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반격은 ‘허리’에서 시작됐다
▲ 지난 9일 뉴라이트 전국연합 창립 1주년 기념대회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표. 국회사진기자단 | ||
최근의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시장의 지지율 추이를 살펴보자. 먼저 지난 11월 13일~16일 실시된 CBS와 리얼미터의 조사에서 이 전 시장은 35.3%를 기록해 25.5%를 얻은 박 전 대표에 비해 10% 가까이 앞섰다. 앞서 11월 6일~9일까지의 조사에서도 이 전 시장은 33.5%로 박 전 대표(23.6%)보다 역시 10% 정도 앞질렀고, 그 이전 조사(10월30일~11월2일)에서는 각각 34.5%, 23.5%로 11%의 격차를 벌인 바 있다.
지난 15일 <중앙일보> 풍향계의 차기대선 후보 지지도 조사에서는 이 전 시장이 29.3%, 박 전 대표가 25.1%로 다소 차이가 덜 벌어진 것으로 나타나긴 했지만 이 조사에서도 이 전 시장은 지난 9월 13일 이후 계속해서 박 전 대표를 누르고 있으며 그 격차는 좁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지지율 경쟁에서 엎치락뒤치락 하던 두 후보의 지지율이 판이하게 다른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9월 중순 이후. 이후 박 대표는 지지율이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하락했고 이 전 시장은 꾸준히 상승하며 한나라당 대권후보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다.
박 전 대표 측은 이러한 지지율 차이에 대해 “이 전 시장은 혼자 뛰고서 1등 했다고 주장하는 모양새”라며 애써 평가절하했지만 언제까지나 지지율 추락에 초연할 수만은 없다. 지금까지는 “외부활동을 하지 않은 탓”이라며 무덤덤한 반응을 보여 왔지만 속내는 다르다. 박 대표 캠프에서도 이와 같은 분위기를 역전하기 위한 ‘모종의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 전 시장 지지율이 상승하며 당내에서도 이 전 시장 쪽으로 세가 몰리는 분위기이지만 박 전 대표가 그냥 당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털어놨다. 그렇다면 박 전 대표 측이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전략들은 무엇일까.
먼저 박 전 대표의 최근 눈에 띄는 행보 중 하나는 외부와의 접촉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박 전 대표는 지난 13일 MBC <생방송 오늘아침>에 출연해 건강비법을 공개했다. 대선주자들 중 첫 번째 손님으로 등장한 박 전 대표는 몸매관리비결, 스트레스 해소법 등을 공개했고 리포터에게 직접 비빔밥을 만들어 먹여주는 장면도 보여주었다.
그동안 거의 하지 않던 방송출연까지 했던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그동안 ‘신비주의 전략’으로 일관해 오던 박 전 대표가 대중과의 거리감 좁히기에 나섰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 여기에 박 전 대표의 어느 정도의 ‘계산적’인 발언이 덧붙여져 방송출연 효과를 배가시켰다. 박 전 대표가 ‘허리사이즈’를 공개한 덕에 화제를 모으기에 충분했던 것. 박 전 대표 측의 보좌진은 “방송 나간 뒤 허리 사이즈 얘기를 가장 많이 들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야당 일각에서는 “박근혜 대표와 동년배의 여성 대부분은 먹고사는 데 힘이 들어 허리사이즈 관리에 신경 쓰지 못 한다”는 쓴소리를 내놓기도 했으나 ‘유일한’ 여성후보인 박 전 대표는 남성이라면 관심을 모으지 못할 만한 ‘소재’로 대중의 이목을 끄는데 성공한 것이다.
박 대표의 대표적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콘텐츠 부족’에 대해서도 박 대표 측은 야심찬 준비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명박의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 손학규의 ‘민심대장정 프로젝트’와 같이 대중들에게 명확히 인식될 ‘박근혜만의 정책’이 없는 것 같다”는 지적에 대해 이정현 공보특보는 “박근혜 전 대표의 구상은 차원이 다른 그것이다. 우리는 ‘대한민국 선진화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선진화를 이루기 위해선 먼저 사회정상화가 이루어져야 하고 그 이전에 각 분야의 통합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설명을 내놓았다. 박 전 대표는 선진화전략을 대선국면의 주요정책으로 내세우기 위해 지난 5개월여 동안 착실히 ‘내실 다지기’에 힘써왔다는 것이다. 이정현 특보는 또 “이 전 시장이 내놓고 있는 운하정책은 단지 ‘경제 분야의 정책’일 뿐이다. 서울 시장의 신분이라면 그 정도의 플랜으로도 가능하지만 적어도 나라를 이끌어갈 지도자라면 좀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그동안 숨고르기를 해왔던 박 전 대표는 앞으로 이 정책에 대한 세부 계획들을 본격적으로 알리며 다소 늦게 뛰어든 ‘정책대결’에 맞설 계획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문제점은 박 전 대표가 이미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선진화 문제’에 대해 언급해왔지만 대중들에게 뚜렷한 인상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체적인 내용까지 설명한 적은 없으나 그는 이미 대선공약 중 하나로 선진화 주장을 해온 바 있다.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타 후보의 정책에 비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것은 분명 문제가 있으며 원인 분석에도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여당의 한 관계자는 “박 전 대표의 이미지는 정책면에서는 이미 한 수 아래라는 평가로 굳어진 면이 크다. 정책을 내세우면서도 그것을 ‘실행가능’으로 옮길 수 있다는 확실성에 대한 신뢰가 이 전 시장에 비해 떨어진다. 이 이미지를 깨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다. 단지 정책을 내놓는 것만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표가 가진 ‘이력’을 살펴보면 그의 잠재력이 언제 무서운 파괴력을 불러올지 알 수 없다는 전망도 없지 않다. 박 전 대표는 2년 3개월 동안의 당 대표 시절 세 번의 재보선에서 압승을 거두었고 지방선거에서도 완승을 했다. 박 전 대표 측은 또한 “당 대표 시절 당 지지율을 7%에서 53%까지 끌어올린 전례를 주목해 달라”는 주문을 내놓기도 한다. 이른바 ‘선거불패’의 명성을 이어온 박 전 대표가 대선전에서도 ‘무서운 잠재력’을 발휘, ‘불패 신화’를 이어갈 것으로 내심 기대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한편 박 전 대표는 곧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여기에 남북문제와 관련, 모종의 역할론도 나오고 있다. ‘여성이기 때문에’ 약점으로 꼽히는 외교 안보 문제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며 돌파구를 마련해 보겠다는 의지를 엿보게 한다.
박 전 대표가 과연 연말연시를 맞아 새로운 모습으로 지지율 사냥에 나설 수 있을지 정가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