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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볼 만한 게임 이충희 감독은 고려대를 누구나 오고 싶어하는 단단한 팀으로 만들겠다며 각오가 대단하다. 임영무 기자namoo@ilyo.co.kr | ||
처음에 총장님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정중히 말씀드렸더니 준비고 뭐고 급하니까 당장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다음날 총장님을 찾아뵙는데 9월에 연세대와 정기전이 열리니까 그 전까진 팀을 재정비해야 한다며 거듭 부탁하시는 거예요. 2003년에 힘들게 물러났던 경험도 있고 해서 고민이 많았죠. 그래도 모교인데다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이라 계속 거절하기가 힘들었어요. 동기였던 임정명 감독이 불명예스럽게 물러난 건 안타깝지만 선수들도 그로 인해 상처를 많이 받았더라고요. 선수들 마음을 다독이고 농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팀 분위기를 만드는 게 급선무입니다.”
이충희 감독은 이상하게도 맡은 팀마다 성적 부진이나 프런트의 월권 행사 등으로 인해 중도 퇴진하거나 해임되는 등 아픔을 많이 겪었다. 송도고-고려대-현대전자 시절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로 ‘신사수’(하늘이 내린 슈터)란 별명까지 단 그였지만 지도자 생활은 악연을 되풀이했다.
“97년 LG세이커스 창단팀 감독으로 3년간 일하면서 나름 노력을 많이 했고 좋은 성적도 냈지만 프런트와 사이가 안 좋았어요. 공개하기 어려운 부분들로 인해 자주 부딪히면서 재계약 한다고 해놓고 안 한 거죠. 다른 팀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LG 측에서 재계약한다고 했기 때문에 움직이질 못했어요. 결국 팀을 나와야 했고 2003년에 고려대로 자릴 옮긴 겁니다. 그런데 학교는 학교대로 너무나 복잡한 문제들에 얽혀 있었어요. 겉으론 성적부진으로 8개월 만에 하차하는 것으로 비춰졌지만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황들로 인해 등 떠밀린 거였죠.”
2006년 동국대 감독으로 지도자로 복귀한 이 감독은 2007년 3년 계약을 맺고 대구 오리온스 감독으로 취임한다. 하지만 7년 만에 프로팀 사령탑에 오른 그는 7개월 만에 또 다시 성적부진으로 자진사퇴 형식의 해임을 당했다.
▲ 이 감독은 방송 촬영 도중 다쳐 깁스를 한 상태였다.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한때 농구인들 사이에선 이 감독의 대인관계에 대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데다 기자들과도 껄끄럽다는 얘기들이었다.
“솔직히 그때는 대외적으로 사람들 만나는 걸 소홀히 했어요. 기자들과도 식사하고 술 한잔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죠.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게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야인 생활을 하면서 많은 깨달음이 있었어요. 너무 오버해도 보기 싫지만 과하지 않은 선에서 적당히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다는 사실이었죠.”
이 감독은 한때 농구와의 인연을 완전히 끊으려 했다고 한다. 자신을 둘러싸고 쌓이는 오해들로 인해 적잖이 마음을 상했고 농구판을 떠나 자연인 이충희로 살고 싶었다고 밝힌다. 그러나 농구를 통해 이충희란 이름도 알려진 것이고 농구 때문에 존재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자, 농구를 떠나선 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선수시절부터 ‘건방지다’란 얘기를 수도 없이 듣고 살았어요. 흐트러짐 없이 살려고 했던 부분이 그런 오해를 산 것 같아요. 인간적으로나 지도자로서 존경받고 싶어요. 고려대 농구부가 이전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그리고 이충희 때문에 선수들이 고려대에 오고 싶어 할 정도로 단단한 팀을 만들 거예요.”
한 달 정도 개인훈련만 해온 선수들의 체력을 끌어올리는 게 시급하다고 말하는 이 감독은 9월 연세대와의 정기전을 성공적으로 이끈 뒤 지도자 이충희의 명성도 되찾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