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는 천수’ 이제 그만 ‘뛰는 천수’ 보여줄 터
▲ 힘겨운 재활 훈련 끝에 1군에 복귀한 이천수는 공백 기간 동안 그라운드에 존재해 있는 것만으로도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 ||
네덜란드 페예노르트에서 뛰고 있는 이천수와의 창간 기념 특별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새삼 그와의 오랜 인연이 떠올랐다. 올림픽대표팀과 월드컵대표팀을 거치면서 급성장한 그의 축구 인생이 ‘해피’와 ‘언해피’를 오락가락하는 다양한 뉴스거리들 속에서 복잡하게 얽혀있는 장면들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이천수=축구선수’라고만 한정하기엔 부족함을 느낄 정도로 그는 늘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좋은 일보다는 안 좋은 일에 더 자주 회자되었고 그로 인해 유독 많은 안티 팬을 거느렸다. 네덜란드 진출 후에도 K리그 복귀설, 폭행사건에다 최근에는 가수 심은진과의 열애설이 터지며 이슈메이커로서의 몫을 톡톡히 해냈다.
1월 말 오른쪽 다리 부상을 당한 후 2개월 동안 그라운드에서 모습을 감췄던 이천수. 힘겨운 재활 훈련 끝에 1군 복귀에 성공한 그는 지난 3~4개월 동안 자신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인터뷰는 전화로 2시간가량 진행됐다.
―오랜만에 목소리 들으니까 반갑다. 컨디션이 좋은 것 같다. 음성이 아주 밝은 걸 보니.
▲몸이 회복되고 나니까 살아 있는 걸 느낀다. 운동을 못하고 부상 회복에만 신경 쓰는 동안 좀 스트레스를 받았다. 완전히 제 컨디션을 찾았다. 하루 빨리 그라운드에서 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지난 8일 소속팀 사령탑 교체 발표가 있었다. 네덜란드 대표팀을 맡게 된 전임 베르트 반마르바이크 감독을 대신해 헤렌벤의 허트얀 베어벡 감독이 신임 감독으로 내정됐다고 보도됐는데 이래저래 베어벡 감독과 인연이 깊은 것 같다(웃음).
▲다음 시즌부터 선수단을 맡게 되는 것으로 안다. 감독 교체가 알려지면서 벌써부터 한국 언론에선 ‘이천수의 운명’ 운운하면서 다양한 각도의 분석 기사가 나오고 있는데 내 입장에선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전 감독이 날 선택했고 여기까지 오게 했지만 늦게 합류하는 바람에 마이너스 요인이 많았다. 차라리 새로운 감독이 와서 처음부터 함께 새 시즌을 맞이한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
이천수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번 시즌을 하루 빨리 잊고 싶은 눈치였다. 몸 상태가 제 궤도에 돌입한 상황에서 새로운 시즌을 맞아 야심찬 면모를 보여주고 싶어 했다. 축구보다 축구 외적으로 더 많이 부대낌을 당했던 시간들이라 축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다음 시즌에 ‘올인’하겠다는 각오도 밝혔다.
―페예노르트에 진출한 지 얼마 안 돼 구단으로부터 휴가를 받아 일시 귀국한 적이 있었다. 그때 향수병이니 K리그 복귀를 알아봤다느니 등등의 소문들이 많았다. 진실이 무엇인가.
▲여기선 이천수란 존재가 동양의 한 사람으로밖에 인식되지 않는다. 한국에선 내 이름만 대면 다 알아주고 인정해줬는데 여긴 그렇지 않았다. 그런 부분이 처음엔 좀 힘들었다. 특혜를 기대할 수도 없고 특혜를 받을 수도 없는 상황들이….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당시엔 그런 부분들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외국 생활이 처음은 아니지 않나. 이미 스페인에서도 경험한 부분들이다. 외로움, 혼자라는 느낌 등등은 이미 알고 있는 상황들이고 네덜란드 진출하기 전에 단단히 각오했던 것들 아닌가.
▲맞는 말이다. 스페인에서 겪을 만큼 겪은 부분들이라 네덜란드 생활을 자신했었다. 그런데 막상 부딪히니까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좀 더 참고 인내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해외 진출을 한 선수가 가자마자 향수병과 부적응으로 귀국한 걸 두고 실망의 목소리가 높았다.
▲물론 한국에 들어갔다가 이상한 소문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했는데 파장이 그렇게 커질 줄 몰랐다. 이젠 다 지나간 일이다.
―그 후로도 ‘뉴스’들이 끊이질 않았다. 폭행사건도 있었고.
▲새삼 느낀 게 있다면 사람들이 이천수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구나 하는 점이다. 물론 내가 먼저 잘못했고 공인다운 처신을 못한 부분은 인정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행동에 대해 심하게 비난하고 욕을 하고 손가락질하면서도 정작 그 대상인 내가 상처받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나도 사람이다. 누가 뭐라고 욕하면 잠을 못 이룰 정도로 마음이 쓰라리다. 가끔은 ‘왜 나만 갖고 그럴까? 왜 나만 욕할까?’ 하며 참담한 심정을 느낀 적도 있었다. 내가 축구선수가 아니고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해도 사람들이 관심조차 갖지 않았을 것이다.
―이상하게 이천수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들이 있다. 비단 이번 일뿐만 아니라 2002년 월드컵 이후 줄곧 그런 이미지가 따라다녔다.
▲나도 잘 알고 있는 부분이다. 나를 가리켜 ‘혀천수 오럴천수’라고 부른다고 들었다. 그러나 난 민간인 이천수가 아닌 축구선수로만 평가받고 싶다. 날 직접 보지도 않은 사람이 싸가지가 있네 없네 하면서 뭐라고 할 땐 정말 화가 난다.
―솔직히 말해서 내 주변에서도 종종 ‘이천수 선수의 진짜 모습은 어때요?’하고 물어보는 이들이 있다. 언론이나 방송을 통해 비쳐진 이천수의 모습이 아닌 실제 모습을 많이 궁금해 한다.
▲난 정이 많은 사람이다. 겉으론 냉정하고 사나워 보여도 마음도 약하고 눈물도 많다. 어렸을 때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기자들을 상대하다보니 본의 아닌 피해 의식도 생겼다. 가끔은 언론이나 팬들로부터 비난보다 사랑을 더 많이 받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했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아, 이런 얘기했다가 또 욕 먹을지 모른다. 남의 탓만 한다고.
이천수는 지난해 벌어졌던 폭행사건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기자에게 하소연을 하면서도 자세한 내용이 기사화되는 걸 원치 않았다. 이미 상대방의 고소 취하로 끝난 일이고 더 이상 그 사건을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 지난 1월 30일 이천수가 부상당하기 전의 경기 모습. 연합뉴스 | ||
▲한국도 아닌 외국에서 운동을 하지 않고 2개월 이상을 쉬다보니까 조용히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축구선수로 이름을 날리면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려온 것 같았다. 어릴 때는 (사람들의) 이슈가 되고 싶었고 내 이름과 얼굴이 알려지는 걸 좋아했고 즐겼다. 그러나 정말 철없는 생각들이었다. 축구만 잘하면 굳이 알려지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다는 걸 잘 몰랐다. 언젠가 선배들이 이런 얘길 하셨다. ‘영원한 이천수는 없다’라고. 그걸 재활하는 동안에 깨달았다. 지금까지 울퉁불퉁한 길을 걸어왔다면 앞으론 반듯한 길을 걷고 싶다. 그 반듯한 길을 이곳 네덜란드에서 만들고 싶고 지금은 그럴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다.
―페예노르트 선수들과의 관계는 어떤가.
▲이젠 서로 농담도 주고받으면서 가깝게 지내고 있다. 한국에 있을 땐 난 당연히 경기에 출전해야 하고 나 혼자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한다는 욕심이 있었다. 여기선 경기에 뛰든 못 뛰든 페예노르트 소속이란 사실에 행복해 하고 감사하는 선수들이 많다. 자신을 낮출 줄 알고 개인 성적보단 팀 성적이, 팀 승리가 선수의 행복이란 것도 깨닫게 해준다.
―지난 6일 FC위트레이트와의 홈경기에 오랜만에 후보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비록 출장하진 못했지만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진짜 행복했다. 그라운드에 존재해 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이천수라는 사람이 축구선수였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욕도 얻어먹고 사랑도 받는다고 생각했다. 축구를 통해 물질적인 풍족함을 누렸고 경제적인 안정도 찾았다. 이전에 못 느꼈던 부분들이 후보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을 뿐인데도 굉장히 감사하게 되더라.
이천수랑 수차례 인터뷰를 했었지만 이런 마음에서 우러나는 표현들은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그가 부상 회복을 하며 보낸 고통의 시간들이 여러 가지 의미들로 와 닿았고 그가 뱉어낸 말들 속에서 진심과 깨달음을 공감할 수 있었다. 이천수가 부쩍 성장한 느낌이 들었다.
―어느새 우리나라 나이로 스물여덟 살이다. (기자와) 알게 된 지 10년이 넘었다. 세월이 참 빠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천수가 축구를 잘할 때는 너무 기뻤고 ‘사고’치고 다닐 땐 무지 속상했다(웃음).
▲어렸을 때의 일이고 다 지난 스토리들이다. 난 다른 건 몰라도 축구는 정말 열심히 했다. 날 잘 모르는 분들은 훈련도 대충하고 놀기를 더 좋아하는 걸로 알지만 난 축구에 관해선 죽기 살기로 덤벼들었다. 남들 잠잘 때 줄넘기 더 돌리고 키가 작아서 스피드를 키우기 위해 타이어를 발에 묶고 달리기를 했다. 부와 명예를 쉽게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피눈물 나는 노력 없인 여기까지 오지 못했다. 축구에 대한 사랑만큼은 어떤 선수들보다 내가 더 크다고 자신할 수 있다(웃음).
―최근엔 가수이자 연기자인 심은진과 열애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러면서 ‘또 연예인이야?’란 소리도 뒤따랐다. 그동안 사귄 여자친구들 대부분이 미스코리아 출신이거나 연기자라서 그런 말이 나온 것 같다. 이런 선입견들이 신경 쓰이지 않나.
▲일반 여성과는 만날 기회가 없다. 또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몇 번 안 보고 끝나게 된다. 그러나 연예인들은 이런저런 자리를 통해 얼굴을 대면하게 된다. 편하게 만나다 서로 마음이 끌리면 사귀게 되는데 서로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보니 더 애틋해지는 것 같다. 일부러 연예인만 만나려 했던 건 아니다. 만나다보니 연예인이었을 뿐이다.
―이전 여자친구도 현재 활발히 연기 활동을 하는 사람이고 지금의 여자친구도 연기자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서로 우연히라도 만나면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부분에 대해선 서로 쿨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대놓고 얘기해 본 적은 없지만 (여자친구가) 지난 일들에 대해선 크게 개의치 않는 편이다.
―지금 만나는 여자친구와 결혼까지도 생각하는 건가.
▲난 이상하게 결혼을 떠올리면 여자친구랑 멀어지게 된다. 만날 때는 결혼해도 될 것 같은데 정작 결혼을 하려고 마음먹으면 너무 복잡해진다. 아마 아직 결혼할 때가 아니라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 친구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중이고 나 또한 이곳에 완전히 정착해야 하기 때문에 결혼을 전제로 사귀기보단 열심히 사랑하고 아껴주며 지내고 싶다.
이천수는 결혼을 빨리 할 생각은 없지만 외국 생활하는데 결혼은 필요한 부분이라는 걸 절감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힘들고 외롭기 때문이다.
다음은 이천수가 <일요신문> 창간 16주년을 축하하며 남긴 멘트다.
“먼저 창간 16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일요신문>이 여섯 살이었을 때 저와 맺은 인연이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네요. 열여섯 살의 <일요신문>이 160주년이 될 때까지 내 아들, 내 손자들이 대대로 <일요신문>을 읽을 수 있도록 좋은 기사, 건강한 발전 이룰 수 있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항상 좋은 기사 감사드립니다. 이천수한테도 응원 많이 보내주세요^^.”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