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원 아나운서 - 버저비터] LG 새 사령탑 강을준 감독

“눈물 많다고? 나 악바리야”

	▲ 사진=박은숙 기자 [e-mail]

2008-2009 시즌에 새로 데뷔한 프로농구 감독은 강을준(LG)과 이상범(KT&G) 두 명뿐이다. 그중 이상범 감독 대행은 전임 유도훈 감독의 갑작스런 사퇴로 코치에서 감독대행을 맡게 된 경우이고 순수하게 외부에서 영입된 케이스는 강을준 감독이 유일하다. 강 감독은 오랫동안 명지대에서 성공적으로 자신의 지도력을 입증했다. 그러나 과연 냉엄한 프로무대에서도 대학시절의 명성이 이어질 수 있을지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다. 이제 프로무대 20일을 경험한 새내기 프로농구 감독 강을준을 만났다.

정지원(정): 아직 신인감독이라 애로사항이 많을 것 같은데요?

강을준(강): 정말 기존의 감독들이 존경스럽습니다. 아마와 프로는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매 경기가 살얼음판입니다.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해도 실전에서는 그대로 잘 안됩니다. 외국인 선수들의 관리도 정서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쉽질 않습니다. 어찌 한술 밥에 배부르겠습니까? ‘시간이 약’이겠지요.(웃음)

정: 주변에서 누가 좀 도와주나요?

강: 많은 선배님들이 관심을 가져주십니다. 얼마 전 안준호 감독(삼성)님이 “이제 내 마음 알겠지?”라고 얘기하시더라고요. 김진 감독(SK)님과 전창진 감독(동부)님도 “괜히 연봉 많이 주는 게 아니다”라고 하셨죠. 경기에서 만나면 적의 입장이지만 가끔씩 조언들을 해 주세요. 최근 동부 전 감독님이 외국인 선수 관리에 대한 훈수를 한번 둬 주셨는데 큰 도움이 됐어요. “우리 선수들과는 다르게 정확한 자료를 제시해야 설득이 된다”는 말씀을 듣고 그렇게 했더니 정말 효과 만점이었습니다.

정: 외국인 선수들 관리가 어떤 면에서 어렵나요?

	▲ LG 새 사령탑으로 내정돼 프로 무대에 데뷔한 강을준 감독. 팀 컬러가 자리 잡히면 확실한 ‘근성 농구’를 보여주겠다고 벼르고 있다.

강: 보통 그들은 극동 아시아에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잘 모르고 오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처음엔 우리 선수들과 KBL을 얕보는 경향이 있죠. 하지만 막상 부딪히다 보면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고 결국 마음을 열어요. 문제는 시간이 좀 필요하다는 거죠. 처음에 “네가 잘하는 플레이 혹은 좋아하는 플레이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 “난 올라운드 플레이어”라고 대답합니다. 포지션에 대한 개념이 애매해지면 포스트 플레이나 외곽 플레이를 다 하려고 하죠. 그래서 본인의 데이터를 보여주면서 설명을 해주면 팀이 원하는 플레이가 뭔지를 알게 되고 따르게 됩니다.

정: 프로무대에 와서는 아직 ‘강을준 농구’가 어떤 건지 잘 모르겠다는 평들이 있던데 대학에서 보여줬던 팀 컬러는 어떤 색깔이었나요?

강: 경기 종료 몇 분을 남겨놓고 10여 점을 뒤지고 있어도 역전을 시킬 수 있는 ‘근성의 농구’입니다. 마지막 순간에 승부수를 띄울 수 있는 농구라고 생각해요. 가령 악착 같은 수비를 바탕으로 센터를 빼고 작고 빠른 선수들을 다 투입해서라도 스피드로 승부를 거는 그런 농구를 의미하죠. 아직 프로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질 못했어요.

정: 대학 지도자 시절 가장 인상적인 기억은 뭔가요?

강: 뭐니뭐니해도 제자들이 감독이었던 제 진심을 알아주었던 순간이죠.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라커로 들어갔더니 당시 주장이었던 김영수(대구 오리온스)가 선수들에게 “차렷! 경례!”라는 구령을 붙이자 다들 큰절을 하는 거예요. 순간 감정이 복받쳐서 눈물이 흐르더라고요(순간 강 감독은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린다).

정: 너무 진지하고 감동적인 대화만 나누게 되네요? 강 감독과 얘기하다 보니 자꾸 SK 김진 감독이 연상돼요? 그런 얘기 혹시 들으신 적 있나요?

강: (웃음) 그런 얘기 정말 무지하게 많이 들었어요. 제가 고려대학에 입학해서 하루는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갔어요. 그런데 주방 아주머니가 “진이 학생 밥 먹으로 왔어?”라고 하시는 거예요. 또, 한번은 김진 선배가 결혼을 하셔서 이사를 하게 됐어요. 그래서 열심히 짐 나르는 것을 도와드리고 있는데 김진 선배 장모님께서 “사위! 좀 쉬어가면서 해”라는 거예요. 제가 더 당황스럽더라고요.

정: 살아오면서 본인의 뜻과는 다르게 세 번이나 자신의 진로를 바꿨다던데 사실인가요?

강: 네, 정확하게 세 번이죠. 마산고 시절에 체육 선생님이 너무 멋있어 보여서 진주 경상대학교로 진학하려고 했죠. 그런데 “강을준은 농구 못해서 지방대학에 간다”는 말이 들리는 거예요. 게다가 당시 박한 고대 감독께서 김해에 있는 저희 집까지 오셔서 그 큰 손으로 제 가슴을 치면서 “을준이 가슴에 태극 마크 한번 달아드리겠습니다”고 부모님께 호언하셨어요. 결국 고대로 가게 됐습니다. 두 번째는 대학 2학년 때 기업은행에서 뛰던 김동광(현 KBL 경기이사) 선배가 박 감독께 저를 데려가고 싶다고 하셨고 저도 평생직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막상 졸업할 때가 되니 박 감독께서 삼성전자로 갔으면 하시는 거예요. 나중에 알고 보니 동기들 취업문제가 걸려 있던 거죠. 마지막은 삼성전자 말년에 무릎 수술을 세 번이나 받아서 은퇴시기를 정하려던 순간이었죠. 그런데 제 친구인 이윤환(삼일상고 체육부장, 전 농구선수 성정아의 남편)이 “코치 한번 해 봐라”며 제의를 하는 거예요. 그 제의를 받자 마음속 깊은 곳에서 또 뭔가가 꿈틀거리더라고요. 결국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됐죠. 세 번 모두 제 의지와는 달랐지만 결국 옳은 길을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 감독 첫 해인데 시행착오도 좀 있을 것 같은데요?

강: 제가 실수한 에피소드가 하나 생각나는데요. 프로에서는 2, 3쿼터에 외국인 선수가 1명씩밖에 뛰질 못하는데 제가 한 번은 착각을 해서 2쿼터 작전시간 때 외국인 2명이 뛰는 패턴을 지시했습니다. 옆에서 김대의 코치가 “감독님 지금 2쿼터인데요?”라고 해서 상황이 그게 아님을 깨닫게 됐습니다(웃음).

강을준 감독은 얌전하고 신사적인 외모를 풍긴다. 인터뷰하다 눈물을 보일 정도의 예민한 감성과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겸손함도 느껴진다. 하지만 고난을 돌파하는 승부근성과 강한 집념으로 현존하는 10번째 프로농구 감독의 자리에 올랐다. 쉽지 않았던 강을준의 선택이 어떻게 끝맺음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CJ미디어 아나운서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