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예쁜 타격 그는 ‘꽃’이 되었다
▲ 일본프로야구 소프트뱅크에 둥지를 튼 이범호가 20일 미야자키에서 열린 입단식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오른쪽은 아키야마 고지 소프트뱅크 감독. 연합뉴스 | ||
이범호의 일본 진출과 WBC는 결코 따로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WBC를 통해 이범호는 한 단계씩 자신의 입지를 키워왔기 때문이다. 그는 2006년 1회 대회 때 당대 최고 3루수 김동주의 백업 멤버로 낙점을 받았다. 매 경기가 결승전이나 다름없는 상황. 보통의 경우라면 이범호가 기회를 얻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운명의 신은 이범호에게 이때부터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내왔다. 한국 대표팀 부동의 3루수였던 김동주는 아시아 라운드 대만과의 경기서 1루에 슬라이딩을 하다 어깨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그걸로 김동주의 1년도 끝이 났다. 김동주의 부상은 이범호에게는 기회가 됐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을 상대해 볼 천금같은 찬스였다.
이범호는 3년 후 2회 대회를 통해 달라진 자신의 기량을 맘껏 뽐냈다. 이번엔 수비뿐 아니라 타격에서도 매서움을 보여줬다. 4할의 타율과 3개의 홈런포로 7타점을 이끌어내며 한국 대표팀이 결승까지 진출하는 데 큰 힘을 보탰다. 특히 일본과의 경기서 강점을 보였다. 일본이 자랑하는 차세대 에이스 다나카(라쿠텐 골든이글스)를 상대로 홈런을 때려냈고 최강의 에이스 다르빗슈(니혼햄)에게는 결승전 9회말, 경기를 연장으로 이끄는 동점타를 뽑아냈다.
일본 언론들은 이범호의 계약이 확정된 뒤 “소프트뱅크가 자신의 팀에게 천적이었던 다나카와 다르빗슈의 천적을 영입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만큼 이범호가 WBC서 남긴 임팩트가 강렬했으며, 이때 안겨준 매서움이 대박 계약으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범호는 고교시절(대구고) 주목받던 선수는 아니었다. 이범호가 3학년 때 대구고의 전국대회 성적은 3전 전패. 그러나 1999년 당시 한화 스카우트였던 정영기 스카우트(현 한화 2군 감독)는 이범호를 2차 1순위로 지명했다. 정영기 스카우트의 안목이 높게 평가되어야 할 부분이다. 또 유독 그가 보러간 대구고 경기에서만은 이범호가 연신 홈런포를 날린 것도 힘이 됐다. 이범호는 입단 이후 3년간 고작 15개의 홈런을 때려내는 데 그쳤다. 수비 실력도 수준 이하였다. 2차 1순위 지명선수라는 훈장은 오히려 짐이 됐다. 정영기 스카우트의 안목이 아니었다면 이범호는 지금과 다른 선수로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김인식 현 한화 고문은 이범호가 마음껏 날아오를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준 감독이다. 이범호는 김 고문이 한화 감독을 맡은 시절(2005년~2009년) 두 차례의 큰 슬럼프를 겪었다.
2006시즌과 2007시즌 그의 타율은 각각 2할5푼7리와 2할4푼6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범호는 이 기간 중에도 모든 경기에 출장했다. 그의 재능과 독기라면 이겨낼 수 있을거란 김 감독의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간혹 “지금처럼 치면 타순이 내려가고, 타순이 내려가다 보면 결국 트레이드가 된다”며 엄포를 놓기도 했지만 이범호의 이름은 늘 스타팅 라인업에 들어 있었다.
이범호와 김태균은 지난 9년간 한화를 이끈 두 기둥이었다. 그리고 둘은 동시에 FA 자격을 취득했다. 둘과의 협상에 나서기 전 한화의 가장 큰 고민은 김태균이 아니라 이범호였다. 두 선수 모두 잡는다는 방침을 세워두었고 그런 다짐에 걸맞은 실탄도 준비했다.
그러나 이범호와는 합의를 장담하지 못했다. 그동안 연봉 계약 테이블에서 이범호를 상대해 본 경험에서 나온 두려움이었다. 한화의 한 관계자는 협상에 나서기 전 “(이)범호는 늘 태균이의 연봉을 자신의 연봉과 비교했다. 가장 힘든 문제였다. 누가 더 낫다고 말하긴 어렵다. 범호의 생각에도 일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어찌됐건 범호가 태균이급 몸값을 요구하는 건 아닐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범호는 김태균이라는 큰 산을 적지 않게 의식했다. 그들은 함께 팀을 이끄는 동료이자 서로를 자극하는 라이벌이었다. 공교롭게도 둘은 나란히 일본 진출에 성공했다. 이제는 팀이 나뉘어 동료보다는 라이벌로서 본격적인 대결 구도를 갖게 됐다.
2009시즌 내내 야구계엔 이런 루머가 떠돌았다. “FA가 되는 김태균과 이범호는 무조건 한화를 떠날 것이다. 그동안 구단에 서운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괜한 소리는 아니었다. 둘 모두 속내를 다 말하지는 않았지만 한화에 큰 미련을 두지는 않는 듯 보인 것이 사실이다. 지난 2008년 연봉 협상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김태균은 타율 2할9푼 21홈런 85타점을 기록했지만 연봉은 2000만 원이 삭감됐다. 21홈런으로 4년 연속 20홈런을 넘어선 이범호도 같은 금액이 깎였다.
그러나 누적된 한이 이번 FA 계약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은 다소 지나친 측면이 있다. 김태균과 이범호가 모두 서운함을 가졌던 건 사실이지만 FA 협상 테이블에 앉은 뒤엔 생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한화는 김태균에게 4년 80억 원, 이범호에겐 50억 원(둘 모두 옵션 포함)을 제시했다.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대형 제안이었다. 간절하게 두 선수 모두를 원한다는 마음도 함께 전했다.
김태균과 이범호도 마음이 크게 흔들렸던 것으로 보인다. 둘 모두 “일본 구단과 계약할 때 마음이 흔들렸다”고 고백한 바 있다. 특히 김태균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한화가 예상 밖의 큰돈을 제시해서라기보다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김태균과 이범호의 계약 실패는 원칙에 충실했던 한화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그들의 꿈이 좀 더 컸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정철우 이데일리 야구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