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권 접수 시나리오’ 꼬인다 꼬여
유 의원은 무적자 신분을 벗어던지고 그의 말대로 ‘TK의 적자’이자, 차기 대선 주자 후보의 위상으로 귀환했다. 유 의원은 대권 의지를 스스로 내비친 적은 없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친박계로부터 맞으면 맞을수록 몸집이 커졌고 스스로도 성장했다. ‘복당될 수 있겠느냐’는 대선의 1차 관문이 예상 밖으로 일찍 열린 것이다.
당장 친박계가 그의 복당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김희옥 비상대책위원장까지 거취를 고민할 정도로 후폭풍이 거세다. 그러나 복당절차는 완료됐다. 그리고 당장 전당대회(8월 9일)부터 흔들리고 있다.
무소속이던 유승민 의원이 6월 16일 새누리당으로 복귀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지난 6월 10일 정책 워크숍에서 계파 해체 선언문까지 낭독했지만 유 의원 복당에 이렇게까지 거센 비토를 친박계가 내놓는 이유는 ‘당권 접수 시나리오’를 새로 써야 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대표 최고위원과 차점자 순으로 최고위원이 선출돼 최고위원회의를 구성했던 현행안을 뒤집고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분리 선출해 당 대표에게 권한을 크게 실어주는 방안을 비상대책위원회가 전격 결정할 때만 해도 친박계는 표정 관리에 여념 없었다.
친박계 당 대표와 친박계 최고위원들로 ‘친박 친정체제’를 구축, 친박계 대선 주자만 앞장세우면 정권재창출의 꿈을 꿀 수 있다는 계산이 현실화되어가고 있었다. 친박계 핵심 실세인 최경환 의원의 출마 여부가 관건이라고들 했지만 사실상 최 의원은 출마 쪽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는 전언이다. 그리고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힌 나머지 친박계가 모두 최고위원 쪽으로 유턴한다면 당권 접수는 가시권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최근 최 의원 행보를 잘 아는 한 의원은 이런 말을 들려줬다.
“당선자들과 오찬은 물론 만찬까지 광폭행보였다. 당권에 생각이 없다는 사람이 그렇게 열심히 스킨십을 할 필요가 뭐가 있겠나. 사실 정치인은 워딩(wording)보다는 액션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런데 최 의원은 한 사람이라도 필요하다면 시간을 내 만났다. 또 만나고 있다. 그리고 당 대표 출마는 최 의원 본인의 의지도 중요하겠지만 저쪽(BH)의 의중이 더 중요하다. 그 시그널이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니겠냐.”
실제 최근 최 의원을 만났다는 한 새누리당 의원은 “공천 과정이나 선거 과정에 있었던 자신의 행보에 대해 좀 반성하는 것 같았고, 그런 취지의 말도 하더라”면서 “그걸 나만 느낀게 아니었다”고 확인해줬다. 또 “자꾸 사람들 만나고 하면서 자신의 생각이나 그런 것들을 얘기할거라고도 했다”고 덧붙였다. 그래서인지 최 의원과 만난 의원들끼리는 다들 “전당대회 나올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유 의원이 돌아왔다. 지금까지의 당 대표 구도는 친박계 최경환(4선) 대 비박계 정병국(5선)의 양자대결이었다. 정 의원은 ‘남원정(남경필 원희룡 정병국)’이라는 쇄신 소장파의 원조격이지만 비박계 구심점으로 당 대표를 할 만한 상징성은 크지 않다는 게 우세한 견해다. 정 의원이 이길 수 있겠느냐는 얘기가 나오면 분위기가 회의적으로 변했던 이유다.
김재경 의원이나 나경원 의원 등은 얼마 전 원내대표 경선에서 패했기 때문에 의원들로부터 “원내대표도 떨어졌는데 당 대표나 최고위원에 곧바로 도전할 수 있겠느냐”는 말을 듣고 있다. 4선 이상 중진 중에는 친박에서 멀어진 원조친박 한선교 의원(4선) 정도가 당권 주자로 오르내린다.
하지만 유 의원이 지지하거나 지원하는 정병국 의원이라면 말이 달라진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해석이다. 정 의원이 가진 쇄신 이미지와 유 의원의 신보수 철학이 합쳐진다면 당의 재건에 대한 설득력이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친박계로선 여간 껄끄러운 배경이 아닐 수 없다.
유 의원 복당이 결정된 당일, 비박계 중진 A 의원이 최고위원 출마를 사실상 확정지으며 주위에 도움을 요청한 것도 이를 방증한다. A 의원은 “우리(비박)도 친박처럼 교통정리를 해서 당 대표든 최고위원이든 출마해 붙어야 한다. 그럴 힘이 생긴 것 아니냐”면서 “어떤 의원들이 전대 출마를 생각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본격적으로 준비하겠다”고 했다.
최 의원을 비롯해 원유철 이주영 정우택 홍문종 이정현 등 친박계 중심이었던 당권 후보군 속에 비박계가 도전장을 내민 셈이다. A 의원은 “친박계 주자군이 많으니 그 수만큼 우리 비박계도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지역별로 한번 찾아보고 이야기해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게다가 친박계가 유 의원을 비롯한 4명의 복당이 전격적으로 결정된 것에 반기를 든 데에는 비박계의 세가 늘어날수록 전대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란 이유도 있다. 새누리당을 탈당해 당선된 7명 의원 중 윤상현 의원을 빼면 모두 비박계다. 이에 대해 여권 한 관계자는 “전대는 당내 경선과는 다르다. 비박계 의원 1명이 평균 30~40명의 대의원·당원을 추천해 전대를 치르는데 그만큼 친박계로선 불리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따져보면 이렇다. 새누리당 전대는 일반·책임당원과 대의원 투표 70%와 국민여론조사 30%를 합해 치러진다. 126명이 된 새누리당에서 친박계 숫자는 70명 안팎, 비박계는 50명 안팎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장 경선에서 친박계가 결집해 조경태 의원에게 70표를 몰아준 것을 두고 당장 “새누리당에 친박계는 70명”이라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이 중 비례대표 17명이 모두 친박계로 볼 수 있지만 이들에겐 당원도 대의원도 없기 때문에 사실상 전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친박과 비박의 수는 50명 안팎으로 같아진다. 앞서의 관계자는 “나머지 3명이 복당하면 진짜 양대 계파의 수가 같아진다”며 “친박계는 초선이 많고, 비박계는 재선 이상 다선이 많은 것도 친박계로선 쉬운 싸움이 아니다”라고 했다.
당원협의회(옛 지구당)를 장악하고 사실상 조직을 완비한 비박계 의원들은 말 잘 듣는 당원과 대의원을 추천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막 조직을 꾸린 초선 친박은 그렇지 못하다. 공천과 총선 과정에서 적이 된 전직 의원들이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 의원 복귀는 친박계로선 ‘잘못된 공천’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뽑힐 사람을 공천하지 않고 정치적 이해에 따라 추천한 것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과 같은 것이다.
어찌됐든 새누리당의 ‘뜨거운 감자’였던 탈당파 당선자들의 복당이 전격적으로 결정됐다. 당 조직국은 비상대책위원회의 복당 결정이 내려진 직후 해당 시·도당에 복당 결정을 담은 공문을 보냈다. 시·도당은 즉각 당원 명부에 해당 의원들의 이름을 기재했다. 그리고 해당 의원들의 지역구 사무실에 ‘당적 확인서’를 보냈다. 사실상의 당원증을 접수하면서 복당절차가 완료돼 버린 것이다. 이제 복당 문제를 되돌리려면 그들을 다시 출당시키는 수밖에 없다. 머리를 싸매고 있는 친박계가 과연 그런 촌극을 연출할지 정치권이 주목하고 있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