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감독 “발표할 거면 빨리 해”
우선 야구인들이 가장 궁금하게 여긴 건 감독 교체 발표 시점이다. 하루 전날인 9월 23일 삼성이 SK에게 패하면서 포스트시즌 실패가 확정됐다. 한화 입장에선 다른 팀 수석코치를 신임 감독으로 빼오는 상황이니 만큼 타이밍이 중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삼성의 포스트시즌 진출이 물거품이 된 다음날 곧바로 감독 교체를 발표한 건 십분 이해되는 일이다. 그러나 한화는 이튿날인 9월 25일 시즌 마지막 경기를 남겨두고 있었다. 기존 김인식 감독의 입장을 생각해준다면 이틀쯤 후에 발표하는 게 정석처럼 보인다.
알고 보니 김인식 감독이 원했던 일이다. 윤종화 한화 단장에 따르면, 김인식 감독이 “내 거취를 묻는 전화가 너무 많이 걸려온다. 이왕 발표할 거면 빨리 하자”는 의견을 밝혔다고 한다. 그래서 곧바로 보도자료 릴리스를 하게 됐다. 김인식 감독은 이미 한 달 전부터 본인이 사령탑에서 물러나게 될 것을 짐작했다고 한다. 발표 일주일 전에는 한대화 코치가 차기 감독으로 내정됐다는 사실까지 알게 됐다. “계속 한화 감독을 맡게 되는 것인가, 아닌가”를 묻는 지인들이 너무 많아지자 견디다 못한 김인식 감독이 구단에 조기 발표를 건의한 셈이다.
실은 한화 감독 자리를 원하는 재야 인사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이순철 전 LG 감독, 김성한 전 KIA 감독, 이정훈 천안북일고 감독 등이 하마평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결국 한대화 감독이 낙점을 받은 배경에는 한화그룹 내 대전고 인맥이 움직였다는 소문도 있다. 이상국 KBO 총재 특보가 해태 단장 시절부터 인연이 깊은 한대화 내정자를 적극 지지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결과적으로 한화의 선택은 적절했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처음으로 감독을 맡게 되는 참신함과 현역 수석코치 중에선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라는 점, 두루두루 원만한 대인관계 등이 한대화 내정자의 강점이라 할 수 있다.
삼성 구단은 침착하게 바라보면서도 약간은 당황스러워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미 2002년 가을에 당시 조범현 배터리코치를 SK 감독으로 떠나보낸 기억이 있다. 이번엔 한대화 내정자가 다른 팀 감독으로 영전하게 됐으니, 삼성 구단 일부에선 “우리가 감독 사관학교인가”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한 달쯤 전에는 또 다른 두가지 소문이 돌았다. 박종훈 두산 2군 감독이 한화를 맡게 될 것이며 김인식 감독이 지휘봉을 놓고 부사장 자리에 앉는다는 루머였다. 결과적으론 이뤄지지 않았지만, 한화가 박종훈 감독에게도 눈독을 들였다는 건 사실임이 밝혀졌다. 다만 LG가 박종훈 감독을 차기 사령탑으로 점찍어뒀기 때문에 두 구단이 서로 만나 조율을 했다는 얘기도 그래서 나온 것이다. 어쨌거나 돌고 돌아 고향으로 돌아온 한대화 내정자에겐 이번 가을이 인생 최고의 순간이 됐다.
김형기 야구전문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