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필환 포럴톤 대표가 기술 유출을 의심하는 이유는 포럴톤의 비협조에도 11번가가 2008년 2월 정상 오픈했기 때문이다. 윤 대표는 SMC 없이 몇 달 만에 11번가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우리 쪽 소스코드와 대조해 보자고 말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당시 윤 씨가 특허를 주장한 소프트웨어(SW)는 통합 솔루션인 ‘SMC’(셀러마케팅센터)다. 소스코드 등 전문적인 부분을 제외한 SMC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전자상거래 사이트에서 특정 키워드(또는 상품)가 얼마나 검색되는지(또는 노출되는지) 데이터로 추출해 광고주에게 추천(또는 과금)하는 서비스. 둘째, 상품 판매자와 사이트 접속자(잠재적 구매자) 간 전화연결을 중개하고 통화량을 추출해 광고 단가를 책정하는 서비스. 셋째, 특정 사이트에 동시간 접속자가 몰려도 검색 속도가 유지되는 ‘다이아그램’(시스템 설계도).
예를 들어 운동화를 판매하고 싶다면 나이키와 아디다스 중 어떤 브랜드(혹은 특정 모델)의 검색량이 더 높은지 알고 싶을 것이다. SMC는 이 검색량을 토대로 판매자에게 검색어를 판매하고 실제 상품을 등록하도록 안내한다. 어떤 상품을 어느 곳에 위치시킬 것인지는 SMC가 결정할 수 있다. 또 실제 구매자와 판매자 간 통화가 웹사이트 ‘클릭’으로 이뤄지면 통화량을 집계해 옥션 등 사이트 운영자와 공유한다. 통화가 길수록 옥션은 판매자로부터 더 많은 광고료를 받을 수 있다.
현재는 대부분 전자상거래 사이트가 상용 중인 서비스지만 당시만 해도 이 기술은 ‘특허’에 해당했다는 것이 윤 씨 주장이다. 이에 대해 IT에 정통한 법조계와 사정기관 관계자는 각각 “윤 씨가 관련 특허를 보유했던 것은 맞다”고 했다. 실제 윤 씨는 2005년 8월부터 옥션과 제휴해 SMC를 공급했다. 윤 씨가 공급한 SMC는 ‘옥션 생활정보서비스(S/L)’라는 이름으로 2009년까지 사용됐다.
포럴톤은 옥션에 SMC를 공급하면서 2005~2009년 매달 수익의 일정 부분(5~30%)을 수수료로 받는 계약을 맺었다. 물론 S/L의 핵심기술 및 라이선스 권한은 포럴톤에 있었다. 대신 옥션은 계약서상 “을(포럴톤)은 계약 기간 동안은 물론 계약 종료 후 1년 이내에는 갑(옥션)의 서면동의 없이 다른 온라인 오픈마켓 업체를 상대로 S/L 제공과 유사한 형태의 제휴를 진행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이러한 계약서상 내용만 보면 포럴톤의 SMC가 기술적으로 얼마나 우위에 있는 프로그램인지 짐작 가능하다.
2006년께 국내에 오픈마켓 시장이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오픈마켓을 구현하는 데 필수 프로그램 중 하나인 SMC를 보유하고 있는 포럴톤의 몸값이 자연스레 껑충 뛰어올랐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포럴톤의 연매출은 2006년 56억 원에서 2007년 147억 원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2006년 1월 6900만 원이던 옥션 S/L의 매출은 불과 1년 만인 2007년 1월 6억 6000만 원으로 10배가량 급증했다. 또 2007년 10월부터는 매달 20억 원 이상 안정적인 수익을 냈다. ‘매달 수익의 일정 부분(5~30%)을 수수료로 받는다’는 계약을 맺은 포럴톤의 수수료 수입도 그만큼 늘었다. CJ 등 대기업이 오픈마켓 시장에 속속 진출하던 시기도 이때다.
윤필환 대표는 포럴톤 내부 서버를 확인한 결과 2009년 ‘11번가’라는 아이디가 수차례 회사 내부 서버에 접속한 기록이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서버 로그 출력물.
SK텔레콤 역시 2007년 6월 “연내에 자체 온라인 쇼핑몰(11번가)을 오픈하겠다”며 오픈마켓 진출을 공식화했다. 프로젝트 코드명은 ‘Tmall’(티몰). 티몰 추진 과정에서 포럴톤은 SK텔레콤으로부터 SMC 납품에 관한 ‘러브콜’을 받았다. 그러나 포럴톤은 이미 옥션에 SMC를 공급하고 있던 상황인 데다 계약서상 옥션의 동의 없이 다른 업체에 SMC를 공급하거나 제휴할 수 없는 상태였다. 포럴톤은 SK텔레콤 러브콜을 거절했다.
하지만 윤 대표는 “2007년 7월 2일부터 10월 15일까지 내부 직원 박 아무개 씨(당시 영업본부장) 주도로 SMC 기술이 유출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박 씨가 ‘영업비밀’을 넘긴 곳으로 의심되는 회사가 바로 에어크로스다. 에어크로스는 SK텔레콤이 2007년 4월 30일 지분 100%를 사들인 회사다. 사업 영역은 ‘무선 광고 관리 솔루션 판매’ 등으로 포털톤과 상당 부분 일치했다.
공교롭게도 에어크로스는 티몰 작업이 완료된 2008년 주주총회를 열고 자진 해산을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에어크로스의 광고 사업권은 2008년 설립된 크로스엠인사이트(SK마케팅앤컴퍼니 자회사)로 넘어갔다. 크로스엠인사이트는 다시 2009년 광고 사업권만 40억 원에 인크로스로 양도하고, OK캐쉬백서비스와 합병하며 소멸했다. 2년 사이 에어크로스→크로스엠인사이트→인크로스로 광고사업권이 이동한 것이다.
윤 대표가 기술 유출의 중심인물 중 한 명으로 지목하고 있는 김 씨는 이들 회사에서 모두 대표를 지낸 데다 광고사업을 총괄한 인물이다. 또 노재헌 씨의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김 씨는 지난 4월 1일 윤 대표와 메신저 대화에서 “2010년 인크로스와 이노에이스(SK그룹 계열사) 합병 후에도 계속 광고를 총괄하다가 2013년부터 ‘오너’와 같이 중국 사업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씨가 지칭한 오너는 노 씨로 추정된다.
윤 대표는 “오픈마켓을 하려면 SMC는 필수 프로그램”이라며 “김 씨와 박 씨 등이 SMC를 유출하기 위해 일찍부터 공모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 씨는 두 사람이 공모했다고 판단한 근거로 포럴톤 계정의 사내 메일 1만여 통(중복 메일 제외한 추정치)을 제시했다. 메일을 통해 본 주요 사건 경과는 이렇다.
2007년 1월 초 SK텔레콤 직원이던 김 씨는 포럴톤 영업본부장 박 씨와 만나 포럴톤이 홍콩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는 등의 내용을 전해듣고 윤 대표에게 “함께 사업을 해보자”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포럴톤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본 것이다. 같은 해 4월 27일 김 씨는 포럴톤에 사업제안서를 보내며 점심 미팅을 제안한다.
김 씨는 티몰 개발이 시작된 7월께 에어크로스 지원본부장으로 파견된다. 같은 달 포럴톤의 박 씨는 에어크로스 측에 ‘광고 사업 견적서’를 보냈다. 또 박 씨는 8월 3일 포럴톤 개발자들에게 “에어크로스에서 티몰 관련 광고(사업)를 진행할 것”이라며 “(포럴톤은) 월 3000만 원을 받을 수 있고, 에어크로스 개발자에게 SMC를 시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에어크로스 개발자 등과 미팅을 갖고 SMC ‘납품’에 속도를 냈다.
그러나 당시 윤 대표는 SMC ‘납품’을 생각해 본 적 없었다고 말한다. 납품의 의미는 곧 라이선스 등 특허권을 넘기는 행위기 때문이다. 윤 대표는 “옥션으로부터 매달 수억 원의 수수료를 받던 SMC를 대기업에 거저 넘기는 것이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박 씨는 8월 10일 에어크로스 측에 SMC 납품 단가가 담긴 견적서를 보냈다. 상품가는 1억 원이다.
윤 대표는 해외 출장 등으로 이 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8월 30일 포럴톤 내부에선 티몰 납품을 위한 TF(태스크포스)가 가동됐다. 이 과정에서 박 씨는 포럴톤 소프트웨어 개발자로부터 옥션 측과 계약했던 S/L 관련 ‘프로젝트 계획서’, ‘테이블목록’ 등을 받았다.
9월 들어선 에어크로스에 납품할 ‘소스코드’ 등을 구체화하는 작업까지 진행된다. 에어크로스의 김 씨는 티몰TF 진행 상황을 이메일로 받았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윤 대표는 발주처인 SK텔레콤 측에 “내부 사정상 납품할 수 없게 됐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도록 직원에게 지시했다. 그러자 SK텔레콤 측 관리자인 안 아무개 씨는 “SK텔레콤 사업부 자체 계획이 바뀌는 만큼 문제가 심각하다”며 재고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윤 대표는 “정식 계약 문안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납품을 거절했다.
SK텔레콤은 2007년 6월 연내에 자체 온라인 쇼핑몰(11번가)을 오픈하겠다며 오픈마켓 진출을 공식화했다. 프로젝트 코드명은 Tmall(티몰)이다. 티몰 추진 과정에서 포럴톤은 SK텔레콤으로부터 SMC 납품에 관한 러브콜을 받았다. 사진은 11번가 로고.
당시 상황에 대해 사건 관련자들은 엇갈린 진술을 내놓는다. 먼저 안 씨는 “포럴톤과의 정식 계약서는 없었고, 중간에 포럴톤이 못하겠다고 말해 무척 화가 났다”며 “(이후) 박 씨가 전화를 걸어와 ‘옥션 쪽에서 우리와 계약한 SMC를 SK텔레콤 쪽에 넘긴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아니라고 해 달라’고 부탁한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 씨는 “(안 씨에게) 그런 전화를 건 기억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박 씨는 “에어크로스는 머릿속에서 지워라. (유출과는) 전혀 관련 없는 회사다. 윤 대표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 그 사람이 소설을 쓴 것이다. 자기 사업이 망하니까 나를 어떻게든 기술 유출로 엮어보려고 한다. SMC도 윤 대표가 엄청난 기술처럼 말하는데 별 거 아니다. 우리도 SMC 만들 때 G마켓 기술을 참조했다”고 해명했다.
김 씨는 “2007년 당시 윤 대표와 박 씨는 일면식도 없던 사람이고, 포럴톤도 잘 모른다”며 “굉장히 오래된 일로 기억이 안 난다. (윤 대표가) 왜 나를 걸고 넘어지는지 모르겠다. 나는 개발자가 아니고, 11번가 사업에 전혀 관여하지도 않았다. 인크로스와도 회사를 나오면서 모든 관계가 끝났다. (기술 유출은)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해명했다.
한편 SK텔레콤 측은 “관련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고, 인크로스 측은 “에어크로스와 인크로스는 전혀 다른 법인으로 김 씨 역시 퇴사해 답변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밝혔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