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 지킴이’ 민주개혁파 다시 동교동으로
▲ 북한 핵실험과 관련, 지난 10일 노무현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했다. 햇볕정책을 둘러싼 노 대통령과 DJ의 갈등이 정계개편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한반도가 핵 위험에 빠진 상황에서 정계개편 같은 한가한 이야기를 할 계제가 아니라는 게 정치권 분위기다. 또한 북핵 문제는 장기적으로 내년 대통령 선거에까지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추석 연휴 직후 난데없이 날아든 북한 핵실험 문제, 과연 그것은 폭발 직전에 있었던 정계개편 논의 구조와 차기 대선 구도를 어떻게 변화시킬까.
먼저 북핵 문제가 정계개편에 미칠 단기적 변화에 초점을 맞춰 보자. 현재 여권이 추진하는 정계개편의 요지는 범여권의 재 결집이다. 범민주세력이 통합되면 한나라당을 수구세력으로 몰아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일종의 ‘한나라당 왕따 작전’이다. 하지만 여권의 이러한 정계개편 시나리오는 북한 핵실험 문제와 부딪히면서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이 커졌다.
한나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이에 대해 “여권은 정계개편 과정에서 한나라당의 분열을 재촉해 범민주세력이 다시 통합, 정권을 재창출한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북한 핵실험 문제가 터지면서 한나라당은 현 정권의 대북 포용정책을 일제히 비판하면서 더욱 결집하고 있다.
여기에는 소장파들도 예외가 아니다. 북핵 문제가 한나라당 내에 숨어있는 계파 갈등을 덮으면서 한 목소리를 내게 하는 매개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라고 말했다.
북핵 문제가 한나라당의 결집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면 여권에게는 어쩔 수 없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정대철 고문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통합신당 창당론도 상당 기간 늦춰지거나 정치인들의 참여 범위도 줄어들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정 고문이 말한 중도개혁세력통합은 열린우리당 민주당 외에 한나라당의 중도 세력까지도 끌어들이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북핵 문제가 터지면서 통합 신당에 참여하려는 일부 보수성향의 중도세력이 참여를 꺼릴 가능성이 있다. 또한 햇볕정책에 대한 책임론이 확산될 경우 통합신당 창당 논의도 상당 부분 타격을 받을 것이다. 북핵 문제가 통합 신당 세 불리기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 통합신당을 주도하고 있는 정대철 열린우리당 고문. | ||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북한 핵실험 파문이 여권의 분열을 가속시켜 통합신당 창당이 오히려 빨라질 것으로 보기도 한다. 여기에는 북핵 문제로 불거진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간의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북핵 문제가 터지기 직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이) 표 찍어준 사람들한테 승인 받지 않고 분당했다. 그것에 여당의 비극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동안 정치적 발언을 자제해오던 김 전 대통령의 이날 발언을 두고 동교동계의 한 전직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이 양당정치를 거론한 것은 범여권 통합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최근 정대철 고문이 주장한 통합신당 창당론을 사실상 추인하는 것이다”라고 밝히면서 “김 전 대통령은 사실 노무현 정권 초기 대북송금 특검이 시작될 때부터 둘은 같이 갈 수 없다고 느꼈다. 그런데 최근 김홍일 씨마저도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크게 분노했던 것으로 안다. 이런 배경에서 김 전 대통령의 ‘분당책임론’ 발언을 분석해보면 노 대통령을 제외한 ‘헤쳐모여 식’ 범여권 통합이 필요하고, 이 과정에서 그가 분명한 역할을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열린우리당의 고문으로 오랫동안 같이하고 싶다”, “선거를 위해서만 만들어지는 정당은 오래가지 못한다”며 여권의 통합신당 창당에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향후 정계개편 과정에서 양측의 주도권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한편 ‘노-김’의 갈등은 북한 핵문제 파문이 터지면서 더욱 증폭돼 이제 두 사람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노 대통령은 북한 핵실험 직후 기자회견에서 “이 마당에 포용정책만 계속 주장하긴 어렵다”며 대북 정책의 전면 재고할 뜻을 내비쳤던 것이다.
이는 김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이어받은 포용정책을 포기할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동교동을 상당히 자극했다.
이는 다분히 호남 민심을 의식한 ‘정략적’인 조치로 노 대통령의 대북 핵실험 전략도 ‘강경 대응’에서 ‘유화적인 제재’로 바뀌고 있는 ‘정치적인’ 배경이 되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동교동계에서는 북한 핵문제 처리 문제에 대해 노 대통령이 보여준 ‘기회주의적’ 태도에 대해 굉장히 실망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맨 처음 대북 포용정책 기조 변화 발언은 ‘참여정부’의 대북, 대미외교정책의 실패를 희석시키고 그 화살을 김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까지 싸잡아 책임을 지우려는 의도가 있다고 본다”고 말하면서 “이는 정대철 고문 등이 추진하고 있는 ‘노무현 배제 통합신당 창당론’에 더욱 힘을 실어줄 명분을 주고 있다. 향후 정계개편 과정에서 햇볕정책 유지 계승을 표방한 ‘평화민주개혁세력’의 통합이 더욱 힘을 받을 수 있고 이는 곧 노 대통령 세력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통합신당 창당론이 오히려 더욱 힘을 받게 될 명분을 얻은 셈이다”라고 밝혔다.
앞으로 여당 발 정계개편은 북핵 문제 대응 전략에 따라 그 이합집산의 ‘방정식’이 복잡하게 얽힐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편 북핵 문제는 장기적으로 대선 구도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북한이 미사일 발사에 이어 핵 실험까지 하면서 안보문제가 최대현안으로 떠올랐다. 이 문제는 금방 해결될 수 없다. 적어도 내년 대선 국면 내내 쟁점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를 토대로 보면 내년 대선에서 북한의 핵실험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힘을 받으면서 보수 성향의 대선 후보가 우세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 예상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한 전략 관계자는 “북핵 문제가 미국의 책임론으로 비화될 경우 민족의식이 강한 젊은층 사이에서 대북 포용정책을 계승하는 후보를 지지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한다.
이 주장은 최근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상당히 설득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조사에서 ‘참여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54.3%로 높게 나타나고 있지만, ‘유지 혹은 일부 수정’ 의견도 43.7%의 만만치 않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북핵 사태=보수성향 후보 유리’ 등식은 단편적 해석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