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도 있소” 정동영 의원이 김원기 위원장을 찾아가 대표 도전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사진은 지난해 4월 민주당 대선후보경선에서 연설하는 정 의원. | ||
‘민주당 해체’와 ‘인적청산’ 구호를 앞세워 무혈 쿠데타로 한화갑 대표로 상징되는 ‘앙시앙 레짐’을 무력화시켜 제압한 신주류는 이제 정치개혁특위를 통해 당권장악을 위한 제2라운드에 돌입한 상태다.
정치개혁특위는 합법적인 당권쟁취를 위한 틀을 마련하기 위한 기구인 셈. 그러나 앙시앙 레짐 무력화에 한목소리를 냈던 친노 신주류는 당권장악을 위한 제2라운드에 돌입하자마자 시니어 그룹과 주니어 그룹간 보이지 않는 권력암투를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12월19일 대통령 선거일 이후 D+17일까지 진행된 민주당의 내전(內戰) 전모를 종합해본다.
■ 민주당 권력지형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동안 민주당은 크게 양대세력으로 권력지형이 재편됐다. 노무현 당선자를 중심으로 형성된 친노 신주류와 지난해 전당대회를 통해 형성된 비노 구주류로 구분할 수 있다. 이를 다시 세분해서 살펴보면 친노 신주류는 60대로 구성된 시니어 그룹과 40~50대의 주니어 그룹으로 구분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비노 구주류의 경우에도 한화갑 대표 등 당 지도부에 포진한 시니어 그룹과 이보다 낮은 연령대의 주니어 그룹으로 세분할 수 있다. 노무현 당선자를 중심으로 형성된 친노 신주류로는 정대철 선대위원장, 김원기 정치고문, 김상현 조순형 의원 등이 친노 시니어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 김원기 위원장 | ||
이에 반해 2002년 4월 전당대회를 통해 형성된 민주당 지도부는 ‘후보 단일화’ 과정을 거쳐오는 동안 자연스레 ‘비노’ 진영을 형성했다. 한화갑 대표, 정균환 총무, 박상천 한광옥 최고위원 등이 ‘비노 시니어’ 그룹을 형성하고 있고, 여기에 후보단일화를 명분으로 탈당했다 복당한 김영배 의원도 ‘비노 시니어’ 그룹에 포함된다.
‘비노 주니어’ 그룹에는 후보단일화를 명분으로 탈당했다 회군한 김명섭 유용태 최선영 이윤수 송석찬 유재규 송영진 김덕배 설송웅 박종우 장성원 의원 등을 포함, 동교동계 출신 김옥두 최재승 윤철상 이훈평 조재환 김방림 의원 등과, 동교동계와 가까운 범동교동계 출신 의원들이 속해 있다.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가운데 가장 많은 의원들이 포진해 있는 곳은 ‘비노 주니어’ 그룹이지만, 12월19일 대통령 선거 이후에는 ‘친노 주니어’ 그룹이 민주당 전면에 나서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친노 신주류’ 인사들이 ‘인적청산’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는 부류는 비노 시니어 그룹은 물론, 비노 주니어 그룹까지 아우르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 대선 이후 ‘내전’ 전개상황
2002년 12월20일. D+1일. 정대철 민주당 선대위원장은 ‘국민통합21과의 공조는 사실상 끝이 났다’며 ‘공조파기’를 선언했다. 12월19일. D데이 1시간30분을 남겨놓고 벌어졌던 ‘정몽준 몽니’에 대한 최후통첩이었던 셈이다. 정 위원장의 ‘공조파기’ 선언은 대통령 선거를 통해 쟁취한 권력을 ‘국민통합21’과 나누지 않겠다는 공개 선언의 의미를 띠고 있다.
12월21일. D+2일에는 김원기 고문이 나섰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탄생은 노무현 개인의 승리’라며 ‘민주당의 승리가 아니다’고 분명히 못박고 나선 것. 대통령 선거 승리에 따른 논공행상에 한화갑 대표 등 민주당 당직자들의 몫이 없음을 분명히 한 발언이었다.
12월22일. D+3일에는 23인 개혁파 의원들의 ‘민주당 해체’ ‘인적청산’ 요구가 이어졌다. 이날 기자회견은 대권 쟁취 이후 당권 쟁취에 나선 친노 신주류 그룹의 ‘앙시앙 레짐’에 대한 공개 선전포고였던 셈이다.
▲ 지난해 10월 국민참여운동본부 현판식에 함께 참석한 노무현 당선자(왼쪽)와 정동영 의원. | ||
결국 한화갑 대표는 ‘조기 전대 수용’과 ‘차기 전대 불출마’를 선언함으로써, 친노 신주류 인사들의 무혈 쿠데타의 ‘성공’을 추인했다. 친노 신주류의 무혈 쿠데타에 대한 추인은 청와대에서도 이어졌다.
청와대의 추인은 2003년 1월2일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간의 부부 만찬 직전에 나왔다. “동교동계의 역사적 소명은 끝이 났다”며 “더이상 ‘동교동계’라는 말이 민주당 내에서 언급되지 않도록 하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직접 언급을 통해서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한화갑 대표 등 구체제를 겨냥한 민주당내 친노 신주류의 ‘무혈 쿠데타’가 전개되는 동안 친노 신주류는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무혈 쿠데타’에 대한 한화갑 대표와 청와대의 추인이 나온 직후 친노 신주류 인사들 사이에 새로운 형태의 내부 권력갈등 양상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일단 정대철 선대위원장과 김원기 고문사이에 권력갈등 양상이 나타났다. 정치개혁특위 위원장 인선과정에서다. 대선 이후 한동안 대통령직인수위원장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합을 벌였던 두 사람은 결국 인수위원장이 임채정 의원으로 낙찰되자, 당권 경쟁으로 선회했다.
인수위원장 때와는 달리, 정치개혁특위 위원장은 서로 고사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새로운 지도부 구성을 위한 특위에서 ‘위원장’ 역임이 차기 전당대회에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결국 서로가 서로의 등을 떠미는 사이, 노무현 당선자가 중재자로 나섰고, 김원기 정치고문이 특위 위원장을 수락하는 선에서 매듭지어졌다.
이때부터 정대철 선대위원장은 차기 전당대회 준비에 본격 돌입했다. 김원기 고문이 특위 위원장을 맡음으로써 차기 전대 출마가 사실상 불투명해졌다는 논리였다. 즉, 차기 지도부 구성안을 마련할 특위 위원장이 당권에 도전할 경우, 중립성에 의심을 받는다는 논리였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대선기간 동안 ‘국민참여운동본부’를 이끌며 전국조직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정동영 본부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화갑 대표와 청와대가 친노 신주류의 ‘무혈 쿠데타’를 추인한 직후였다.
정 본부장은 김원기 특위 위원장을 찾아가 “(김원기 위원장이) 정대철 선대위원장에게 차기 당 대표 출마를 양보했다면, 자신이 차기 당 대표에 도전하겠다”며 협조를 요청한 것. 김원기 위원장은 정동영 본부장의 협조 요청에 “차기 당 대표 출마를 접은 것이 아니다”며 오히려 정동영 본부장에게 “노무현 당선자에게 잘 얘기해 장관을 할 수 있도록 주선하겠다”며 당 대표 출마를 만류했다는 후문이다.
대권 쟁취 이후 당권경쟁 제1라운드를 통해 비노 구주류를 제압한 친노 신주류 내부에서 시니어 그룹과 주니어 그룹간 본격적인 대결국면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일단 김원기-정동영 두 사람의 1차 협상은 결렬됐다.
정치개혁 특위가 구체적인 전대 시기와 방법, 그리고 대의원 구성 등에 대해 논의를 전개해 나가는 과정에 친노 신주류 내부에서는 시니어 그룹과 주니어 그룹간 더욱 치열한 당권 경쟁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친노 신주류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당 권력투쟁 제2라운드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