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후보의 기자회견이 급작스럽게 이뤄진 측면이 적지 않지만, 회견문 자체는 노무현 후보를 중심으로 한 특보단에서 사전 의견조율을 거쳐 치밀하게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회견 하루 전인 3일 저녁에는 여의도 맨하탄호텔에서 노무현 후보를 위시, 김원기 정치고문, 문희상 대선기획단장, 정동채 비서실장, 염동연 정무특보, 천정배 정세균 이강래 의원 등 특보단 주요 인사들이 모여 기자회견에 앞서 회견문에 대한 사전 논의를 마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회견을 앞두고 노무현 후보와 함께 회견문안을 조율한 특보단의 회의내용을 회의 참석자들의 전언을 바탕으로 지상중계한다.
7월3일 저녁 8시. 여의도 맨하탄호텔에는 노무현 후보를 중심으로, 7명의 특보가 자리를 함께 했다. 회의는 다소 결연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됐다. 먼저 특보 가운데 한 사람이 자성론을 제기했다. “노무현 후보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이후 지난 두 달 동안 걸어온 행보에 대해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선후보로서 얼마나 의연하게 행보를 해왔는지, 그리고 국민들로부터 얼마만큼 신뢰를 얻을 수 있는 행보를 보였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 후보는 물론, 참석자 모두가 공감을 표했고, 이어 또다른 특보가 말을 받았다. “이제부터는 노무현 후보다운 행보를 보여야 한다. 정치개혁, 반부패문제 등 지금까지 노 후보가 주장해왔던 문제들에 대해 실현 가능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자회견을 통해 노무현다운 정치개혁과 부패청산 프로그램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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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후보 특보단. 왼쪽 위부터 김원기 정치고문, 문희 상 대선기획단장, 정동채 비서실장, 아래는 천정배 의원, 정세균 의원, 이강래 의원 | ||
‘당 지도부 등과 사전 논의과정을 거쳐야 하지 않겠느냐’며 신중론을 펴는 특보도 없지 않았지만 ‘지금까지도 충분히 의견이 수렴돼 왔으므로 후보가 직접 기자회견을 통해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 효과적이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노무현 후보가 기자회견을 갖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난 뒤, 한 특보가 미리 초안을 잡아온 회견문을 참석자들에게 돌렸다. 회견문 초안을 잡은 특보의 보충 설명이 이어졌다.
“월드컵 이후 국민들이 정치권에 바라는 것은 정쟁중단과 부패청산으로 요약할 수 있다. 국민들은 정치권이 싸움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을 지긋지긋해 하고 있다. 정쟁 중단을 위해서는 한나라당의 주장 가운데 수용할 것은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한나라당의 일관된 대선전략은 반DJ정서를 확산시키고, 현 정부를 부패무능 정권으로 몰고가 그 책임을 민주당에 전가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주장하고 있는 중립내각 구성 문제는 선거의 공정성 문제와 연결될 뿐 아니라, 한나라당이 국회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정당구조의 현실을 감안해서 정쟁의 소지를 줄인다는 차원에서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만큼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한나라당에서 주장하는 특검제 문제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이 검찰의 수사에 시비를 제기하는 것은 순전히 정략적 의도에서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중립내각을 제안하는 차제에, 차라리 한나라당의 추천을 받아서라도 법무장관의 교체를 제안하게 되면 검찰 수사의 공정성은 물론, 정쟁의 소지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부패청산과 관련해서는 그동안 많은 논의가 있어온 만큼 이번 기회에 확실히 연내 입법을 통해 시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입법은 국회를 통해 가능한 문제이기는 하나, 우선 정치적 비중이 큰 대선 후보간에 정치적 합의를 이뤄내면, 국회 내에서 자연스럽게 풀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대선후보간 회담을 제의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 후보의 ‘탈DJ’ 가늠자로 여겨지고 있는 아태재단 처리문제와 김홍일 의원의 출당 문제에 대해서는 역풍을 우려, ‘강하게 언급하지 않는게 좋겠다’는 의견이 많아 대통령과 김홍일 의원의 결단을 촉구하는 수준에서 매듭지어졌다.
특보단 회의를 마치고 참석자들은 청와대와 한화갑 대표에게 통보하는 문제를 놓고 잠시 의견을 나눴다. 청와대에는 정동채 실장이 박지원 실장에게 기자회견 예정사실을 통보하고, 한화갑 대표에게는 문희상 단장이 설명하는 것으로 역할을 분담한 뒤, 2시간에 걸친 긴급 심야 특보단 회의를 마쳤다.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