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전 우정의 결실
▲ 이만섭 전 국회부의장(왼쪽)이 김운용 전 IOC 수석부위원장(가운데)과 박준환 미국 사우스베일로대학 이사장의 만남을 중재했다. | ||
두 사람은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동문이다. 김 전 부위원장이 49학번, 박준환 이사장이 50학번이다. 여기에 대구 출신으로 고향도 같다. 심지어 한국전쟁 때 통역장교로 입대해 전선을 누빈 것까지 공통점이다. 김 전 부위원장은 설명이 필요 없는 유명인사지만 박준환 이사장은 재미교포인 까닭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LA에 한국교민이 150명에 불과했던 1956년 도미, 35년간 대학교수를 지냈고 지난 1977년 사우스베일로대학을 설립, 현재 미국 최대 규모의 한의과대학을 키워냈다.
워낙에 공통점이 많지만 신기할 정도로 둘은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개인적인 우정을 쌓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50학번인 이만섭 전 국회부의장이 둘을 중재했다. 이만섭-박준환은 동기동창인 까닭에 친분이 두터웠고, 또 김운용 전 부위원장이 스포츠와 정치 영역을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동한 까닭에 1년 후배 이만섭 전 부의장과는 60년째 지인이다.
미국에서 교육자로 크게 성공한 박 이사장이 최근 자신이 세운 또 다른 대학인 CalUMS(캘리포니아 경영대학)를 스포츠매니지먼트 전문 경영대학으로 육성하기 시작하면서 김운용 전 부위원장을 만나고 싶다는 뜻을 피력했고, 이에 지난 8월 26일 김운용 전 부위원장이 서울 힐튼호텔에서 연 자신의 출판기념회에 초청장을 보냈다. 초청장을 받은 박 이사장은 단숨에 한국행 비행기표를 예약했고, 반세기를 넘은 뜻 깊은 만남이 성사된 것이다.
지나간 50년여의 퍼즐을 맞춰보니 공통분모가 참 많았다. 박정희 대통령,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 김우식 연세대 전 총장 등 서로 겹치는 지인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특히 김운용 전 부위원장이 2001년 IOC 위원장 선거에 도전할 때 박 이사장이 연세대 동문 자격으로 후원금을 내놓은 것도 확인됐다.
두 사람은 한국에서 세 차례 연속으로 회동했고, 박준환 이사장은 태권도를 올림픽종목으로 만든 김운용 전 부위원장에게 감명받아 CalUMS에 태권도학과를 설치하기로 결심했다. 경제학자 출신이지만 한의학 등 한국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가장 한국적인 태권도라는 스포츠를 자신의 대학에서 크게 육성하고 싶었는데, 그 태권도를 현대화한 ‘살아있는 전설’과 친구 사이가 되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나이는 내가 한 살 많지만, 김운용 총재가 학번이 한 해 빨라 선배다. 미국에서 태권도학과를 제대로 만들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고, 고무적인 답변을 들었다. 연세대 시절 이후 반세기만의 만남이었지만 아주 편안하고 즐거웠다. 그동안 많이 못 만났으니 앞으로는 가능한 자주 만나 팔십 우정과 함께 태권도 등 좋은 일을 함께 하고 싶다.” 박준환 이사장의 말이다.
김운용 전 부위원장도 “나도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박준환 이사장은 더하다. 마치 60대 같다. 홀로 차를 몰고 장거리 여행을 다닐 정도로 그 열정이 정말 대단하다. 미국사회에서 알아주는 성공한 교육자가 동문이고, 또 태권도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하니 더없이 기쁘다. 말할 필요도 없이 최선을 다해 돕겠다”라고 말했다.
먼저 태평양을 건너온 박준환 이사장의 성의에 고마움을 느낀 김운용 전 부위원장은 바로 답례에 나섰다. 오는 11월 초 미국의 유명한 무술매거진으로부터 ‘살아있는 전설상’을 받기 위해 라스베이거스를 방문하는데, 일정을 조금 늘려 LA에 위치한 박준환 이사장의 대학을 방문해 특별강연회를 열기로 한 것이다. 또 박 이사장은 2009년 신종플루로 인해 ‘제1회 김운용컵 태권도대회’가 연기됐다는 얘기를 듣고, 내년 5월 사우스베일로대학 및 CalUMS가 이 대회를 개최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이처럼 좀처럼 보기 드문 ‘반세기를 건너 뛴 팔순 우정’에 태권도인들은 “두 원로가 건강하게 자리를 지키는 것을 지켜만 봐도 기분이 좋은데, 두 노익장이 태권도 발전을 논의하고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으니 더욱 기분이 좋다”며 반기고 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