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전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고 착착’ 신&정 ‘술로는 우릴 못당할걸’
우리은행의 위성우 감독(왼쪽)과 전주원 코치는 팀을 4년 연속 통합챔피언으로 이끌었다. 지난해 2월 23일 정규리그 우승 확정 모습. 연합뉴스
위성우 감독은 프로에서 일곱 시즌을 뛰었지만 존재감이 미미했던 선수 생활을 접고 2005년 이영주 전 신한은행 감독 밑에서 코치 위성우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은퇴하자마자 생소한 여자 농구에 발을 내딛은 그는 한동안 ‘여농’에 적응하느라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이후 임달식 감독이 신한은행 사령탑에 오르면서 위 감독은 신한은행에서 코치로만 7번 우승(6회 통합우승)의 감격을 맛보게 된다.
2011-12 시즌 후 신한은행에서 나와 춘천 우리은행 한새 감독으로 데뷔했던 위 감독. 전주원, 박성배 코치의 도움 아래 위 감독은 네 시즌 연속 꼴찌를 차지했던, 우리은행을 단숨에 정상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4년 연속 통합 챔피언에 오른다. 그는 처음에 우리은행을 맡았을 때만 해도 지금과 같은 성적은 꿈도 꾸지 못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패배 의식에 젖어있는 선수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게 가장 어려웠다. 인식의 변화를 이루기 위해선 훈련량도 많고, 그 과정이 혹독할 수밖에 없었다. 훈련이 기반이 되지 않고선 선수들이 코트에서 자신감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위 감독의 혹독한 훈련으로 선수들 몇몇은 자발적으로 팀을 떠나기도 했다. 이때가 위 감독한테는 가장 힘든 시기였다.
“서로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었다. 그 문제를 해결해나가면서 선수들도, 나도 조금씩 성장했다. 양보를 배웠고, 이해라는 단어도 꺼내 쓸 줄 알았다. 이때 가장 큰 도움을 준 이가 전주원 코치였다. 전 코치야말로 선수들의 심리 상태를 가장 잘 이해하는 선배이자 선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 코치가 따뜻한 어머니 역할만 담당하진 않는다. 때론 위 감독보다 더 혹독하게 선수들을 몰아갈 때가 있다. 남자는 잘 모르는 여자의 한계를 전 코치가 잘 파악하고 있는 탓이다.
위 감독은 신한은행을 나오면서 처음에는 전 코치를 데려오는 게 미안했지만 전 코치 없이는 팀을 꾸려가기 힘들다는 판단에 비난을 무릅쓰고 욕심을 낼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여자팀에는 두 코치 중 한 명 정도는 여자 코치가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선수들과 소통하는 부분이 훨씬 매끄러워진다. 가끔은 선수들 눈높이 맞춰주는 게 어려울 때가 있는데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전 코치가 적정한 수준을 찾아주기 때문이다.”
전주원 코치는 커피, 청량음료, 술을 입에 대지 않고 버티면서 마흔 살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갔던 끈기와 오기를 코치 생활에도 이어가고 있다. 위 감독이 앞에서 끌고 전 코치가 뒤에서 밀어주는 그림은 우리은행의 전력을 더욱 안정감 있게 유지시키는 힘이다.
신한은행 정선민 코치(왼쪽)과 신기성 감독. 선수 시절 엄청난 기록을 세웠던 두 사람은 신한은행에서 여자농구 명가 재건이라는 중책을 맡게 됐다.
신한은행 신기성 감독과 정선민 코치는 선수 시절 엄청난 기록의 소유자들이다. 신기성 감독은 선수 시절 1999년 신인왕, 2005년 정규리그 MVP, 우승 등을 모두 이룬 한국 농구의 대표적인 정통 포인트가드 출신으로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남자농구대표팀 금메달의 주역이었다. 정선민 코치는 정규리그 MVP 7회, 소속팀 우승 9회,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우승, 2000년 시드니 올림픽 4강, 2002년 세계선수권 4강 등 대표팀에서도 맹활약을 펼쳤다.
신 감독과 정 코치는 신한은행 이전에 KEB하나은행에서 먼저 호흡을 맞췄다. 신 감독이 박종천 감독 밑에서 수석 코치로 있을 당시, 정 코치가 시즌 중 막내 코치로 합류하면서 선수가 아닌 지도자로 첫 만남을 가졌다.
2007년부터 여자프로농구 6년 연속 통합우승을 일궈냈던 신한은행은 2015~2016 시즌 5위로 추락하며 포스트시즌에 나가지 못했다. ‘농구 명가’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리빌딩 작업에 들어간 구단은 신기성 감독과 정선민 코치를 영입하면서 명가 재건의 발판을 만들었다.
신 감독은 은퇴 후 여자팀에서 코치직 제의가 왔을 때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 놓는다.
“대부분은 여자팀을 지도하는데 대해 부담을 느낀다. 남자들과 생활하는데 익숙한 상황에서 여자를, 그것도 선수들을 지도한다는 건 굉장히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이 세계로 들어와보니 나름 재미있는 면이 많다. 하나은행 있을 당시 선수들이 나와 면담만 하면 울고 나갔다. 내가 화를 내거나 다그치지 않았는데도 눈물을 뚝뚝 흘렸다. 선수들은 자신의 얘기를 들어줄 수 있는 상대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경험이 여자 선수들 지도하는데 좋은 영향을 미친다.”
신 감독과 정 코치는 선수시절부터 개인적인 인연이 없었다. 나이는 정 코치가 한 살 위다. 하나은행에서 수석과 막내 코치로 시작된 인연이 신한은행의 감독과 수석 코치로 발전된 것이다.
“정 코치야말로 신한은행에서 화려한 선수 생활을 했던 주인공 아닌가. 그런 경험이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것으로 본다. 주위에선 정 코치의 이미지가 강하다고 말하는데 그건 정 코치를 직접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 얘기다. 성격 털털하고, 카리스마 있고,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려는 모습은 기대 이상이다. 내가 좋은 파트너를 만났다고 생각한다.”
신기성-정선민이 위성우-전주원과의 차이점이라면 주량이다. 앞의 두 사람은 주당들인 반면 뒤의 두 사람은 술을 한 잔도 못 마시는 스타일이다. 정선민 코치는 이전 대표팀에서 감독과 코치로 만났던 위 감독을 떠올리며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난 성격이 좀 직설적인 편이다. 속으로 쌓아두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그런 점에서 훈련 마치고 술을 한두 잔 기울이며 속 얘기를 꺼낼 수 있는 신 감독님 스타일이 편하다. 위 감독님은 주원 언니가 제격이다. 두 사람 모두 비슷한 성향인데다 농구에서 추구하는 방향도 같다. 두 지도자들은 우리은행에서 최고의 성적을 낸 분들이고 신 감독님과 난 그 뒤를 따라가는 형편이지만 전혀 기죽거나 위축되진 않는다. 우리도, 우리 팀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여자농구에서 여자 코치는 코치의 역할보다는 매니저나 주무가 할 일을 대신하는 정도였다. 선수들에게 코치보다는 사감 선생으로 비춰질 만큼 코트가 아닌 코트 밖 사생활에 여 코치의 역할을 부여했다. 정 코치는 위성우 감독, 전주원 코치가 처음으로 그 틀을 허물었다고 말한다.
“여자 코치가 선수의 머리 스타일이나 이성문제에 대해 간섭하는 사람이 아닌 감독을 도와 팀 전술과 전력향상에 도움이 되는 역할이란 인식의 전환이 필요했다. 지금 주원 언니나 내가 그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코치는 감독을 잘 만나야 하고, 감독도 코치를 잘 만나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나와 신 감독님, 그리고 위 감독님과 주원 언니는 서로 경쟁하고 도와가면서 여자농구의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양 팀 대결도 재미있겠지만 두 감독과 코치가 어떤 작품을 만들어가는지도 올 시즌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