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단 한번…날 띄울 ‘반쪽’ 잡아라
▲ (왼쪽부터)김근태, 천정배, 정동영, 고건 | ||
개혁파와 친노세력들은 “당원 개혁 주장을 해온 열린우리당의 기본 가치를 훼손한 것”이라며 김근태(GT) 의장 등 비대위 해체를 주장하는 등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일부 친노파는 수세에 몰린 GT와 정동영(DY) 전 의장이 의기투합해 당을 해산하고 통합신당을 창당하려는 흑심이 드러난 것이라며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
당내 제 계파들도 기초당원제가 향후 당의 진로문제 및 정계개편 방향 설정에 큰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하면서 이해득실에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정계개편 논의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차기 대권주자들은 기간당원제 폐지에 따른 손익계산을 면밀히 따지면서 후폭풍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분위기다.
그동안 논의돼 온 정계개편론이 총론 수준이었다면 기초당원제 도입을 둘러싼 제 계파들의 갈등 기류는 차기주자들의 대권 구상과 맞물려 각개 전투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형국이다. 새 국면으로 접어든 여당발 정계개편 정국에서 범여권 주자들이 구상하고 있는 최상의 정계개편 시나리오를 진단해 봤다.
현재 열린우리당 내부에서 논의되고 있는 정계개편 방향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제3지대에서 범 여권세력을 통합해야 한다는 ‘헤쳐모여식’ 통합신당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열린우리당 토양 위에서 범여권 세력을 흡수 통합해야 한다는 재창당론과 ‘노무현-DJ’ 회동 이후 일부 친노직계들이 주장하고 있는 영호남통합론이 그것이다. 여기에 범여권 주자로 분류되고 있는 고건 전 국무총리가 중도실용개혁 노선을 기치로 12월 께 독자신당을 창당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최근 “열린우리당이나, 열린우리당이 재창당한 정당의 국민경선에는 참여할 뜻이 없다”고 밝히며 양상은 더욱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지금까지 정계개편 논의 과정에서 드러난 차기주자들의 셈법도 복잡하기만 하다. 순간의 선택이 대망론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면서 치열한 물밑 기 싸움을 전개하고 있는 분위기다.
당내 지분을 양분하고 있는 GT와 DY는 통합신당론에 무게를 두고 있다. GT는 당초 당 의장 신분이라는 점을 의식해 재창당론에 무게를 뒀지만 계보 의원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통합신당쪽으로 입장을 선회하고 있다. 친노세력들의 거센 견제를 받고 있는 DY도 열린우리당 해산 후 제3지대에서 범여권 통합을 주도하는 방향으로 대권구상을 그리고 있는 분위기다.
‘친노세력의 견제’와 ‘지지율 답보’라는 외우내환에 시달리고 있는 두 사람이 동병상련의 입장에서는 한시적 연대를 모색하고 있을 것이란 관측도 꽤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실제로 일부 언론은 GT계 모임인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연)가 최근 △정계개편 이전 통합신당을 위한 GT·DY계의 선합의 추진 △친노세력의 전당대회 추진 명분 제거 △선도탈당그룹 견제 등을 골자로 구체적인 논의를 가졌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또 지난 6일에는 양 계파가 연대 모색 차원에서 모임을 추진했다가 언론에 노출되자 회동을 연기하기도 했다.
일부 친노세력들은 기초당원제 도입 배경에도 GT와 DY가 배후 조정역할을 했을 것이란 의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기초당원제가 도입될 경우 현재 10만여 명에 이르고 있는 당원조직 물갈이는 불가피하고 대의원과 중앙위원회 구성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면서 향후 당 의사결정구조는 큰 폭으로 바뀌게 된다. 또 과거 민주당 시절부터 당원활동을 해온 인사들이 공로당원 자격으로 대거 유입될 경우 정계개편과 관련한 당내 무게 중심이 통합신당론으로 쏠릴 가능성이 높다. 친노세력들이 비대위 해체 등을 주장하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대권가도에 적신호가 켜진 GT와 DY가 통합신당이라는 공통분모를 매개로 해법 찾기에 공동 대응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으나 두 사람이 구상하고 있는 대권 방정식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GT는 현직 당 의장 프리미엄을 최대한 활용해 기초당원제 도입을 계기로 세력을 확장한 후 통합신당 창당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다.
DY 역시 통합신당이라는 총론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GT와 입장을 달리하고 있다. 호남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는 DY 입장에서는 민주당과 고건 전 총리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와 관련 DY계의 한 의원은 “DY는 민주당과 고 전 총리를 포함한 제3지대 에서의 범여권 통합론을 기치로 호남과 중도개혁세력의 대표주자가 되겠다는 나름의 구상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대권가도에서 고 전 총리와 부딪힐 수밖에 없지만 공정한 경쟁을 통해 패한 쪽이 승복한다면 좋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당초 친노세력이 지지하는 잠룡으로 분류됐던 천정배 의원 역시 통합신당을 주장하며 노 대통령과 선 긋기를 시도하고 있다.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서는 참여정부의 실정을 강도높게 비난하는가 하면 대학 강연 등을 통해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실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반면 DJ에 대한 평가는 남다르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논란이 되고 있는 대북해법과 관련해 천 의원은 DJ의 햇볕정책을 적극 옹호하고 있고 지난달 28일 DJ의 목포 방문 때도 동행했다. DJ와 동향(전남 신안)인 천 의원 입장에서 DJ와 호남민심을 끌어안지 못하면 대권은 물건너 갈 수밖에 없다는 계산에 따른 전략으로 풀이된다. ‘포스트 DJ’로 자리매김하는 게 급선무고 이를 담보로 정계개편 및 대권정국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겠다는 천 의원의 구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또 천 의원이 주장하는 통합신당론에는 민주화 세력이 포함돼 있다. 천 의원은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통합신당 참여 세력으로 ‘민생화합개혁세력’이란 용어를 사용했다(70~71면 참조).
친노 주자들은 재창당론과 영호남통합론에 무게를 두고 있다. PK(부산 경남) 지역 친노세력 리더격으로 대권 예비주자로 분류되고 있는 김혁규 의원은 영호남 통합론을 기치로 내걸고 있다. “여당발 정계개편은 열린우리당 중심의 소규모 통합신당이 아니라 당을 완전히 해체하고 영호남 화합의 신당을 지향해야 한다”는 게 김 의원의 주장이다. 또 이러한 주장이 ‘노무현-DJ’ 회동 이후 제기됐다는 점에서 전·현직 대통령의 대권 복심과 맞물려 또다른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당내 개혁세력을 대표하고 있는 김두관 전 최고위원은 당 사수를 기조로 한 재창당론을 주창하고 있다. 특히 김 전 위원은 23일 기간당원제도 개정과 관련해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비대위의 당헌개정은 원천무효이며 불법이고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라고 사실상 GT가 중심이 된 비대위의 전면 퇴진을 강력히 주장했다.
김 전 위원을 비롯한 개혁파와 친노세력들은 비대위의 당헌개정에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어 기초당원제 도입이 여권 분열을 부추기는 또다른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친노세력을 대표하는 유력한 차기주자로 분류되고 있는 이해찬 전 총리와 유시민 복지부 장관은 정계개편과 관련해 아직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재창당론을 지지하고 있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이 두 사람은 여권이 끝내 분열될 경우 노 대통령과 정치적 운명을 함께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인사로 꼽히고 있다. 따라서 노 대통령이 ‘탈당 불가’와 ‘열린우리당 사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이 두 사람도 재창당론을 지지하면서 분당이 현실화 될 경우 친노세력을 대표하는 주자로 대권경쟁에 뛰어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범여권 주자로 분류되고 있는 고건 전 총리는 얼마전 ‘독자신당 창당’ 카드를 띄운 상태다. “국민대통합 신당 창당이 시대적 요청이고 중도실용개혁에 뜻을 같이하는 양심적 인사라면 정파와 지역을 넘어 누구와도 손을 잡겠다”는게 고 전 총리가 구상하고 있는 신당 밑그림이다. 여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통합신당론과 일정부문 맥을 같이하면서도 정파와 지역을 망라한 국민대통합형 신당이라는 점에서는 보다 포괄적이다.
고 전 총리는 그러나 열린우리당이나 열린우리당이 재창당한 정당의 오픈프라이머리(국민참여경선)에는 참여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자신을 중심으로 한 범여권 통합에는 동조하지만 여권이 주도하는 정계개편 소용돌이에는 휘말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따라서 고 전 총리 측은 민주당(호남)과 국민중심당(충청) 등 지역 군소정당을 선 통합한 후 여권내 정계개편 과정에서 이탈한 제 세력들을 끌어안아 국민대통합형 신당으로 승부수를 던진다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고건 캠프의 고위관계자는 22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국민대통합형 신당 창당과 관련해 민주당 및 국민중심당 핵심 관계자들과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며 “선 통합신당이 성공할 경우 그 파괴력은 상당할 것이고 여권은 물론 한나라당에서도 고 전 총리와 함께하겠다는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제3지대에서 국민대통합 신당이 출범하게 될 경우 신당이 정한 규칙과 방식에 따라 모든 대권주자들이 경선에 참여할 것이고 고 전 총리도 그중 한 후보 자격으로 당원과 국민의 결정에 따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직 정계개편의 모습이 뚜렷이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각 대권주자들의 계산법은 복잡하기만 하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