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기 올려놨더니 안팎에서 ‘찬물’
지난해 프로야구는 13년 만에 500만 관중을 돌파하며 ‘르네상스’라는 평가를 들었다. 전반적으로 관중수가 급상승했고, 프로야구가 한국 내 제1의 프로스포츠라는 공감대가 다시 한 번 형성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이 같은 상승곡선이 올 시즌에도 계속되리란 보장은 없다. 특히 최근에 야구장 안팎에서 야구 열기에 찬물을 끼얹을 만한 이슈들이 불거져 나오고 있어 우려섞인 눈길이 모아지고 있다.
5월 21일 현재 올시즌 프로야구 총관중은 175만 946명을 기록 중이다. 경기 평균 1만 1082명. 지난해 동일 경기수 시점에선 172만 5202명, 경기 평균 1만 919명이었다. 따라서 올해 관중은 지난해 대비 1% 증가 수준에 그치고 있다. 어쨌든 지난해보다 늘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올 시즌 개막 초반만 해도 프로야구는 여성 관중의 폭발적인 증가에 힘입어 지난해 대비 20%의 관증 증가를 보였다. 상당히 고무적인 현상이었다. 내심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올해 목표로 잡은 550만 관중 돌파도 무리 없을 것이라는 보랏빛 전망이 나왔다.
그런데 불과 한 달 만에 관중 증가세가 2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 6월 들어선 지난해 대비 관중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지난해 구름관중을 몰고 다녔던 롯데가 올시즌에는 5월 중순까지 좀처럼 성적이 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 한 요인이 될 것이다. KIA의 선전 덕분에 광주구장의 흥행력이 높아진 부분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3만 명 규모의 사직구장이 흥행 하락세를 보인다면 프로야구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런 판국에 최근에는 케이블 채널 Xports의 마해영 해설위원이 자서전을 통해 용병뿐만 아니라 한국 선수들도 공공연하게 스테로이드를 포함한 금지약물을 복용하는 사례가 있었다고 주장해 논란이 벌어졌다. 이뿐만 아니다. 학연, 지연으로 얽힌 선수들이 승부와 비교적 무관한 시점에선 서로 사인을 가르쳐주며 성적을 유지하는 ‘거래’가 횡행했다고 폭로했다.
야구계는 발칵 뒤집혔다. 대부분의 현장 관계자들은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 감독들은 “실제 약물 복용 선수가 있었다면 실명을 밝혀라. 그래야 모든 선수가 의심받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면서 마해영 위원에게 주문하기도 했다.
결국에는 마해영 해설위원이 “이렇게 파장이 커질 줄은 몰랐다. 약물 사례는 과거의 일이었고, 현재는 복용 선수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한발 물러섰다. 극히 일부지만 마해영 위원의 발언을 책 판매를 위한 ‘노이즈 마케팅’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같은 논란 자체가 팬들의 프로야구에 대한 불신을 키울 수밖에 없다. 여러 정황상 야구 관계자들은 이번 스테로이드 발언 파문이 너무도 안 좋은 시기에 터졌기에 후유증이 크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최근 KBO는 과거 사무총장을 역임했던 경력이 있는 이상국 씨를 신임 사무총장으로 내정했다. 그런데 이상국 내정자는 한때 정치인과 연루돼 비리 혐의로 구속까지 됐던 인물. 결국 무혐의 처리가 됐지만 프로야구 업무와는 무관한 일로 구치소를 드나들었던 경력 때문에 여전히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과거 재임 시절의 공과만 놓고 보면 최고의 실무형 사무총장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도 하다. 하지만 언제든 도덕성 시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당장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가 이상국 신임 사무총장에 대해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세우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신임 사무총장 인선에 앞서 선수협회가 노조로의 전환을 모색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던 것도 결국 이상국 내정자를 겨냥한 액션이었다는 시선이 있었다. 9년 전 선수협 탄압의 핵심인물이었던 이 내정자가 다시 KBO에 발을 담그는 걸 허용하지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선수협회가 KBO 신임 사무총장을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각종 쟁점사안이 발생했을 때 지루한 공방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창단한 히어로즈의 궁핍한 재정 상태가 여전히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구단 수뇌부에선 야심찬 계획을 발표하면서 금융 전문가를 신임 단장으로 영입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5월 중순까지 메인스폰서도 잡지 못한 상황이다.
시즌 초반 히어로즈가 좋은 성적을 거둘 때에도 대부분 야구인들은 “스폰서 문제가 빨리 해결돼 재정이 안정되지 못한다면 히어로즈는 결국엔 성적이 급락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프로스포츠는 분명 돈으로 움직인다. 언제 망할지 모르는 회사에 다니는 조직원들이 열성을 보이기 힘든 것처럼 히어로즈 역시 재정 문제가 조기에 해결되지 못하면서 선수들이 차츰 의욕을 잃게 될 것이라는 얘기였다. 히어로즈는 실제로 5월 들어 성적이 급추락했다.
프로야구는 8개 팀이 성적을 위해 서로 물어뜯으려 치열한 경쟁을 하는 곳이다. 한편으로는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를 이끌어간다는 자부심 속에 상호 협조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 한 팀이 지나치게 살림이 곤궁해져 자포자기의 심정이 된다면 나머지 팀들에게도 정서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팀이 시즌 중 해체되는 운명을 맞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당사자인 히어로즈뿐만이 아니라 다른 팀들에게도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런 문제 때문에 히어로즈가 재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모든 야구인들이 원하고 있다.
장진구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