC부터 아시안게임까지 저랑 인연이 없었잖아요. 그러다 올림픽 예선을 앞두고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거죠. 정말 기대가 컸어요. 메이저리그에 있으면 대표팀에서 뛸 수 없기 때문에 지난해 한국으로부터 ‘콜’이 왔을 때 너무 욕심이 났었죠. 그런데 결국 수술을 택했어요. 이번 시즌이 너무 중요하니까. 이 쯤되면 정말 제대로 꼬인 거 아닌가요?”
복귀▶ “아들 무빈이가 미국에서 태어나면서 미국 국적을 갖게 됐지만 성장하면서 분명히 차별을 받을 거예요. 그런 차별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선 아빠가 메이저리그 야구선수, 굳이 뭐 슈퍼스타는 아니라고 해도 어느 정도 그런 게 있어야 차별을 덜 당하거든요. 그런 거, 이런 거 생각하면 한국에서 야구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봐요. 물론 와이프는 결사 반대지만. 왜 반대하냐고요? 제가 처음에 미국 오면서 품었던 뜻을 제대로 펼치지도 못하고 돌아가는 건 비겁한 거래요. 가족들 때문에, 돈 때문에, 나이 때문에, 그냥 돌아가는 건 자기 자신과 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요. 와이프는 돈도 필요 없고, 친구들도 필요 없다고 했어요. 앞으로 남편을 더 잘 돌보고 더 열심히 살 테니까 물러서지 말고 제 뜻을 펼치라고 말했다는 겁니다. 많이 놀랐어요. 와이프가 그 정도까지 생각할지 몰랐거든요.”
▲ 추신수 선수에게 가장 소중한 아내와 아들 무빈 군. 뉴시스 | ||
추신수는 인터뷰 말미에 약간의 흔들리는 속내를 비쳤다. 인터뷰란 형식으로 대화를 나눴지만 솔직한 심정을 표현했고 그의 한국 복귀 운운을 ‘추신수, 한국 복귀 고민하다’란 확대 해석된 타이틀로 포장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가 얼마나 야구를 사랑하고 미국무대에서 인정받고 뿌리내리길 원하는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한국 복귀에 대해 잠깐 고민했다는 부분은 이런저런 생각의 편린들 중 스쳐가는 일부분이라고 받아들였다. 너무 예의바르고 진중해서 ‘재미’와는 거리가 있지만 그런 추신수의 우직하고 성실함이 온갖 역경 속에서 존재의 가치를 알리는 배경이 될 거라고 믿는다. 헤어지기 전 추신수가 이런 부탁을 건넨다. “올 시즌은 큰 기대를 안 해요. 올해는 재기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믿음을 갖고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제 다시 출발선에 섰어요. 미국에 처음 왔을 때의 마음가짐으로 긴장과 설렘, 그리고 두려움이 혼재하는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응원을 보내주신다면 정말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윈터헤이븐=Sophie J. Shin 통신원
정리=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