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총장에 던진 견제구는 통했다
이 과정에서 선수협회 회장인 손민한의 행보가 많은 야구인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애초에 권시형 사무총장과 함께 노조 전환 방침을 발표할 때부터 “대체 왜 손민한이 앞장서서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을까”란 의문이 파다했다. 게다가 손민한은 어깨 부상 때문에 지난 3월의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단 한 게임도 등판하지 못했고, 시즌 개막 이후에도 줄곧 재활에만 매달려왔던 상태. 롯데 팬들은 “손민한, 선수협회 말고 팀부터 제발 좀 살려라”면서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왔다.
손민한은 지난 겨울 FA 자격을 얻은 뒤 롯데와 재계약했다. 다년계약 금지 조항 때문에 발표는 계약금 8억 원, 연봉 7억 원의 1년 계약인 것처럼 됐지만, 실은 이면으로 다년계약이 돼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일. 따라서 손민한은 어차피 다년계약을 한 상태이기 때문에 비교적 부담없이 선수협회 목소리를 내는 데 앞장설 수 있었을 것이란 얘기가 있다. 물론 손민한은 입을 꾹 다문 채 노조 설립 시도의 과정에 있었던 사연들을 함구하고 있다.
한편으론, 권시형 사무총장이 모든 일을 주도했고 손민한은 상황도 잘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회장이라는 이유 때문에 ‘얼굴마담’ 역할을 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롯데 쪽의 한 관계자는 “권시형 사무총장이 본인의 이해관계 때문에 노조 설립이란 표면적 이유를 대면서 손민한을 전면에 부각시킨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가 언급한 ‘이해관계’란 한국야구위원회(KBO)와 선수협회 간의 해묵은 갈등을 의미한다. 권시형 사무총장은 지난해 선수협회의 공식 직함을 달았지만 실은 10년 전 선수협회 탄생 때 이를 주도했던 주요 배후 인물이었다. 따라서 당시 선수협회 창립을 방해했던 KBO 측 고위 인사들과는 아무래도 감정이 좋지 않다. 게다가 그 당시 KBO 사무총장을 맡았던 이상국 씨가 최근 하일성 전 사무총장 후임으로 거론되자 권시형 사무총장을 비롯한 선수협회에선 강력하게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KBO 측에선 “애초부터 선수협회가 노조설립이란 카드를 꺼내든 건 순수한 의미라기보다는 KBO 신임 사무총장 내정자에 대한 반감이 작용했기 때문 아니겠는가”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결국 노조 설립 시도가 실패에 그치면서 선수협회가 다소 망신을 당했다고 봐야 한다. 선수들에게 설립 취지에 대한 충분한 정보 제공, 진의 전달이 안 된 것은 명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선수협회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선수협회가 이상국 신임 사무총장 내정자에 대한 과거 비리 혐의를 계속 노출시켜왔기 때문에, 결국 이 내정자는 감독청인 문화관광부의 승인을 받지 못했고 6월 5일 오전 자진 사퇴 형식을 빌어 물러나야 했다.
장진구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