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만을 위한 잔치는 굿바이!
뜻 깊은 행사였다. 얼마 전까지 경기도 부지사를 지냈고 현재는 도자진흥재단을 이끌고 있는 서효원 이사장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바둑이 스포츠로 가고 있는 요즘 장애인 바둑대회는 정말 의미가 있다. 모든 스포츠 가운데 정상인과 장애인이 똑같은 조건으로 함께 겨루고 즐길 수 있는 종목으로는 바둑이 유일한 것 아닌가.”
그런데 웬 국회의원이 50명씩이나? 그것도 반가운 일이다. 전·현직 국회의원 중에도 애기가는 많다. 역대 국회 최고수는 아마도 장재식 전 의원일 것이다. 프로에게 선으로 둔다는 실력이니까, 아마 7단급이다. 이인제 박종근 최병국 원유철 의원, 유인태 이호웅 전 의원 등도 손꼽히는 강자들. 이날 행사에서는 참가선수들과 국회의원들이 수담을 나누는 시간도 있었다. 국회에서는 내년에는 국회의장배 장애인 바둑대회, 나아가 한-중 장애인 바둑대회 같은 것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한 가지. 장애인 바둑대회에 50여 명이나 되는 국회의원이 동시에 출동한 것은 이날 행사에 이상득 의원이 관여했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꼬집는 소리도 있다. 하긴 바둑을 둘 줄 모르거나 평소 바둑에는 별 관심이 없던 의원들의 모습도 보였으니까, 꼬집는 소리가 다는 아닐지라도 절반은 사실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7월 5일에는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에서 ‘2009 Hi-Seoul 여성바둑 대축제’가 열렸다. 꿈나무부터 일반까지 600여 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루었다.
이름이 말해 주듯 서울시가 후원한 행사였다. 서울시의회에는 송주범 의원이 있다. 정두언 의원 보좌관, 서울시 부대변인을 거쳤다. 아마3~4단의 실력인데, 바둑사랑에서는 단연 넘버원이다. 바둑의 가치, 바둑을 통한 홍보효과 등에 확신을 갖고 있어 바둑 관련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바둑계로서는 고마운 사람.
오는 8월 9~13일에는 ‘웅진씽크빅 2009 강릉 세계청소년 바둑대축제’라는 조금 긴 이름의 바둑행사가 강원도 강릉 영동대학교 캠퍼스에서 열린다는 소식이다.
세계 44개국에서 8세부터 19세까지의 청소년 1200명이 참가할 예정. 바둑실력은 제한이 없다. 어린이-청소년, 젊은 층이 바둑을 잘 안 둔다, 그래서 우리 바둑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 그런 얘기가 자주 들리는 상황인데 이런 행사가 세계적으로 새롭게 젊은 층 바둑 붐 조성에 불을 당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주최 측의 의도도 그런 것이리라. 요즘은 우리와는 반대로, 유럽과 동남아에서는 오히려 조기 바둑교육에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고 하니, 적기다.
‘바둑대회’보다 ‘바둑축제’라는 명칭이 공감을 얻으며 자주 쓰이고 있다. 1등을 가리는 것이 아니고, 첫 판에 지면 집에 가야 하는 것이 아니고, 끝까지 함께 즐긴다는 개념이다. 바람직하다. 앞으로는 1등을 가리는 대회 한두 개를 빼고는 그런 대회도 있어야 하니까, 바둑대회가 대개 이런 방향으로 갈 것이다.
다만 축제의 경우에도 단발성 축제로만 계속된다면 그것도 조만간 식상해질 가능성이 있다. 주말 하루나 이틀 바둑 두다가 헤어지는 것, 그것도 없는 것보다야 백 번 나은 것이지만 축제가 축제다우려면 세계청소년 바둑축제처럼 일단 기간이 좀 길어야 한다.
일정의 여유가 있으면 진일보한 생산적 논의가 가능해진다. 특히 이번 장애인대회 같은 경우라면 여야 국회의원이 50명이나 모였으니, 예컨대 장애인 바둑교육이라든지 바둑을 통한 장애인 복지 향상이라든지 그런 게 거론될 수 있지 않았을까. 여성 바둑축제도 그렇다. 누구나 여성 바둑 보급은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지금은 여성이 가정의 주인인 시대. 좀 크게 말하면 가정 문화의 복원과 청소년 문제의 해결에 바둑이 실마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축제의 자리 같은 곳에서 그런 게 논의되고 그게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방법 등을 도출해 결정되어야 한다. 모두 바쁜 세상에 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머리를 맞댈 수 있는 기회가 그리 쉬운가. 청소년 축제도 마찬가지다.
대회 경비를 주최 측에서 전부 부담하는 것도 이제는 좀 지양할 때가 되었다. 기업에서 후원하는 것이야 말릴 수 없는 것이지만 정무나 공공기관의 돈으로 행사를 치르는 것은 좀 그렇다. 정부나 기관의 예산은 대회보다는 보다 폭넓고 지속적인 바둑 연구-보급 사업에 쓰여야 한다. 대회 경비는 참가자들도 일정 부분 부담하는 것이 좋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러 가는데 내 돈을 내야 관심과 열의도 높아지고 즐거움도 커진다. 그런 사람들이 진정한 팬이 되고 저변이 된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