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 롯데 압수수색…“부담스런 시선 분산 의도” 의혹
지난 2일 새벽 ‘정운호 게이트’의 핵심인물인 홍만표 변호사가 구속됐다.
지난 2일 새벽 1시 30분쯤. 홍만표 변호사는 결국 구속됐다. 앞서 홍 변호사는 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아예 출석하지도 않았다. 법조계에서는 홍 변호사가 수많은 특수수사를 경험한 만큼 스스로 구속을 피할 수 없겠다고 직감했을 것이란 관측이 높았다.
검찰에 따르면 홍 변호사는 지난해 8월 네이처리퍼블릭 정운호 대표로부터 3억 원을 수임료 명목으로 챙기고, 2011년 9월에는 지하철 매장 임대 사업과 관련한 청탁 명목으로 정 대표 등 2명에게서 2억 원을 받은 혐의가 적용됐다. 또한 2011년 9월부터 최근까지 수임료 소득 수십억 원 신고를 누락하고 10억여 원을 탈세한 혐의도 포함됐다.
여론의 관심은 홍 변호사가 과연 얼마큼의 법조로비에 관여했는지 여부에 쏠리고 있다. 검찰도 그러한 시선을 의식한 듯 홍 변호사 구속 직전에 그와 연관된 검찰 관계자 10여 명을 추렸다. 검찰은 이들이 홍 변호사와 전화 통화를 했는지, 금융거래 내역은 없었는지 등을 들춰본 것으로 알려졌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 내부에서 뭔가를 밝혀내야 한다는 초조함이 있다고 한다. 특수1부 수사관들은 지금 ‘5분 대기조’처럼 움직인다. 탈세는 개인 재산 부분이지만 법조로비는 검찰 조직까지 들춰야 하는 만큼 상당히 아픈 수사다. 일단 시작을 한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라고 전했다.
이처럼 법조로비 수사가 원만히 진행되려는 찰나, 수사의 흐름은 2일 오전부터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검찰이 롯데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급파된 수사관만 100여 명으로 롯데 면세점 본점,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자택, 신 이사장 아들 장 아무개 씨의 자택 등을 강도 높게 수색했다. 검찰은 신영자 이사장과 그의 아들 장 씨가 정운호 대표로부터 수억 원대 금품을 받은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교롭게도 홍 변호사가 구속된 상황에서 롯데 수사가 대대적으로 진행되자 법조계 일각에서는 ‘물타기 수사’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법조비리 수사로 골치가 아픈 검찰이 주위의 부담스런 시선을 일단 분산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이러한 의혹을 일절 부인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롯데 건은 정운호와 관련한 사안으로, 롯데만 별건으로 보는 건 아니다. 압수수색에 동원한 수사관도 대기업 수사에 비해서는 많이 파견한 것은 아니다. 그동안 롯데와 관련한 첩보가 상당히 많이 쌓였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검찰의 롯데 압수수색은 남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동안 롯데는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부장검사 조재빈)와 방위사업수사부(부장검사 박찬호)가 각각 비리 첩보를 입수해 각종 의혹들을 1년 이상 들여다보고 있었다. 특히 방위사업수사부에서는 정운호 대표와 신영자 이사장의 연결고리로 알려진 브로커 한 아무개 씨와 관련한 군납 비리 의혹을 조사했다. 한 씨는 정운호 대표 등에게 군납 청탁 명목으로 1억 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현재 구속된 상태다.
검찰에 따르면 한 씨는 정운호 대표와 관련한 건에 대해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그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사기 건으로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 받고 난 이후다. 한 씨는 투자금 명목으로 지인들에게 3억여 원을 받았는데 지난달 25일 사기 혐의로 서울중앙지법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한 씨는 정운호-신영자 연결고리를 검찰에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첩보를 쌓아둔 검찰은 한 씨의 진술로 수사에 속도를 얻었다는 게 중론이다.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할 만큼 혐의 입증에 상당한 자신감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롯데월드타워 일요신문DB
하지만 검찰이 수사에 결정적 단서를 잡았다 하더라도 여전히 롯데수사에 비해 법조비리 수사가 지지부진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이번 압수수색은 ‘정운호 게이트’를 담당하고 있는 특수1부가 아니라 방위사업수사부에서 그대로 진행했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만약 정운호 게이트에 방점을 찍었다면 특수1부에서 진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롯데 수사에 좀 더 비중을 두었기에 방위사업수사부에서 진행했다고도 볼 수 있다. 즉 롯데를 별건으로 두고 수사를 더욱 확장할 수 있다는 의미”라며 “정운호 게이트가 롯데로 불똥이 튀었다고 하지만 반대로 롯데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정운호 게이트가 동력을 달아줬다고 볼 수도 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검찰 입장에서는 호재 중에 호재다. 홍만표 변호사에 대한 수사 부담이 줄고 롯데 수사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명분을 얻은 셈”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현재까지 검찰은 홍 변호사에 대한 ‘법조비리’ 수사에 상당히 미온적인 것으로 파악된다. 검찰은 아직 홍 변호사와 연관된 10여 명의 검찰 관계자의 별다른 혐의를 잡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검찰은 정운호 대표의 보석 신청에 대해 ‘적의처리’(재판부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취지) 의견을 낸 당시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장과 공판2부장에 대해서 소환 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경찰에서 송치된 사건을 무혐의 처분했던 당시 서울중앙지검 형사 3부장에 대해선 서면조사에 그쳐 ’제 식구 감싸기‘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이밖에 검찰은 당시 수사팀 검사들의 금융거래 내역까지 확인하겠다고 나섰지만 금전거래 대부분이 계좌가 아닌 현금으로 이뤄지는 경우를 감안할 때 실효성이 없는 조사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치권 일각에서는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특히 ‘여소야대’로 재편된 20대 국회 상황을 감안하면 ‘홍만표 특검’이 열린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는 형국이다. 만약 ‘홍만표 특검’이 진행된다면 이명박 전 대통령 내곡동 사저 특검 이후 4년 만의 특검이다. 국민의당 김성식 정책위원장은 “이번 사건은 본질이 전관 커넥션 법조 비리지 탈세가 아니다”라며 “검찰 수사가 제 식구 감싸기와 내부 도화선 끊어내기로 진행된다면 20대 국회 제1호 특검 대상은 홍만표 전 검사장의 법조비리 사건이 될 가능성 높다”라고 주장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정운호 게이트‘ MB정권 겨냥하나? ‘특혜 기업’ 롯데를 터는 까닭은 정운호 법조 게이트가 롯데까지 불똥이 튀기면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특히 일각에서는 롯데가 이명박 정부 당시 여러 특혜를 받은 의혹 등을 떠올리면서 ‘정운호 게이트’가 MB정권 인사들까지 겨냥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시각은 정운호 게이트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조카가 언급되면서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최근 서울 메트로 한 고위 임원은 “이 전 대통령의 조카가 정운호 대표와의 만남을 주선했다”고 폭로했다. 이 임원은 ‘영포회’ 활동을 하며 이 전 대통령과 친분을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경북 영일과 포항 출신 공직자들의 모임인 ’영포회‘는 이명박 정부 핵심 인사들이 대거 포진해 있어 ’MB정부 비선모임‘이라는 명칭도 붙은 바 있다. 당시 지하철 역사 내 매장 입점 업무를 총괄한 해당 임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전 대통령 조카 이 아무개 씨에게 연락이 와서 나가보니 정운호 씨가 있어 만나게 됐다. 지하철 매장 때문인 것 같아 밥만 먹고 헤어졌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후 정 대표의 네이처리퍼블릭은 서울메트로 역사 내 화장품 매장에 대거 입점하면서 자리를 굳히게 된다. ‘정운호 게이트’와 연관돼 압수수색까지 진행된 검찰의 롯데그룹 수사도 결국 칼끝은 이명박 정권을 향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실제로 롯데그룹은 지난 2002년~2003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제외하곤 검찰 수사대상에 오른 적이 없었다. 특히 ‘제2롯데월드 신축’ 성공으로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특혜 기업’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이후 분위기가 달라졌고, 롯데가 사정기관의 타깃이 될 것이라는 전언이 끊이지 않았다. 검찰은 롯데와 관련한 비리 첩보를 상당수 축적해 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검찰 입장에서는 시기상 부담이 없다는 점이 수사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총선도 끝났고 대기업 수사에 들어가기 좋은 시기다. 롯데 수사를 하다보면 이명박 정부와 관련한 커넥션 수사도 불가피하다. 정운호 게이트로 촉발된 수사가 롯데를 시발점으로 대대적인 사정국면으로 확전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예측했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