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공천 이어 2차 물갈이…명분은 ‘당 혁신’ 속셈은 ‘친노 솎아내기’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지역위원장 교체를 골자로 하는 대대적인 물갈이 가능성을 언급하자 당 내부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앞서 4·13 총선 전 물갈이가 김종인발 1차 물갈이였다면 이번에는 2차 물갈이다. 특히 ‘0석’에 그친 광주 지역 위원장들은 그야말로 ‘좌불안석’이다. 광주와 더불어 참패한 전남·북 지역위원장들도 마찬가지다. 낙선한 친노(친노무현)계 및 호남 솎아내기로 특정 계파의 색 빼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종인발 7월 정계개편은 8월 27일로 예정된 차기 당권구도는 물론 2017년 대선 경선의 방향타가 될 전망이다. 더민주 차기 당권 및 대권 경선에 앞서 벌어지는 1차 전쟁, 즉 예선전이라는 얘기다. 이 국면에서 밀리는 쪽은 치명타다. 6월 1일 지역위원장 공모를 시작으로, 당 주류와 비주류 간 ‘치킨 게임’의 막은 올랐다.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vs “당내 갈등이 재점화하지 않겠느냐“ 전망은 팽팽히 엇갈렸다. 대규모 조직정비를 예고한 더민주의 지역위원장 물갈이를 놓고 백가쟁명식 분석만 쏟아질 뿐, 누구 하나 명쾌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더민주 조직강화특별위원회의(조강특위)가 열린 것은 총선이 끝난 지 한 달께인 5월 16일. 김 대표는 이 자리에서 “(총선 패배 등) 실패한 지역구에 대해서는 엄밀한 심사가 이뤄져야 한다”며 “정당이 오랫동안 변화를 이루지 못하고 과거에 집착하면 유권자에게 환영을 못 받는다”고 밝혔다.
당 한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선거가 끝나면, 낙선한 후보에 대한 교체는 종종 있던 일”이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한 지역을 독식하던 위원장 중 낙선자를 선별, 계파와 관계없이 메스를 가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조강특위 심사는 ▲지난 총선 득표 결과 ▲과거 지역구 실사 등을 종합한 뒤 ‘단수냐, 경선이냐’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사고지역 정비 등을 포함해 전 지역 조직 정비를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데드라인은 차기 전대 한 달 전인 ‘7월 말’이다.
당 안팎의 이목은 두 부류로 쏠렸다. 하나는 낙선한 수도권 친노다. 대표적으로 진성준 정태호 백원우 전 의원 등 문 전 대표와 가까운 인사들이다. 이들 지역에 비노(비노무현) 성향 인사를 내리꽂는다면 급격하게 쏠린 계파의 ‘균형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김 대표를 비롯해 더민주 내 비노계 인사에게는 ‘지렛대’다. 이들이 계파 균형추를 지렛대 삼아 차기 당권과 대권 구도를 흔들 수 있다는 의미다.
다른 하나는 참패한 호남 지역위원장이다. 더민주는 4·13 총선 당시 총 28곳의 호남 지역 중 23곳에서 패했다. 호남 권력구도는 차기 당권과 대권의 예고판이다. 김 대표가 호남 알박기 쳐내기에 성공한다면 이를 통해 전체 판의 밑그림을 새롭게 그릴 수 있다. 비주류 측에서는 ‘사고 지역구’ 지정이 대안으로 제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조강특위가 경선 없이 지역위원장을 임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현재 조강특위원장과 부위원장은 손학규계인 정장선 총무본부장과 이언주 조직본부장이 맡고 있다. 친노계 등 당 범주류 측이 김종인발 정계개편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까닭도 이와 무관치 않다.
관전 포인트는 김종인발 2차 물갈이의 ‘파급력’이다. 이 지점은 차기 당권 및 대권구도와 직결된다. 일각에선 비주류가 대규모 물갈이를 단행, 친노 등 당 주류 영향력이 감소할 것으로 점친다. 하지만 20대 총선 당선자 123명 가운데 70명 정도가 범주류 인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역위원장의 계파 역시 이 구도에서 크게 변하지 않을 전망이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다. 비주류가 이번 물갈이의 목표 지점을 ‘문재인 관리’에 둘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문 전 대표나 당 주류인 친노계 인사들의 전횡을 막는 ‘완충 역할론’이다. 정치적 변곡점마다 친노 패권주의를 앞세워 당을 좌지우지한 사당화를 최후방에서 막는 방패 역할이다. 여기에는 친노계가 현역 의원과 대의원, 당원 등 다수를 점하는 상황에서 이를 뒤엎을 만한 세력이 없다는 ‘현실론’이 깔렸다. 동시에 김종인발 2차 물갈이가 계파 갈등의 단초가 돼선 안 된다는, 이른바 ‘계파 패권주의 해소’라는 명분론도 최선이 아닌 차선을 택할 가능성이 큰 이유다.
김 대표가 2차 물갈이 단행 과정에서 ‘문재인 관리’를 위한 완충지대를 만든다면 차기 대권 구도는 ‘문재인 대 김종인’ 구도로 짜일 수도 있다. ‘킹이냐, 킹메이커’냐의 갈림길에 선 김 대표가 직접 등판할 수도, 비노계 후보를 적극 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제3 지대에는 손학규 전 상임고문을 비롯해 여권 성향의 유승민 무소속 의원과 정의화 전 국회의장 등이 포진했다.
세력 구도에서 열세인 김 대표가 소위 ‘당을 친노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시그널만 보내도 ‘김종인과 손학규’, ‘김종인과 정의화’ 등의 여러 조합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반대로 김종인발 2차 물갈이가 미풍에 그친다면 비노계의 원심력은 차기 대선 국면을 거치면서 일촉즉발로 치달을 전망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김 대표에게 2차 물갈이는 일종의 꽃놀이패다. 다만 영향력이 떨어진 김 대표는 킹보다는 ‘킹메이커 포지션’을 구축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 대표의 과제는 ‘존재감 끌어올리기’다. 4·13 총선 이후 김 대표의 영향력은 한층 떨어졌다. 광주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등 야권 호재 이슈 속에서도 김 대표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선거가 끝나자 임시지도부 체제의 한계가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다.
특히 정국의 눈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문 전 대표, 손 전 고문 등에 쏠렸다. ‘반기문 대망론’은 급부상했고, ‘문재인 대안론’은 현재진행형이다. 또 다른 대선 후보인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는 공정성장 담론을 꺼내 들면서 삼각 축의 핵심으로 부상한 상황이다. 김 대표 측의 승부수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김 대표 측은 새 지역위원장 조건으로 ▲도덕성 ▲전문성 ▲높은 인지도 ▲이슈파이팅 능력 등을 두루 갖춘 인재를 등용한다는 원칙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문 전 대표의 과제도 만만치 않다. ‘반기문 대망론’에 일격을 당한 문 전 대표는 당장 호남민심을 조기에 복원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게 됐다. 친노에 대한 호남 비토가 여전한 상황에서 당내 호남 조직까지 비노 성향으로 채워진다면, 차기 대선에 다다를수록 ‘문재인 필패론’이 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한 반 총장의 등장 이후 비교우위를 가졌던 2040세대에 대한 소구력을 잃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 전 대표로선 국면전환용 승부수가 절실하다. 범주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최대한 로우키 전략을 쓰면서 보폭을 넓히는 게 최선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문 전 대표는 6월 정국 들어 ‘조용한 행보’ 속에서도 민심잡기를 위한 광폭 행보에 나섰다. 6월 정국 첫 일성으로 충청권 방문을 택했다. 반 총장의 ‘충청권 대망론’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 행보라는 분석이 나왔다. 문 전 대표는 최측근인 노영민 전 의원과 청주의 천주교 청주교구청을 찾아 장봉훈 주교와 40분간 만나 얘기를 나눈 뒤 기자들과 만나 “(충청권 방문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말아 달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반기문 대망론’에 대한 견해를 묻자 “정치 얘기는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중앙당과 거리를 두되, 총선 전 약속했던 전국투어를 통한 민심 청취의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앞서 문 전 대표는 지난 4월 18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 김홍걸 씨와 전남 하의도 김대중 생가를 방문한 데 이어 전남 고흥 소록도(5월16일)와 경북 안동(5월27일), 부산(5월28일), 인천(6월2일) 등을 방문했다. 문 전 대표는 이르면 7월 중 해외 체류에 오를 것으로 전해졌다. 문 전 대표는 2014년 2·8 전당대회 당시 세 번의 죽을 고비(전대·당 혁신·총선)가 있다고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김종인발 정계개편과 8·27 전대, 차기 대선 경선 등 세 번의 죽을 고비를 눈앞에 뒀다. 첫 번째 고비는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