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 꼼수 ‘머니게임’도 끈적
▲ 7일 도쿄돔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아시아예선. 한국이 일본에 13대2로 크게 뒤지자 덕아웃에서 선수들이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 ||
중계권 협상 왜 지지부진했나
지난 3월 5일 오후, 야구팬들의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WBC 국내 독점중계권을 갖고 있던 IB스포츠와 지상파 3사를 대표한 KBS간의 재판매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기 때문이다.
당초 IB스포츠가 WBC 조직위원회로부터 독점 중계권을 얻는 데 들인 금액은 450만 달러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 금액은 명확하게 공표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IB스포츠가 지상파 3사에 재판매 금액으로 300만 달러를 제시했다. 협상 대표인 KBS는 130만 달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양측의 입장 차이가 워낙 커서 3월 4일까지만 해도 협상은 결렬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결국 1라운드 첫 경기인 한국-대만전을 하루 앞둔 3월 5일 극적인 합의가 도출됐다. 말은 극적 타결이지만 알고보면 IB스포츠가 고개를 푹 숙이고 지상파 요구조건을 들어준 셈이 됐다. 자칫했으면 이번 WBC 동안 국내 야구팬들은 다른 나라 경기는 생중계로 보고, 정작 한국 경기는 3시간 딜레이 중계를 통해 뒤늦게 ‘구경’하는 상황에 처할 뻔했다.
최근 경제 상황이 어렵다보니 지상파 3사가 IB스포츠의 요구액 300만 달러를 무리한 금액이라고 판단한 것도 이해되는 대목이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협상 과정을 들여다보면 방송사가 상당히 완강한 자세를 보였다는 게 눈에 띈다. 최악의 경우, 생중계가 무산되면 지상파 방송사도 팬들로부터 엄청난 욕을 먹을 건 당연한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KBS는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알고보니 이승엽(요미우리)과 박찬호(필라델피아)가 WBC에 불참했다는 사실이 큰 변수가 됐다는 게 방송사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돈 주고 중계권을 사는 방송사 입장에선 시청률과 광고 매출이 중요하다. 이승엽과 박찬호가 없는 대표팀에 국민들이 과연 얼마나 큰 관심을 보이겠는가를 놓고 방송사가 일단 회의적인 시각으로 출발했다는 얘기다. 적자가 예상되는데 큰돈을 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실제 KBS 방송제작 관계자들은 기자들과 통화할 때마다 “이승엽과 박찬호도 없고…”라는 얘기를 늘 되풀이했다.
재미있는 건 이승엽 박찬호가 없는 대표팀이지만 중계권 협상 논란 등으로 되레 관심이 증폭됐다는 점이다. 3월 6일의 한국-대만전은 두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흥행 불발에 대한 우려를 일축했다. 생중계를 못 볼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됐던 게 오히려 야구팬을 더 끌어들인 효과를 낳은 셈이다.
왜 일본이 유리해보일까
이번 WBC는 대진 방식이 1회 대회와 달라졌다. 무조건 2승을 해야 상위 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다. 첫 경기를 제외하면 대진표가 확정돼있지 않은 독특한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 같은 방식에선 첫 경기 상대가 누구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이번 WBC에서 한국은 첫 상대가 까다로운 대만인 데 반해 일본은 최약체인 중국이었다(그런데 중국은 7일 대만을 꺾고 2라운드 진출 결정전에 나서 8일 한국과 맞붙었다). 어떤 경우의 수를 가정해도 일본이 한국보다 굉장히 유리한 일정을 갖게 된다.
대체 왜 일본은 이처럼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됐을까. 표면적인 이유는 3년 전 1회 WBC 성적 때문이다. 당시 한국은 1, 2라운드와 준결승까지 합해 6승1패를 하고도 4강에 그쳤고, 일본은 준결승전에서 딱 한 차례 한국을 이긴 덕분에 어부지리로 5승3패의 성적으로 초대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그때 최종 순위가 아시아에선 일본-한국-대만-중국 순이었다. 따라서 그걸 기준으로 이번엔 1-4위, 2-3위가 첫 경기에서 맞붙게 됐다는 게 WBC 조직위원회의 설명이다.
이 같은 설명만 놓고 보면 그다지 문제 삼을 게 없다. 대부분 국제대회가 직전 대회 성적을 기준으로 대진표가 작성되는 게 관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일본은 3월 5일 약체 중국과 첫 경기를 치른 뒤 하루 휴식일을 갖고 3월 7일 두 번째 경기를 갖는데, 한국은 3월 6일 첫 경기, 3월 7일 두 번째 경기를 치르는 타이트한 스케줄을 처음부터 배정받았다는 점이다. WBC는 각국 투수들의 부상 방지를 위해 투구수를 제한하고 연투를 금지하는 독특한 규정이 있다. 이런 규정하에선 첫 경기 후 하루 쉬는 일본이 상당한 이점을 얻을 수밖에 없다.
왜 하필 일본만 이런 특혜를 받는지에 대해선 공식적인 설명이 없다. 다만 WBC에서 일본이란 나라가 차지하는 비중, 메이저리그가 중심이 돼 개최한 WBC가 일본을 어떤 존재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고려한다면 일정 부분 답이 나온다.
미국 입장에선 일본이 1라운드 아시아예선에서 탈락해버리면 골치 아프다. WBC가 전세계 야구인의 축제라고 자랑하지만 실은 일본이 최대 고객 가운데 하나다. 엄청난 중계권료를 지불하고, 아시아예선을 개최하는 일본이 미국에서 열리는 2라운드로 건너가지 못할 경우 대회에 대한 흥미가 떨어질 건 당연한 일. 흥미가 떨어진다는 건 곧 WBC 조직위 입장에선 수익이 줄어든다는 얘기다. 어찌됐든 일본은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다보니 일본이 안정적으로 2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는 일정이 짜여진 것이라는 게 대부분 국내 야구인들의 추측이다.
만약 향후 국내에 돔구장이 건설되고, WBC 아시아예선을 한국이 주최할 수 있게 되면 그때에는 우리가 일정상의 이점을 얻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어쨌든 현재로선 한국은 오로지 실력으로 돌파하는 것 외엔 답이 없다. 그래서 한국이 1라운드만 통과하면 일정상의 유불리가 없는 2라운드 때 오히려 더 편하게 경기를 치를 수 있다는 희망적인 전망도 나온다. 앞서 언급한 국내 중계권 문제나 일본의 대진상 이점 등은 알고보면 흥행과 수익이라는 측면에서 어느 정도 공통된 이유를 갖고 있는 셈이다.
정진구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