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 물고 때렸는데 김 빠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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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신수(오른쪽)가 지난 15일(한국시간) 탬파베이전 6회초 2사 2루에서 승부에 쐐기를 박는 2점 홈런을 터뜨린 뒤 팀 동료 빅터 마르티네즈와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홍순국 메이저리그 사진 전문 기자 | ||
지금 제가 있는 곳은 탬파베이의 한 호텔입니다. 오늘은 저녁 7시 38분에 경기가 시작돼 11시가 넘어서야 끝났어요. 그것도 역전패로. 이런 날은 정말 어깨도 처지고 몸만 더 피곤하고 괜히 짜증나고 말도 하기 싫고 밥도 별로 안 땡기는, 정말 기분 뭐 같은 날입니다.
어떻게 7 대 0으로 앞서다가 7 대 8이 될 수 있을까요? 하긴 얼마 전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었죠? SK가 9회까지 9 대 1로 리드를 하다가 LG가 9회에 8득점을 올리는 바람에 연장전을 치르다 자정을 넘겨서까지 경기가 진행됐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거든요.
사실 7 대 0 정도의 스코어가 벌어지면 선수들 입장에선 어쩔 수 없이 마음을 놓게 돼요. 그게 뒤집어지리라곤 쉽게 생각 못하는 거죠. 그런데 정말 뒤집어졌습니다. 이래서 야구는 모르는 것 같아요. 해도 해도 어렵기만 하고. 워낙 변수가 많아서 9회 경기 종료 직전까진 속단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하게 됩니다.
이런 경기에서 진 날은 라커룸 분위가 살벌해요. 누구 하나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이 없죠. 만약 제가 한국에서 이런 경험을 했다면 동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쓰린 속을 달랠 텐데 영어 표현이 100% 완벽하지 못하다보니 한국 말을 하듯이 영어로 감정 표현을 한다는 게 어렵기만 해요. 그래서 외로움도 더 진하게 느끼나봐요.
요즘 한국 팬들이 제가 터트리는 홈런포는 물론 저에 대해 많은 응원을 보내주시고 있습니다. 지면을 통해 감사하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팀의 중심타자로 활약하다보면 타점을 올려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돼요.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지게 되면 마치 저 때문에 진 것 같아 마음이 꽤 불편해지거든요. 그래서 홈런에 대해 욕심이 생겼어요. 작년에 투수 코치가 저한테 이렇게 물어보시더라고요.
‘너는 3할5푼에 홈런 5개를 치는 게 좋니, 아니면 2할8푼에 홈런 20개 치는 게 더 좋니’라고. 그 당시만 해도 전 타율을 제일 우선시했기 때문에 ‘3할5푼에 홈런 5개가 더 낫다’고 대답했어요. 그런데 메이저리그에선 타율도 중요하지만 홈런이 못지 않게 중요한 것 같아요. 여러 가지 면에서 주목을 받게 되고 팀의 타점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되니까요. 그래서 지금은 ‘2할8푼에 홈런 20개’로 목표를 수정했습니다. 따라서 3할대의 타율에 대해선 크게 욕심내지 않으려고요.
클리블랜드가 최하위를 달리고 있다 보니 이런저런 소문들이 많이 들리네요. 최근에는 에릭 웨지 감독의 교체설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나봐요. 바닥을 맴
도는 팀 성적으로 인해 구설수가 끊이질 않는 것 같은데 팀에 부상 선수들이 많아서 제대로 된 팀 배팅을 할 수 없는 상황도 이해해 주셨으면 해요. 개인적으로 전 웨지 감독과 계속 같이 가길 바라요. 부침도 많았지만 그래도 절 믿고 신뢰를 보내주셨고 올 시즌에는 계속 선발 라인업에 올려주시는가 하면 왼손 투수가 나와도 절 빼지 않으시거든요. 인간적으로도 배울 점이 많은 분이에요. 선수들이 잘해야죠 뭐. 오늘같이 김 빠진 경기를 해서도 안 되고.
가끔 기자들이 그런 걸 물어와요. 경기 감각이 좋을 때와 좋지 않을 때의 차이가 무엇이냐고요. 요즘처럼 방망이가 잘 맞을 때는 생각 자체가 없어요. 즉 타석에 들어서기 전에 투수가 무슨 공을 던질까? 변화구를 던졌으니까 직구로 승부하겠지? 등등의 생각을 하지 않고 오로지 들어오는 공을 보고 판단한다는 거죠. 공 안 맞을 때는 저도 모르게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 걸 발견하게 돼요.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게임이 안 풀릴 때는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더라고요.
오늘 제가 아무리 좋은 성적을 냈다고 해도 팀이 패배하면 그 성적 자체가 별로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속만 쓰리고 열만 받고. 그래도 내일 눈 뜨면 또 다른, 새로운 게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속 상한 건 여기서 끝마쳐야 할까 봐요. 오늘은 아들 무빈이보다 와이프 목소리가 너무 그립네요. 이상 기분 꿀꿀한 탬파베이에서의 넋두리였습니다.
탬파베이에서 추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