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바닥’까지 내려갔다 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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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정지원(정): 요즘 팀이 잘나가서 좋으시죠? 어느새 2위 모비스와 3경기 차 3위를 달리고 있는데 4강 플레이오프 직행 가능성을 어떻게 보시나요?
허재(허): 일단 선수들이 잘하니까 너무 좋아요. 하지만 4강 직행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모비스도 매우 강한 팀이기 때문에 만만치 않다고 봐요. 현재 우리가 15경기를 남겨놓고 있는데 그 중에 모비스 전이 2경기이기 때문에 그 경기를 잘 치르는 게 급선무일 것 같아요. 지금 상황에서는 동부와 모비스, 두 팀의 4강 직행이 가장 유력하다고 생각해요.
정: 동부, 모비스, 삼성, KCC 가 상위권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중 특히 상대하기가 까다롭거나 혹은 편하거나 하는 그런 팀이 있을까요?
허: 작년만 해도 그런 게 분명히 있었어요. 상위 4팀과 상대하면 어려웠고 하위 팀을 만나면 상대적으로 편했어요. 특히 동부를 만나면 고전을 면치 못했죠. 저희가 삼성에게 플레이오프에서는 완패했지만 사실 정규리그에서는 편하게 잘 싸웠거든요. 올해는 모든 게 다 달라졌어요. 상·하위 팀 가리지 않고 모든 경기가 다 힘들어요. 어느 팀을 만나든 자칫 잘못하면 패하고 마지막까지 잘 버티면 이기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요. 올핸 정말 죽겠어요. 이건 10개 팀 감독들이 만나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에요. 작년과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저희가 동부와 비교적 잘 싸운다는 거죠. 8연패의 악몽을 꾸다가 동부를 잡으면서 깨어났고요. 최근 5라운드 대결에서도 그 여세를 몰아 승리했죠.
정: 올해는 중위권 싸움도 치열하고 대부분의 팀들이 힘겨운 승부를 벌이고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허: 용병 자유계약제도가 트라이 아웃 선발로 바뀐 것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외국인 선수들의 기량 차가 제법 컸었는데 트라이 아웃 제도로 바뀌면서 실력이 다들 비슷해졌어요. 게다가 올해는 외국인 선수의 신장제한이 사라지면서 토종 빅맨을 보유한 팀들의 강점도 없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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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큰 의미는 없었어요. 다소 건방진 얘기일진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100승을 달성한 감독들도 많고 감독을 몇 년 하면 저절로 따라오는 기록인 것 같아요. 10년 감독 생활에 100승을 했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최단기간 100승 기록도 아니고 3년 반 만에 100승 했는데 그다지 칭찬받을 만한 기록은 아닌 것 같아요. 그냥 ‘내가 100승을 했구나’ 하는 정도의 느낌이었어요.
정: 지금처럼 팀 전력이 안정될 때까지 숱한 소문과 시련에 시달렸는데요. 올해는 허 감독이 특히 힘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허: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보니까 8연패 때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서장훈을 떠나보내는 과정에서 겪었던 고통도 적지 않았어요. 이제 팀이 점점 좋아지니까 성적을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버거울 정도로 커지고요. 연패를 당할 때나 상승세를 탈 때나 다 고난이 존재하더군요. 시즌 마칠 때까지는 단 하루도 편할 날이 없을 것 같아요.
정: 현역 시절 ‘농구 대통령’이라는 칭송을 들었고 한때 조성원(은퇴), 이상민(삼성)을 데리고 있었고 얼마 전까지는 서장훈(전자랜드)과 함께 있었어요. 소위 ‘스타 감독’은 ‘스타 선수’를 어떻게 지도하는지 무척 궁금해지네요.
허: 제가 처음 감독으로 왔을 때 조성원과 이상민은 30대 중반의 최고참급 선수들이었죠. 은퇴를 3~4년 앞둔 베테랑들이기 때문에 제가 젊은 시절이었으면 모르겠지만 저도 고참 생활을 오래 해봐서 ‘이들에게는 잘해주는 것이 약’이라는 신념이 있었어요.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선수들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강하게 대하는 것보다 존중해 주고 배려해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대해줬어요. 무조건 강하게 다루는 것은 카리스마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선수들과 융합하는 것이 진정한 카리스마라고 생각해요.
정: ‘허 감독은 주당’이라는 소문이 세간에 널리 퍼져 있는데요. 예전에 프로야구 선동렬 감독과 날이 새도록 함께 술을 마시고 바로 그 날 허 감독은 50득점을, 선 감독은 9이닝 완봉승을 거뒀다는 전설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는데 정말 사실인가요(웃음)?
허: 말도 안 되는 얘기죠. 그건 얘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과장일 뿐이에요. 제가 아마시절 선 감독이 광주에서 우승했을 때 호텔에서 우연히 만나서 함께 저녁 먹고 반주를 한 잔 했었죠. 그 이후로 가끔 술자리를 하곤 했지만 서로 시즌이 다르기 때문에 함께 술을 먹고 다음 날 같이 경기에 나갈 수 있는 날이 없다고 봐야죠. 그건 정말 호사가들이 지어낸 얘기일 뿐이에요(웃음).
문득 숙소 입구에 걸린 4년 전 허재 신임감독 취임식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안에는 청년 허재의 모습이 있었다. 지금은 염색을 안 하면 거의 백발일 것이라는 구단 관계자의 말 속에서 그간 감독 생활이 겪은 험난함이 묻어난다. 과연 ‘농구 대통령’은 100승 감독을 넘어 ‘챔피언 감독’까지 오를 수 있을까. 이번 시즌 결과가 사뭇 궁금해진다.
CJ미디어 아나운서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