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는 짧아도 점프는 내가 최고”
▲ 키가 작아 한때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는 최윤아. 그는 한계에 부딪칠 때마다 악바리 근성으로 인간 승리를 이뤄내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최윤아를 인터뷰하러 간다고 하자, 기자의 지인 중 한 남성이 숨 넘어갈 듯이 전화를 해댄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우리 윤아, 한 번만 만나게 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최윤아가 신한은행 ‘초짜’ 시절부터 팬이었다는 그는 최윤아 때문에 여자 농구의 재미에 흠뻑 빠졌다는 부연 설명까지 달았다. 최윤아에게 가장 궁금한 게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0.1초도 걸리지 않고 “휴대폰 번호”라고 외쳐댔다^^.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긴 어렵지만 전화통화는 할 수 있게끔 연결해 보겠다고 약속하고 최윤아를 만나러 갔다.
농구 코트에서의 최윤아와 사복을 입고 나온 최윤아는 사뭇 달라 보였다. 얼굴도 손바닥만 했고 쭉쭉 뻗은 다리와 잡티 하나 없는 하얀 얼굴, 그리고 별명대로 넉넉한 ‘어깨’ 등 ‘악바리’ 최윤아의 이미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절 처음 보고 하시는 말들이 ‘진짜 어깨 넓다’ ‘얼굴이 작다’ ‘직접 보니까 키가 크네’ 등의 반응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런데 제 어깨, 다른 선수들이랑 거의 비슷하거든요. 제가 직접 재보기도 했다니까요.”
여자 농구 선수들 중 가장 많은 팬을 갖고 있다는 얘기에 최윤아는 진심어린 겸손함을 내보였다.
“사실 시즌 들어가면 그런 반응들을 잘 몰라요. 경기장에서 제 이름을 불러주는 분들이 많다는 걸 느낄 정도라고나 할까. 그런데 지난 번 베이징올림픽 끝나고 미니홈피를 들어가보니까 일촌 신청을 하신 분들이 2000명이 넘게 계시는 거예요. 깜짝 놀랐죠. 어떤 분들은 경기장에 ‘싸이월드 일촌 신청했으니 받아달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계실 정도예요. 그때 (인기를) 조금은 실감을 했어요.”
인기가 많다 보면 가끔 돌발 행동을 서슴지 않는 남성 팬을 만나기 마련이다. 최윤아한테도 그런 팬이 있었다. 최윤아가 베이징올림픽 8강 미국전에서 허리 부상을 당하고 귀국했을 때 최윤아가 있는 병실로 한 남자가 기자 행세를 하며 전화를 걸었다. 최윤아의 몸 상태와 회복 여부, 그리고 심경 등을 묻고 끊었는데 그 다음날 또 다시 전화를 해서는 간단한 안부 인사를 전하다 ‘몇 월 며칠 야구장에 갈 건데 그때 같이 가겠느냐’고 말해 최윤아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그 후로 어떻게 해서 최윤아의 휴대폰 번호를 알았는지 하루에 20여 통의 전화와 문자 폭탄을 보내며 최윤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호소했다고 한다. 최윤아가 아예 전화를 받지 않자, 이번엔 다른 전화번호로 계속 전화를 했다는 것.
▲ 08-09 여자프로농구 시상식에서 MVP를 수상한 최윤아. | ||
“약간 무섭고 섬뜩할 정도였어요. 수신거부로 저장해놔 통화는 하지 않았지만 너무 지나친 관심과 표현은 선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꼭 알아주셨음 좋겠어요.”
최윤아를 가리키는 수식어는 버라이어티하다. 인기 연예인과 스포츠스타를 빗댄 표현부터 귀여운 외모와 플레이와 관련된 별명도 있다. 베이징올림픽 이후 가장 많이 불렸던 ‘국민 여동생’은 최윤아의 현재 위치를 가늠케 해준다.
“개인적으로 이 별명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그런데 김연아 선수의 별명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전 농구계의 국민여동생으로 바꾸려고요.”
영화배우 문근영과 비슷한 이미지로 인해 문근영이란 별명도 있는데 정작 당사자는 제발 그 별명만은 붙이지 말아달라고 주문한다. 문근영과 비교조차 안 되는 외모 때문이라고. 눈에 띄는 별명은 ‘어깨’. 그런데 그 별명을 자신이 직접 지었다고 해서 폭소가 터졌다.
“KBL 가이드 프로필 코너에 별명을 써넣어야 했어요. 팬들이 ‘햄토리’라는 별명을 붙여주셨지만 이미지가 넘 약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제가 ‘어깨’라고 지었어요. 어깨 하면 뭔가 강한 이미지가 풍겨 나잖아요. 쉽게 접촉할 수도 없을 것 같고. 아! ‘여자 강동희’란 별명도 있었어요. 체격도 플레이도 강동희 선수랑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거든요. 선수로선 자랑스런 별명이죠.”
최윤아는 포인트가드의 대부격인 강동희 원주동부 코치를 경기장 외엔 단 한 차례도 직접 만난 적이 없다고. 만약 진짜 만날 기회가 주어진다면 강 코치에게 원포인트 레슨을 받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최윤아의 별명 중 단연 압권은 ‘방귀대장’! 신세계 김정은이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최윤아는 방귀대장’이라고 폭로했던 게 일파만파를 일으켰다. ‘방귀대장’으로 소문난 이후 최윤아를 가까이 하려는 선수가 없었다는 것.
“너무 억울했어요. 제가 방귀대장이면 정은이는 사령관 수준인데도 저만 방귀대장으로 소문났잖아요.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정은이는 방귀에다 트림까지 심해요. 원래 남들 앞에선 잘 안 하는데 대표팀에서 정은이랑 같은 방을 쓰면서 편하게 방귀를 텄거든요. 그런데 그걸 방송에다 말 할 지 누가 알았겠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농구를 시작한 최윤아는 그리 큰 키의 선수가 아니었다. 부모의 강권에 못이겨 열심히 성장 발육에 좋다는 우유를 마시기 시작하다가 곧 포기를 했다고. 그 이유가 궁금했다.
“부모님을 비롯해서 가족들 모두가 키가 크지 않아요. 그런 가운데 제가 우유를 마신다고 해서 없던 키가 갑자기 생길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아버지가 우유 사먹으라고 1000원씩 주시면 과자 사 먹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최윤아는 학창시절 때만 해도 작은 키에 대해 큰 불만이 없었다. 그러나 프로 입단 후 170cm를 넘지 못하는 단신의 비애, 한계 등을 절감하고 잠시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고. 모든 걸 극복하려면 반복된 연습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프로에선 포인트가드도 슈팅을 때려야 했어요. 그래서 데뷔 초에 슈팅을 잘 해야겠다는 욕심에 새벽마다 혼자서 1000개의 슈팅 연습을 했었어요. 신이 공평한지 키가 작은 대신 점프력만은 자신 있었거든요. 어렸을 땐 주로 남자들과 어울려 놀았어요. 축구 배구 농구 야구 등을 하면서 남자들한테 지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달려들었던 게 근성을 만들어 준 것 같아요.”
대전여상 시절 최윤아는 하은주가 일본으로 귀화한다는 뉴스를 신문을 통해 접했다고 한다. 하은주가 WKBL에 진출한다는 기사도 신문으로 읽었다. 당시 그 기사를 보면서 ‘이런 최장신의 선수랑 한 번 뛰어 본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드라마틱하게도 최윤아는 귀화를 포기하고 신한은행에 입단한 두 살 위의 하은주와 한 팀에서 만나게 된다.
▲ 사진제공=신한은행 에스버드 | ||
“신기했죠. 뉴스에서만 봤던 선수랑 함께 생활하게 됐으니까요. 은주 언니의 첫 인상은 약간 도도에다 인텔리한 느낌이 났어요. 대학을 다녀서 그런지 사람이 잘나 보이더라고요. 빈틈도 없어보였고요. 그런데 대표팀에서 한 방을 쓰게 되면서 은주 언니의 빈틈을 하나 둘씩 알게 됐죠. 덜렁거리다 다치기 일쑤고 후배 앞에서 방귀를 뀌질 않나 무겁고 진중한 이미지가 가볍고 빈틈 많은 선수로 금세 변신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친해진 것 같아요. 서로 편해지면서부터.”
최윤아는 평소 하은주와 많은 대화를 나눈다. 그 내용은 주로 패스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라고. 하은주는 처음에 최윤아의 패스가 상당히 불편했고 최윤아는 패스 타이밍이 맞지 않아 하은주에게 공을 주기가 부담스러웠다. 둘이서 그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를 나누다 문제점을 발견한 뒤론 서로가 쳐다보지 않아도 공을 주고받을 수 있을 만큼 호흡이 절로 맞는 콤비 플레이를 연출하게 된 것이다.
“은주 언니랑 ‘명콤비’가 되고 싶어요. 제가 FA 신분이라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가급적이면 신한은행에서 콤비의 르네상스를 열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지금까지 은주 언니와 호흡을 맞추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거든요. 다음 시즌엔 환상적인 콤비 플레이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최윤아는 지난해 6월 올림픽 예선전을 앞두고 갑상선기능저하증이란 진단을 받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얼굴과 손, 발이 퉁퉁 부어 오르고 쉽게 피로해지는 데다 경기를 뛰고 나면 온몸이 통증으로 쑤시는 등 엉망진창의 몸 상태가 되곤 했다.
“베이징 올림픽 출전하기 전에 몸 상태가 올라가지 않는 거예요. 너무 힘들어서 눈물이 날 정도로 컨디션이 제로였어요. 오죽했으면 올림픽 끝나고 은퇴할 생각을 했겠어요. 그런데 불행 중 다행이라고 올림픽 막판에 허리 부상을 당하면서 오랫동안 쉬어서 허리는 물론 갑상선까지 좋아지게 됐죠. 그때 생각하면 정말 악몽과도 같았어요.”
대부분의 운동 선수 가정 형편이 그러하듯, 최윤아도 넉넉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다. 집에 보일러를 틀 기름이 없어 엄마랑 오빠가 꼭 안고 잤다는 얘기에 가슴이 저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찌감치 돈을 벌어 집안에 보탬이 돼야겠다는 목표가 있었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고통과 극복을 이겨내며 최고의 농구 선수가 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지난해 대전에다 큰 평수의 아파트를 장만했어요. 물론 전세지만 부모님이 행복해 하시는 모습을 보니까 너무 감격스럽더라고요. 가끔 오빠랑 이런 얘길 해요. 우린 오히려 부모님께 고마워해야 한다고. 힘들고 어려운 생활을 통해 성공과 자립을 배우게 됐으니까요.”
이번 시즌에 MVP를 수상한 최윤아는 아직 자신은 최고의 자리에 오를 만한 ‘그릇’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2~3년 안에 반드시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나타냈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