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압식 지고 전자식 대세…모터 위치 따라 C-MDPS와 R-MDPS로 나눠
필자의 첫 차는 2004년에 구매한 1993년식 프라이드 베타(기아자동차) 중고차였다. 요즘 차와 다른 점은 파워스티어링이 없었고, 뒷문 유리창은 손잡이를 돌려서 여닫는 방식이었다. 요즘 ‘오토윈도’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지만, 1990년대엔 앞유리만이라도 버튼식인 것은 굉장히 진보적인 것이었다.
파워스티어링이 없으면 웬만한 여자는 운전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자동차가 달리고 있을 때는 스티어링 휠(흔히 말하는 ‘핸들’)이 가볍지만, 멈춰 있을 때는 자동차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앞 타이어를 온전히 사람의 힘으로 돌려야 했다. 몸무게 100㎏에 육박하는 필자처럼 덩치 큰 남자도 파워스티어링이 없는 차를 주차하려면 팔에 온 힘을 줘야만 했다.
당시 새로 나온 쏘나타(NF)를 운전해 봤는데, 멈춰 있을 때도 손가락 하나만으로 스티어링 휠을 돌릴 수 있을 정도로 매우 가벼웠다. 파워스티어링 덕이다. 지금은 운전의 재미를 위해 파워스티어링이 묵직해지는 분위기지만, 당시 국산 브랜드의 신차는 파워스티어링을 과시하려는 목적인지 한없이 가벼웠다.
2005년부터는 2002년식 그랜저XG을 운전했는데, 어느날 파워스티어링이 먹히지 않으면서 기름 타는 냄새가 났다. 당시의 파워스티어링은 엔진의 회전으로 압력을 생성해 오일로 전달하는 유압식(EHPS: Electronic Hydraulic Power Steering)이었다. 유압이 고압이다 보니 파이프 연결 부위가 시원찮으면 오일이 새고, 유출된 오일이 엔진열에 타면서 냄새가 났던 것이다. 간만에 파워스티어링 없이 차를 몰고 카센터로 가야 했다. 파워스티어링 장치도 기계인지라 고장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현대차는 2006년 아반떼(HD) 이후부터 전자식 파워스티어링을 장착했다. 이를 MDPS(Motor Driven Power Steering) 또는 EPS(Electric Power Steering)라고 한다. ‘모터 회전에 의한’과 ‘전기식’은 같은 말이지만 현대차는 MDPS로 이를 홍보하면서 현대차 고유의 방식처럼 인식되는 면이 있다.
C-MDPS 방식은 스티어링 휠과 샤프트가 연결되는 부위에 모터가 위치한다.
현대차 방식은 스티어링 휠과 샤프트가 연결되는 부위에 모터가 위치하는 C-MDPS(Column-MDPS 또는 C-EPS) 방식이다(사진 참조). 엔진 가까이에 위치해야 하는 유압식과 달리 모터를 엔진과 멀리 장착할 수 있어서 엔진룸을 작게 설계할 수 있고, 덕분에 실내공간을 넓게 만들 수 있다. 현재 현대기아차의 준중형(그랜저) 이하 차는 모두 이 방식의 파워스티어링을 사용한다.
전기적으로 유압식과 유사한 운전감각을 주기 위해서는 노면 상태, 속도, 운전자의 습관 등에 따라 모터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제어해야 하는데 이는 기술자 및 테스트 드라이버의 축적된 경험에 따라 조정되는 주관적인 부분이다. ‘알파고’ 수준의 반응성을 추구하려면 소프트웨어 분야의 숙련도가 필요하다. 1990년대 말 CNC 머신(컴퓨터가 입력한 대로 부품을 깎는 기계) 도입 이후로 자동차의 기계적 성능은 상향 평준화됐고 이제는 소프트웨어가 품질 수준을 결정하는 시대다. 구글이 자동차 회사가 된다는 얘기도 허황된 것만은 아니다.
현대기아차의 MDPS에 대해 운전자의 불만이 많은 이유도 첫째 현대기아차가 MDPS를 도입한 것이 2006년부터로 역사가 오래 되지 않았고, 둘째 주관적인 부분이다 보니 초보운전자와 마니아급 운전자를 모두 만족시키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 1월 24일 방영된 한 TV 시사프로그램(시사매거진2580)이 현대기아차 MDPS의 결함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바 있다. 운전자가 찍은 동영상을 보면 스티어링 휠을 돌리는 데도 바퀴의 방향 전환이 전혀 되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시동을 껐다면 스티어링 휠이 잠겨서 돌아가지 않아야 하는데,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시동이 걸린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바퀴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MDPS의 명백한 결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해당 프로그램에서는 운전자의 스티어링 휠 조작을 감지하는 토크센서의 불량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운전자가 휠을 조작하면 센서가 이를 즉각적으로 감지하고 모터를 돌려야 하므로 센서가 필수적이다. 자동차는 엄청난 노면 마찰과 그에 따른 진동을 견뎌내야 하는데 토크센서를 X-레이로 검사한 결과 전자부품의 납땜에 손상이 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도입 초기라 부품의 완성도가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기아차 MDPS의 또 다른 문제로 지적된 것은 조작 시 ‘딸그락’거리는 소음이었다. 이는 모터 연결 부위에서 완충재 역할을 하는 플라스틱 부품인 ‘플렉시블 커플링’이 마모됐기 때문인데, 현대차는 올 2월부터 문제 차량들을 대상으로 부품 무상교체를 실시했다. 그러나 ‘리콜’이 아니고 ‘무상교체’이므로 이미 유상으로 수리한 고객들에게 수리비를 돌려주지는 않았다. 또 지난 4월에는 미국에서 해당 부품을 사용한 쏘나타(YF) 리콜을 실시했는데 미국에서는 MDPS 모듈 자체를 교체해 주는 데 비해 국내에선 커플링만 교체해 줬다는 데서 또 한 번 소비자들의 공분을 산 바 있다.
이처럼 현대기아차의 MDPS가 올해 들어 논란거리가 되자 경쟁사인 르노삼성과 한국GM은 신차인 SM6와 올 뉴 말리부를 출시하면서 ‘랙 구동형 파워스티어링(R-EPS 또는 R-MDPS)’을 장착했다는 것을 강하게 어필했다. 현대기아차가 MDPS라는 용어를 쓰다 보니 경쟁사들은 차별화를 위해 ‘EPS’라는 용어를 주로 쓴다.
랙 구동형(R-EPS) 방식은 조향이 이뤄지는 ‘랙’에 모터가 달린 것이다.
랙 구동형이란 칼럼 구동형과 달리 조향이 이뤄지는 ‘랙’에 모터가 달린 것이다(사진 참조). 바퀴 가까이 모터가 존재하다 보니 스티어링 감각이 칼럼형에 비해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칼럼에 장착된 경우 모터 회전이 바퀴까지 전달되려면 몇 단계 조인트와 기어를 거쳐야 하는데, 랙 구동형은 바퀴에 직접 모터 회전이 전달된다. 전륜구동 차량의 경우 엔진 하부에 변속기 및 차동기어가 있는데, 이들과의 간섭을 피하려면 공간이 확보돼야 하므로 주로 중형차 이상에서 장착 가능하다.
조향감각이라는 것은 주관적인 부분이기는 하지만 랙 구동형이 고급이라는 점은 제조사들에서도 받아들여지는 부분이다. 현대차에서도 쏘나타 중 최고사양인 ‘2.0 가솔린 터보’에서는 랙 구동형(R-MDPS)을 적용하고 있고, 제네시스 이상급에서는 랙 구동형 파워스티어링이 장착돼 있다.
현대차는 쏘나타 최고사양인 2.0가솔린터보에 랙구동형 파워스티어링을 적용하고 있다.
위에서 소개한 두 가지 방식 외에 조향장치 중 피니언 모터를 직접 돌리는 방식도 존재하는데, 이는 모터가 장착된 위치가 칼럼과 랙의 중간 부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외국 브랜드에서는 피니언 구동 방식도 자주 볼 수 있다. 고급차에는 모터 자체에 기어를 설정해 고속과 저속에서 기어비를 조정하기도 한다.
움직이는 자동차에서 운전자의 의도를 전달하는 장치는 스티어링 휠과 가속페달, 브레이크 페달이 전부다(자동변속기의 경우). 그 중에서도 스티어링 휠은 운전자가 가장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이기 때문에 파워스티어링 장치는 단순해 보이지만 가장 심오한 장치기도 하다.
우종국 자동차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