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미운 오리’로… “나 좀 믿어주세요”
이천수의 측근 중 한 명은 최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국내 언론이 이천수에 대해 사실 확인도 안 하고 외국 사이트의 기사만을 인용해서 방출설을 흘렸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축구전문 인터넷 사이트인 골닷컴은 지난 12월 30일(한국시간)자 기사에서 ‘알 나스르 구단이 최근 부진한 이천수를 이적 또는 임대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며 처음으로 이천수의 방출설을 흘렸다. 이에 국내 언론들이 이천수의 방출설을 기사화했고, 졸지에 이천수는 알 나스르의 경기에도 출전 못하고 갈 데 없는 고아 신세가 된 것처럼 희화화됐다.
“12월 중순에 경기 중 상대 선수로부터 팔꿈치 가격을 받아서 옆구리 부상을 당했다. 숨을 못 쉴 정도의 고통이 있었고 순간 앞으로 고꾸라지는 등 최악의 컨디션이었다고 하더라. 그래서 이영표와 맞붙는 알 힐랄전에 결장하게 된 것이다. X-레이 촬영 결과 갈비뼈에 실금이 가, 가급적이면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통보받았는데, 한국의 방출설 보도에 크게 상심한 나머지 그 다음 경기에 악으로, 깡으로 뛰었다고 했다. 지금도 몸 상태가 온전치 않은데 그런 가운데 시즌 3호골을 터트렸고, 4경기 연속 교체 출전하는 등 점차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이천수의 측근은 사우디아라비아 진출 후 이천수가 한국 언론에 노출되기 보다는 조용히 축구에만 전념하길 원했고, 기자들의 전화 인터뷰 요청도 정중히 거절한 채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고 설명한다.
“한국을 떠나면서, 정말 많은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았고, 힘 있는 사람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이천수=문제아’로 인식되었다. 누구를 때리거나 도둑질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이천수에 대해선 확인도 하지 않은 기사들과 선입견들이 가득했다. 알 나스르 입단 후 천수는 축구선수로만 알려지길 바랐다. 좋은 성적을 통해 자신의 진가를 다시 확인시키겠다는 각오도 대단했다. 어느 때보다도 팀에 적응하려고 노력했고, 또 실제 구단에서도 이천수의 실력을 인정하면서, 점차 출장 기회를 늘리고 있다.”
그는 이천수가 최근 이전의 컨디션을 되찾았고, 심리적인 안정을 찾은 덕분에 3골 1도움을 기록 중이며 팀 또한 5연승으로 상승세를 달리고 있어(리그 4위) 여러 가지로 여유 있는 환경을 만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천수가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부분은 2010남아공월드컵.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월드컵대표팀이 해외전지훈련을 통해 나이 어린 선수들의 기량이 한층 성장 발전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이천수는, 그래도 언젠가 한 번쯤은 허 감독이 불러주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디에서든, 부상 없이 열심히 뛰고, 또 좋은 성적을 내면 자신한테도 좋은 기회가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더라. 어쩌면 축구 인생에서 마지막일 수도 있는 월드컵 승선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다. 외롭게 모든 걸 혼자 감당하고 있는 천수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또 다른 축구 인생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고 믿어줬음 좋겠다.”
그동안 K리그를 비롯해 스페인, 네덜란드 등을 돌며 성공과 실패를 반복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처럼 한국 언론은 물론,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과 떨어져 고립된 채 생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자신의 목표를 향해 모든 걸 접고 오로지 축구에만 푹 빠져 있는 이천수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우리들 앞에 다시 돌아올 날이 언제쯤일까. 월드컵과 이천수의 인연이 계속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