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어때서? 우승 향해 샷 날린다”…제자 김경태 “모 선배 덕 일본서 성공”
SK텔레콤오픈 1라운드 9번홀에서 벙커샷을 선보인 모중경 프로. 임준선 기자
“그날이 스승의 날이었나요? 몰랐습니다. 하하하.”
김경태 프로의 스승 모중경 프로는 8년 만에 우승을 차지한 지난 15일이 스승의 날이었는지조차 몰랐다고 한다. “카네이션은 어버이날에 자녀들한테 받았죠. 경태와는 형제처럼 지내고 있어 그런 낯부끄러운 행동은 생략합니다.” 전화통화로 축하 인사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다는 모중경 프로는 우승이 낯설었다고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
“개인 통산 7승을 달성했지만, 너무 오랜만에 맛보는 우승이라서 그런지 상당히 낯설게 느껴지더라고요. 과거에 우승했던 기억을 한동안 잊고 지냈던 것 같아요. 우승할 때 느꼈던 감정을 떠올린 적이 없어서 그랬나 봐요.”
8년 만의 우승을 즐길 겨를도 없었다. 4일간의 대회 참가로 피로가 누적돼 귀가 후 곧장 잠자리에 들었고, 이튿날 SK텔레콤오픈 연습라운드에 김경태 프로와 함께 나서 평소와 같은 일상을 보낸 것이다. 대회가 시작되면 ‘선수 대 선수’의 마음으로 임하지만, 연습라운드에서만큼은 평소와 같은 ‘스승과 제자’였단다.
지난 2013년 김경태 프로는 미국 무대 진출을 위해 스윙을 교정했고, 그 결과 2년간의 슬럼프가 찾아오고 말았다. 그에게 손을 내민 건 프로 입문 21년차 베테랑 모중경 프로였다.
“경태의 가장 큰 문제점은 페이드샷이었어요. 일부러 페이드샷을 만들려하는 버릇이 생겼더군요. 워낙 뛰어난 선수다보니 금세 교정할 수 있었습니다.”
모중경 프로의 도움으로 스윙을 재교정한 김경태 프로는 지난해 일본프로골프투어(JGTO)에서 5승을 거두며 상금왕에 올랐다. 그리고 올해에만 이미 일본 투어에서 2승을 차지했다. 김경태 프로는 SK텔레콤오픈 공개석상에서 “가르침을 준 모중경 선배 덕에 일본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라면서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김경태 프로의 스승으로 유명한 ‘모코치’ 모중경 프로. 임준선 기자
SK텔레콤오픈 1라운드를 마치고 나온 모중경 프로는 신경이 예민해 있었다. 퍼팅 실수로 보기를 3번이나 기록한 탓이다. 홀아웃한 동반 프로들이 클럽하우스로 점심을 먹으러 간 시간, 모중경 프로는 퍼팅그린에 남아 퍼팅 연습을 계속했다. 하지만 김경태 프로의 부모가 방문하자 굳어 있던 모중경 프로의 얼굴에 금세 미소가 번졌다.
“경태가 1언더파네요. 그린이 많이 딱딱하더라고요. 1언더파면 정말 잘한 겁니다. 아직 3라운드가 남았으니 너무 걱정 마세요. 잘하잖아요, 우리 경태.”
아쉬워하는 김 프로의 모친을 달래는 여유마저 보였다. 1라운드에서 모중경 프로는 2오버파 74타로 43위, 김경태 프로는 1언더파 71타로 12위에 올랐다.
“대회에 참가하는 모든 선수가 우승만을 바라보며 샷을 날립니다. 아무리 성적이 나쁜 선수도 ‘10위권에만 들어야지’라고 생각하며 대회에 임하진 않아요. 저 또한 이번 대회에서 우승을 향한 샷을 날릴 겁니다”라며 모중경 프로는 SK텔레콤오픈에 2연승 도전장을 내밀었다.
나폴레옹이 ‘내 사전에 포기란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면, 모중경 프로는 ‘내 사전에 은퇴란 없다’는 말을 후배들에게 남기게 될 듯하다. 1996년 프로 입문 이후 단 한 번도 은퇴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니 말이다. 올해로 만 45세. 하지만 20대가 주류인 프로 무대에서 자기 나이가 많다고 느낀 적은 없단다.
모중경 프로가 사용하는 클럽. 드라이버: 타이틀리스트 915 D2(9.5°). 하이브리드: 타이틀리스트 816 H1(17°), 816 H1(21°). 아이언: 타이틀리스트 716 T-MB(4·7·8·9), 타이틀리스트 716 T-CB(5·6). 웨지: 타이틀리스트 보키 SM6(52°), 타이틀리스트 보키 2015 프로토타입(58°). 퍼터: 스카티 카메론 뉴포트 2GSS. 임준선 기자
선블록을 바르는 시간마저 아까운 것일까. 그는 연습을 할 때도, 대회에 참가할 때도 선블록을 전혀 바르지 않는다. 다만 우리나라보다 자외선 지수가 높은 동남아시아권의 대회에 나갈 때만 건강을 염려해 바르는 정도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며 자신의 가무잡잡한 피부색이 노력의 방증이라는 모중경 프로. “골프선수라면 당연히 피부가 까매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모중경 프로에게 골프란? 한마디로 ‘인생’이다. 자신의 골프 성적이 굴곡이 많은 이유다. 그러면서 지난 8년간 우승이 없었으니, 한동안 상위권 성적에 머물 것이라 확신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모중경 프로는 클럽을 손에서 내려놓는 그날까지 우승을 향한 샷을 선보일 것이다.
유시혁 비즈한국 기자 evernuri@biz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