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사망사건’ 중 가장 많은 피해를 유발한 곳으로 지목된 옥시레킷벤키저의 신현우 전 사장이 검찰에 소환된 4월 26일 오전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과 피해자 가족들이 규탄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2013년 6월 24일 장동만 씨를 비롯한 세 명의 피해자는 국회를 방문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구제를 위한 결의안’ 통과를 위한 협조를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이완영·이종훈·김성태·김상민·서용교·주영순·최봉홍 의원)에게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전달했다. 또 가습기 살균제로 목숨을 잃었다는 내용의 사망진단서도 건넸다.
당시 피해자들과 만났던 이종훈 의원 측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그날 피해자분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관련 문서 다수를 받은 기억이 있다”고 떠올렸다. 이어 그는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의 경우 우리 측에서 대통령께 직접 전달하지는 않았다. (피해자가) 국민신문고에도 같은 내용의 글을 올린 것으로 안다. 대통령께 전달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 후 7월 12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 관련 법안 논의를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그러나 이마저도 ‘반쪽짜리’에 불과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대거 불참했기 때문. 공청회 회의록을 살펴본 결과 새누리당 의원 가운데 단 한 명만 참석했다. 당시 새누리당은 공청회 전날인 11일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변인이 박 대통령을 ‘귀태(鬼胎·의역하면 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의 후손’으로 비유한 것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일정을 전면 취소했다. 이로 인해 공청회가 차질을 빚었던 것이다.
회의록에 따르면 새누리당 유일한 참석자인 김상민 의원은 “공청회가 반쪽 공청회가 된 것에 대해서 굉장히 안타깝고 죄송하다. 여야가 모처럼 한마음을 모으고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으나 민주당 원내대변인의 ‘귀태’ 발언으로 새누리당 안에서 긴급회의가 열리며 국회 일정이 전부 스톱된 상황”이라고 밝혔다. 당시 환노위 관계자도 “여야가 합의하에 일정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여당 의원들이 불참하며 반쪽짜리 공청회가 됐었다”면서 “피해자들의 고통보다 정쟁이 우선시 된 결과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피해자들 분통을 터트리게 한 것은 새누리당뿐만이 아니었다. 관련 부서라고 할 수 있는 기획재정부 측이 특별법 처리를 반대했던 것이다. 당시 참석한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이렇게 특정 제품에 대한 피해를 피해구제까지 하는 것은 앞으로 개별 사례가 나오면 전부 특별입법 해야 되기 때문에 법체계상으로 맞지 않다”면서 “최대한 기존 제도를 통해서 할 수 있는 것을 빨리 시행하고 제도와 원칙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지원 대책을 찾아보자는 게 정부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해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뒤인 지난 9일 국회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피해 구제 방안이 논의됐지만 또다시 여야 이견으로 의결에 실패했다. 이로써 관련 법안 4건은 지난 3년 동안 상임위원회 소위에 계류된 데 이어 19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폐기 될 전망이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쏟았던 장하나 더불어민주당 의원 측은 “2013년 8월 국회에서 특별법이 통과될 수 있었으나 정부가 법안 통과를 강력히 반대하며 새치기하듯 피해지원 대책을 발표했다”며 “의료비, 장례비만 지원하는 내용으로 반쪽짜리 지원책을 내놨다. 국가 재정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꼼수를 부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의원은 “이번 20대 국회에서 검찰수사가 끝난 뒤 특별법 제정을 진행한다고 하는데 검찰수사가 끝난 뒤에는 분위기가 사그라질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정부보다 먼저 피해자 조사에 나섰던 백도명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도 “현재 정부의 법적 조치는 경제적 손해에 대한 보상에 머물러 있다. 가정이 해체되거나 아이를 잃은 이들이 삶의 가치를 회복할 수 있는 제도화된 서비스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백 교수는 “단 하나의 법안으로 한 번에 모든 피해를 보상하는 완벽한 포괄적 제도를 만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고민하면서, 앞으로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어떻게 법안에 포함시킬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여다정 인턴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