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일 사람들 잇는 다리 될래요”
지난 16일 가와사키 프론탈레의 연습구장인 아소그라운드에서 만난 정대세는 <일요신문>과의 창간 특별인터뷰에서 “정치적인 의미를 떠나 세 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기쁘다”며 자신의 처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여전히 정대세와의 인터뷰에는 정치적인 문제와 관련된 예민한 질문은 가급적 하지 말아야 한다는 무언의 약속 같은 게 있지만 솔직담백한 정대세 특유의 성격상 인터뷰 자리에서만큼은 ‘제약’이 따로 없었다.
오후 2시부터 진행된 훈련이 5시 30분이 지나서야 끝날 정도로 가와사키는 현재 일본 프로축구 18개 구단 가운데 1승2무2패로 13위에 처져 있어 팀 분위기가 화기애애한 상태는 아니었다. 정대세 또한 요즘 최고의 고민이 팀 성적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훈련을 마치고 기자 앞에 나타난 정대세는 미국 유명 브랜드의 모자에다 패셔너블한 옷차림을 한 채 신세대 특유의 밝고 환한 분위기 속에서 인터뷰를 즐겼다.
―지난 4월 1일 서울에서 열린 월드컵최종예선전에선 기자들과 별다른 말을 주고받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민감한 시기였기 때문이겠죠?
▲그렇죠. 다른 나라보다 특히 한국에 들어가면 이런저런 제약들이 많아요. 가와사키 프론탈레 소속팀 선수로 한국에 방문했을 때랑 대표팀 일원으로 한국 가는 거랑은 각오나 다짐 부분에서 다른 면이 있죠.
―정말 궁금했던 질문이에요. 솔직히 좀 ‘튀는’ 이미지잖아요. 그런 사람이 규율과 통제가 엄격한 북한대표팀에서 잘 적응하고 동화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어요.
▲일본의 교포 선수가 대표팀에서 지내는 건 그리 특이한 일이 아니에요. 과거에도 몇 명 그런 사례가 있었고요. 오히려 반대로 대표팀 선수들이 제 일본 생활에 대해 많이 흥미를 갖고 물어보고 그래요. 그런데 전 가장 힘들었던 게 우리말이었어요. 한국말, 조선말이 전혀 다르니까 잘 못 알아 듣겠더라고요. 아마 한국 사람이랑 조선 사람이랑 얘기해도 쉽게 이해 못하는 말이 있는 것처럼. 전 한국말도, 조선말도 다 완벽하지 않아서 처음엔 많이 헤맸었죠, 만약 (안)영학이 형이 선수들 말할 때마다 설명을 안해줬더라면 무조건 ‘네, 네’했을 거예요.
―이번에 한국에 왔을 때 경기 전 배탈과 설사, 구토 증세를 나타냈어요. 당시 호텔에서 먹은 음식 때문에 문제가 있었다는 북한대표팀 관계자의 항의도 있었고요. 숙소 음식에 무슨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한국과 경기하기 전인 3월 28일 평양에서 UAE팀과 월드컵예선전을 치렀잖아요. 당시 UAE 문지기가 경기에 져서 그런지 갑자기 저한테 침을 뱉는 거예요. 정말 너무 화가 났었어요. 심정 같아선 팍 때려주고 싶었지만 그랬다가 퇴장당할 것 같아서 주심을 찾아가 침을 보여주며 경고를 주라고 말했거든요. 그런데 그 심판은 자기가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에 파울을 줄 수 없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한국에 와서도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그랬던 게 음식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대표팀에선 경기 앞두고 날것을 먹지 말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경기 전에 호텔 뷔페에서 연어를 먹었어요. 그랬던 게 이전 잠을 못자서 컨디션이 안 좋았던 부분들과 합해져 배탈로 이어진 것 같고요. 대표팀 관계자들한테는 스트레스성 급성위염 같다고 말했는데 AFC 관계자, 우리 측, 한국축구협회 관계자들이 호텔 셰프를 불러다 놓고 ‘음식에 뭘 넣었느냐’며 엄한 말을 하는 거예요. 그분들이 억지로 뭘 넣을 일이 없잖아요. 한국축구협회에서도 절대 그럴 일이 없을 거구요. 그분들께 너무 미안했어요. 제가 몸이 아픈데도 더 미안했어요.
―이것도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예요. 지난 1일 월드컵예선전 때 정대세 선수의 헤딩골이 골이냐, 아니냐, 골라인을 넘어갔느냐, 안 넘어갔느냐 하는 문제로 오랫동안 논란이 됐어요.
▲솔직히 경기장에선 완전히 들어갔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걸 이운재 선수가 막더라고요. 그 당시 처음 들었던 생각은 ‘와, 이운재 대단하다. 역시 이운재 문지기는 다르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어웨이 경기 중 그런 상황이 연출되면 심판이 골이라고 선언하기가 어려워요. 특히 중요한 대표팀 경기에서는 더더욱 그렇죠. 나중에 비디오로 다시 봤거든요. 헤딩슛한 공이 골라인을 완전히 넘어간 건 맞아요. 하지만 제가 심판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노골이라고 선언했을 거예요. 경기 끝나고 전 이운재 선수한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어요. 그리고 박수도 쳐줬습니다. 잘 막았다고. 그건 진심에서 우러난 행동이었어요.
―지금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건데 한국 선수들 이름을 거의 다 외우고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어느 선수가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한국엔 너무 좋은 선수들이 많아요. 이번에 일본에서 뛰는 이근호 선수도 그렇고 FC서울의 기성용 선수도 특출나 보여요. 그 선수는 수준이 다른 것 같아요. 플레이 자체가 다른 선수랑 달라요. 그런 선수들이 많은 한국대표팀이 좋아 보일 때가 있어요. 그리고 이번에 상대해 보니까 작년보다 더 업그레이드가 된 것 같더라고요. 젊은 선수들이 많아져서인지 체력적으로 전혀 지친 기색이 안 보였어요. 주장이 박지성 선수라서 그런가요(웃음)?
―지금까지 많은 골을 넣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잊지 못할 골이 있다면?
▲지난해 2월 중국에서 열린 동아시아선수권대회 일본과의 첫 경기에서 제가 선제골을 넣었을 때입니다. 일본을 상대할 때는 한국과는 또 다르거든요. 그 경기는 제 축구인생을 걸고 뛰었습니다. 옛날부터 일본팀 시합을 보면서 선수들 이름을 외우고 제가 만약 그 팀을 상대한다면 어떻게 뛰어야 하는지도 상상해 보고 그랬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첫 골을 터트린 거라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기쁨이 있었어요. 그 경기는 일본 전역에 방송되고 있었고 우리 가족들, 재일교포들 모두가 보는 경기라 더 큰 의미가 있었죠. 어머니가 많이 우셨나 봐요. 제가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뛴 경기에서 일본을 상대로 골을 터트렸으니까. 저도 골 넣고 텀블링을 하면서도 닭살이 돋을 정도였습니다.
(당시 일본대표팀은 오카다 감독이 맡고 있었다. 그런데 오카다 감독과 정대세와는 사연이 있는 관계였다. 정대세가 가와사키 프론탈레로 입단하기 전 당시 요코하마 F 마리노스를 맡고 있던 오카다 감독 앞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오카다 감독은 정대세를 테스트한 후 ‘우리 팀에는 별로 효용 가치가 없는 선수’라며 입단을 거절했다고 한다. 그런 감독 앞에서 대표팀 선수로 골을 터트렸으니, 오카다 감독의 머릿속은 상당히 복잡했을지도 모른다. 정대세는 오카다 감독 한 명을 상대한 게 아니라 큰 의미는 두지 않았지만 자신을 거절한 팀이나 감독을 향해 복수했다는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라며 웃는다)
―형인 정이세 선수가 한국 내셔널리그 노원헴멜 축구단에서 골키퍼로 활약 중이에요. 그런데 처음엔 형이 한국에서 축구를 한다고 했을 때 가족들 중 가장 심하게 반대를 했다면서요?
▲그건 형이 한국에서 축구하는 걸 반대한 게 아니에요. 가족들 문제였죠. 형은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토목회사의 사장으로 일했거든요.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그 자리를 버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축구를 하겠다고 나선 거예요. 그것도 한국 K리그가 아닌 K3리그였어요. 가능성이란 것만 보고 가기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거죠. 형이 그 자리를 비울 경우 문제가 복잡해져요. 물론 지금은 모든 게 다 해결됐지만 당시만 해도 형의 선택을 이해 못했어요.
―일본에서 교포로 산다는 것, 특히 재일교포로 사는 게 간단치 않음을 느낄 때가 많죠?
▲옛날처럼 재일교포라고 해서 크게 차별을 받거나 그러진 않아요. 단지 축구에서만 봤을 때 똑같은 실력을 가진 일본 선수와 교포 선수가 있다면 일본 선수를 더 우선시 하는 게 이곳입니다. 그래서 일본 선수들과 똑같이 잘해선 할 수가 없어요. 그보다 월등히 잘해야 하죠. 연봉도 마찬가지예요. 조금씩은 다른 기준으로 책정받는다고 생각해요.
(정대세는 지난해 연말 J리그 어워즈 시상식에서 일본 선수와 동등한 대결을 펼치다 결국 일본 선수가 베스트일레븐에 뽑히는 걸 현장에서 직접 겪은 뒤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축구 시작하고 그때처럼 속상했던 적이 없었다고 말할 정도다. 참으로 오랜만에 일본 사회에서 차별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심경도 덧붙였다)
―속해 있는 나라가 많아요(웃음). 한국 일본 북한까지. 국적은 한국인데 북한 대표팀 선수로 뛰고 있는 부분도 아이러니하구요. 자신의 신분에 대해 솔직한 생각을 듣고 싶어요.
▲물론 제 국적은 한국이지만(한국에 국적포기 신청서를 냈지만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려됐다고 한다) 마음 속 고향은 조선이었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어렵고 복잡한 절차를 거쳐 조선 대표팀 유니폼을 입게 됐었죠. 한국은 아버님 고향이기도 하고, 또 제가 동경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곳이 아니죠. 일본은 제가 태어난 곳이고 자란 곳이고 또 지금 생활하는 곳이라 멀리할 수가 없어요. 이렇게 세 나라를 두루 걸치며 운동 생활하는 선수도 흔치 않을 거예요. 하지만 전 슬퍼하거나 힘들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정대세를 가리켜 ‘경계인’이라고 말하지만 그 경계인은 다리가 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정치가 못하는 걸 스포츠가 하는 겁니다.
정대세는 ‘조국이란 자기를 키워준 어머니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 어머니를 배신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밝혔다. 축구를 처음 시작할 때는 프로 들어가는 게 목표였는데 프로 입단 후에는 또 다른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면서 그 ‘산’들을 잘 타고 넘어가 유럽에 진출했으면 좋겠다는 최종 목표도 덧붙였다. 나이는 분명 스물다섯 살인데 인터뷰 속에 드러난 정대세는 진지하면서도 유머가 있었고 삶의 철학이나 깊이가 배어 있는 ‘결코’ 가볍지 않은 축구선수였다.
마지막으로 한국 기자들이 빠트리지 않고 던지는 질문 한 가지를 추가했다.
“K리그로 올 생각 없어요?” “AFC 경기차 전남과 포항을 갔었거든요. 전남엔 관중이 300~400명밖에 안 들어오더라고요. 재미없어요. 관중들이 많지 않으면. 그래도 ‘조건이 좋으면’이란 말은 남겨둬야겠죠? 하하”
일본 가와사키=이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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