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 “이 나이에 수술은 사치…아파도 달린다”
1군 엔트리에 등록돼 있는 현역 가운데 최고령인 NC 이호준. 사진제공=NC 다이노스
@ 베테랑의 가치와 존재감
지난 5월 19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 NC 다이노스의 경기. 이날 NC는 시카코 컵스 마이너리그 출신의 정수민이 선발 데뷔전을 치른 날이었다. 이날 정수민은 5⅓이닝 동안 7피안타 4삼진 1실점, 투구수는 76개였고 최고 구속은 시속 149km였다. “5이닝만 잘 던져주면 최고”라고 말한 김 감독의 기대에 제대로 부응했던 것.
이 경기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는 NC의 맏형 이호준(40). 5번 지명타자로 출전한 이호준은 1-1로 팽팽하던 6회초 무사 1루에서 넥센 선발 피어밴드를 상대로 시즌 7호 홈런을 쏘아 올렸다. 이호준의 한방에 힘입은 NC는 7회에 나성범과 테임즈가 추가 득점을 뽑아내면서 6-2 승리를 거뒀다. 경기 후 이호준은 “오늘 첫 선발 데뷔하는 정수민을 위해 집중했다”면서 “이렇게 연패(4연패 중)할 때는 고참이 해줘야 하는데 보탬이 돼서 기분이 좋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호준은 1군 엔트리에 등록돼 있는 현역 야수 가운데 최고령이다. 1976년 2월생인 그는 8월생인 이승엽(40·삼성)보다 생일이 빠르다.
이호준은 인터뷰 때마다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NC와 함께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나이 마흔 살이 넘어서도 현역으로 뛸 수 있는 기회를 준 구단과 김경문 감독에게 감사한 마음도 잊지 않는다. 그 진심을 이호준은 성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시즌 이호준은 3년 연속 20홈런(24개), 11년 만의 100타점 돌파(110개), 6년 만의 5할대 장타율(0.512) 기록을 모두 달성했다. NC는 1976년생의 이호준에게 올해 연봉 7억 5000만 원을 안겼다.
겉으론 씩씩하고 호탕하고 거칠 것 없어 보이는 이호준이지만, 속은 ‘고장’ 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이미 한 번씩 수술을 받은 양 무릎 중에 왼쪽 무릎이 좋지 않다. 주치의로부터 수술을 권유받기도 했던 그는 수술 대신 재활을 통해 몸을 만들어갔다.
“야구는 날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금 수술하고 재활하기엔 내 나이가 너무 많다. 선수 생활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수술은 ‘사치’다. 피나는 재활훈련을 소화했고, 팀에서도 적절한 휴식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야구하는 데 큰 지장은 없다.”
개인 통산 5차례 홈런왕 등극, KBO 한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56개), 최소 경기 및 최연소 300홈런, 개인 통산 400홈런 달성…. 더 이상의 수식어가 필요 없는 삼성 이승엽의 개인 기록들이다.
그는 지난 시즌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지명타자 부문 수상자로 단상에 올라 “40대에게 희망이 되고 싶다”는 얘기를 전한 바 있다. FA 선수로 삼성과 2년 계약에 사인하고 나서 “2년 후 은퇴하겠다”고 선언한 이승엽은 40대 선수로서 부끄럽지 않은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누구보다 지독한 동계 훈련과 스프링캠프를 소화했었다. 그러나 최형우, 구자욱의 활약에 이승엽의 존재감이 이전과 같진 않고 팀 성적마저 중위권으로 처져 있는 터라 이승엽은 적지 않은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지난 18일 이승엽은 포항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전에서 1회 큼지막한 3점홈런을 터뜨렸다. 홈런 타구는 자신이 지난해 달성한 통산 400홈런을 기념해 만든 ‘400존’ 바로 우측에 떨어졌다. 시즌 4호 홈런. 류중일 감독은 기자들에게 이승엽과 관련해 이런 얘길 자주 한다. “이승엽이 쳐주면 쉽게 간다. 이승엽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매우 크다”라고.
만 42세로 현역 투수 최고참인 KIA 타이거즈 최영필. 윤석민, 임준혁, 한기주 등이 부상과 부진 등으로 전열에서 이탈하는 바람에 임시 선발로 마운드에 오르는 최영필은 시즌 초반 마무리로 활용됐다가 급할 때는 선발로도 활약 중이다.
1997년 경희대학교를 졸업한 최영필은 현대 유니콘스의 1차 지명을 받아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 이후 2001년 김홍집과 함께 한화 이글스에 트레이드되었고, 2010년 FA 자격 요건을 갖추고 FA를 선언했지만 그에게 손을 내민 구단은 한 팀도 없었다. 결국 ‘FA 미아’가 된 최영필은 멕시칸리그를 노크했고, 여의치 않게 되자 일본 간사이 독립리그 서울 해치 팀에서도 활약한 바 있다.
2012년 1월 한화 이글스가 보상 규정을 풀어준 바람에 2012년 1월 SK 와이번스로 이적했다. 2013년 SK에선 최영필에게 코치직을 제안했지만 현역 선수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며 최영필은 SK를 나오게 된다. 이후 경희대학교 인스트럭터로 활동하다 KIA 타이거즈 입단 테스트를 받고 2014년 KIA와 신고선수 계약을 맺었다.
최영필이 KIA 타이거즈의 신고선수로 입단할 때만 해도 연봉이 5000만 원이었다. 2014 시즌 6월에 1군에 올라 4승2패14홀드, 평균자책점 3.19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5승2패10홀드 평균자책점 2.86으로 2년 연속 호투했다. 2015 시즌을 앞두고 연봉이 1억 3000만 원으로 인상됐고, 올해도 그 액수 그대로다.
최영필은 돈의 액수보다 마운드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은 부분에 대해 더 기분 좋다고 말했다. “구단 입장에선 마흔 살 넘은 투수에게 1억 넘는 연봉을 지급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올 시즌이 아주 중요하다. 올해 제대로 보여줘야 다음 해 계약을 연장할 수 있으니까.”
최고령 투수 최영필은 여전히 은퇴를 떠올리지 않는다. 뛸 수 있고, 던질 수 있고, 막을 수 있다면 할 수 있을 때까지 유니폼을 입고 싶을 따름이다. 그에게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현재 경희대에서 야구선수로 활약 중인 아들 최종현(20)과 함께 프로 무대를 경험하는 것이라고.
2군에서 시즌을 맞이한 LG 이병규는 연일 맹타를 휘두르며 1군 복귀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LG 트윈스 프랜차이즈 스타플레이어 중 한 명인 ‘적토마’ 이병규(42)는 2042개의 현역 최다안타 기록 보유자다. 리그 최다인 7시즌 동안 150안타 이상을 때려냈다. 그러나 지난 시즌 부상과 부진으로 54경기 타율 0.219에 1홈런 9타점을 기록하면서 급격한 하향세를 나타냈다. 더욱이 이병규는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도 합류하지 못한 채 2군들이 모인 대만에서 캠프 훈련을 소화했다. 1군의 2차 전훈지였던 오키나와캠프에서도 이병규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젊은 선수들 위주로 팀을 재편하고 있는 양상문 감독의 라인업 구상에 이병규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2군에서 시즌을 맞이한 이병규는 연일 맹타를 휘두르며 1군 복귀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5월 19일 현재 19게임에 나서 26개의 안타와 홈런2, 17타점, 타율 0.456을 기록 중이다. 이병규의 팬들이라면 그를 2군이 아닌 1군에서 보고 싶은 게 당연지사. 그러나 이미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준 이병규로선 후배들을 제치고 1군으로 복귀하기가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두산 베어스 홍성흔은 시범경기에서 햄스트링을 다쳐 개막 1군 엔트리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몸은 회복됐지만 이미 후배들로 꽉 찬 라인업에 홍성흔이 들어갈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2군에서 16경기에 출전해 타율 0.362로 좋은 타격감을 보이며 절치부심했던 홍성흔은 4월 마지막 날, 김태형 감독의 부름을 받게 된다. 그리고 복귀전에서 타점을 기록했고, 이후 4경기에서 대타로 등장해 5안타 3타점 2득점의 쏠쏠한 활약을 보여줬다. 그러나 홍성흔은 주전으로 뛸 수 없었다. 지명타자 및 1루수로 뛸 수 있는 오재일, 김재환이 워낙 뜨거운 타격감을 보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난 13일 고척 넥센전에서 홍성흔은 경기 중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교체됐고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최근 KIA 구단의 다양한 준비로 의미있는 은퇴식을 치른 서재응 SBS 해설위원은 베테랑 선수들의 ‘은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곁들였다.
“나이를 먹게 되면 작은 부분에도 서운하고 상처받는 일이 많다. 시간이 흐를수록 몸의 회복 속도가 느려지는 부분에 대해서도 예민해진다. 매일 은퇴 시기에 대해 고민하지만, 매일 정답 없는 물음표만 안고 산다. 힘들 때는 당장 은퇴하고 싶다가도 막상 은퇴하면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는 게 선수 생활이다. 난 마흔 살 전에 은퇴했지만 마흔 살 넘어서도 현역으로 뛰는 선배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EPGA 2연승’ 왕정훈, 도대체 넌 누구야? 필리핀 중국 찍고 유럽 제패 한국 선수 사상 처음으로 유럽프로골프투어(EPGA) 2주 연속 우승의 쾌거를 이룬 왕정훈(21). 지난해 5월 EPGA의 메이저대회인 BMW PGA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한 안병훈(안재형, 자오즈민 아들)을 통해 관심을 모으기 시작한 EPGA 투어에서 한국의 웬 낯선 젊은이가 2주 연속 드라마 같은 역전 우승을 차지했을 때 대부분의 골프팬들은 “도대체 왕정훈이 누구야?”란 궁금증을 가졌을 것이다. 골프인들은 1995년생인 왕정훈이 EPGA투어인 모로코와 모리셔스 대회에서 거둔 2연승은 PGA 투어 우승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 평가받는다. 한국인은 물론 아시아인으로서 EPGA투어 2연승은 처음 있는 일이고, 최연소 기록인데다 EPGA투어에서도 10년 만에 나온 희귀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왕정훈이 첫 번째 우승을 차지했던 아프리카 모로코의 핫산Ⅱ트로피 대회 출전은 원래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출전 자격도 없었고, 대기 순번도 3번째였기 때문에 그는 국내 대회인 매경오픈대회 출전을 신청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왕정훈은 아버지 왕영조 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모로코행을 준비했다. 이동 거리만 해도 하루가 꼬박 걸리는 모로코를 가기 위해 항공권을 알아봤고, 비행기 탑승 직전에 대회관계자로부터 대회를 포기하는 선수들이 생겨 출전 자격이 주어졌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출전 자체도 드라마틱했지만 경기 내용은 더욱 드라마틱했다. 17번 홀까지 스페인의 나초 엘비라에게 한 타 뒤져있다가 마지막 홀에서 극적인 버디를 성공시키며 연장전에 돌입했고, 연장 두 번째 홀에서 버디로 감격의 우승을 차지했다. 다음날 왕정훈은 동아프리카 마다카스카르 동쪽 인도양의 섬나라 모리셔스로 날아간다. EPGA투어 아프라시아뱅크 모리셔스 오픈 대회 출전을 위해서였다. 이 대회에서 왕정훈은 선두 방글라데시의 시디커 라만에게 3타 차로 뒤졌지만 마지막 홀에서 또다시 극적인 버디로 역전승을 장식하게 된다. 왕정훈은 초등학교 6학년 때 골프를 배우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필리핀으로 이주했다. 중학교 3학년이 돼서야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해외 거주로 인해 유급이 된 나머지 3학년 선수로 뛰지 못하고 1학년 대회에 출전하게 된다. 그러나 월등한 기량으로 인해 다른 1학년 부모들의 반발에 직면했고, 협회에 탄원서가 접수되는 등 불협화음이 일어나자 왕정훈은 다시 필리핀행 비행기에 오른다. 왕정훈은 필리핀의 4대 성인 아마추어 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일구는 등 필리핀의 아마추어 골프계를 평정하다시피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필리핀 선수들이 왕정훈을 배제시키기 위해 집단행동에 나섰다. 왕정훈의 우승으로 필리핀 대표선수들에게 지급되는 월급을 받지 못하게 됐다며 반발한 것이다. 이후 왕정훈은 중국 PGA 투어 3부에서 활약했다. 2012년 만 16세의 나이로 프로에 전향했고, 3부투어 상금왕에도 올랐다. 어린 나이에 한국과 필리핀에서 뛸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지만 왕정훈은 포기하지 않고 혼자만의 노력 끝에 중국 3부투어 상금왕은 물론 EPGA투어에서 2주 연속 우승을 일궈낸 것이다. 프로에 진출한 왕정훈은 2013년부터 아시안투어를 병행하고 있고, 지난해 한국프로골프 투어 대회에서 세 차례 출전해 SK텔레콤오픈과 한국오픈에서 공동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현재 세계랭킹 88위에 올라 있는 왕정훈이 2주 연속 우승을 차지하면서 안병훈(24위) 김경태(43위) 이수민(68위)과 벌이는 8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 경쟁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