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비행 신 “아직도 갈 길 멀다”
▲ 코치와 선수 시절 삼성화재에서 한솥밥을 먹은 인연이 있는 대한항공의 신영철 감독대행(왼쪽)과 LIG의 김상우 감독대행.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일단, 팀 성적이 좋아야
지난 9일, 신갈의 대한항공 연수원 내에 위치한 체육관에서 만난 신영철 감독대행. 먼저 10연승을 내달리는 소감에 대해 묻자, “두 다리 쭉 뻗고 잘 잔다”라고 우스갯소리를 하면서도 “처음에는 걱정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선수들이 잘 따라줘서 예상 외의 성적을 내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갈 길이 멀기에 지금 안심하기엔 무리다”라고 설명했다. 신 감독대행이 시즌 도중 코치에서 감독대행으로 자리바꿈을 하자마자 대한항공 선수들은 마치 ‘우리 아이들이 달라졌어요!’를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14승1패를 질주하며 고공 비행 중이다. 더욱이 지난 2일 삼성화재를 상대로 3-0 완승을 거두자, 대한항공 팬들은 신 감독대행을 향해 ‘신의 손’이라 부르며 절대 지지를 나타내고 있다.
반면에 성적 부진과 건강상의 이유로 중도 하차한 박기원 감독을 대신해 사령탑에 오른 김상우 감독대행은 “내가 지금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란 말로 심적 부담을 토로했다. 4시즌 연속 4위에 그쳤던 LIG가 1라운드에서 전승을 거두며 강력한 우승 후보로까지 거론됐다가 2라운드부터 집중력과 조직력에 문제점을 노출하며 팀이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선수들이 시즌 초반만 해도 뭔가 해보려는 의지가 강했다. 그러다 패하는 경기가 늘어나자, 또다시 이전의 감상에 빠진 면도 있다. 그러나 지난 여름 지독한 훈련을 소화하며 LIG 선수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올스타전 휴식기 동안 드러난 약점을 잘 보완해서 선수들과 마지막에 웃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감독대행에도 ‘급’이 있다
지난 2007년 3월, LG화재 사령탑에서 물러난 뒤 야인 생활을 했던 신영철 감독대행은 대한항공의 코치직 제의를 받고 일부러 인스트럭터로 보직을 바꿔달라고 제안했을 만큼 독특한 과정을 밟아 왔다.
“당시 여자배구팀의 감독 자리도 제안받았지만 남자팀에 대한 회한이 많아서 정중히 거절했었다. 코치직을 사양한 것은 시즌 중간에 들어가는 데다가 내가 벤치에 앉아 있으면 모양새가 이상할 것 같아서 두 달가량 인스트럭터로 활동하고 싶다는 의견을 낸 것이다. 철저히 제3자의 입장에서 선수들을 관찰했다. 그때 보고 느꼈던 부분들이 감독대행으로 옮기고 나서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2008년 은퇴 후 방송 해설위원에서 LIG손해보험 코치로 지도자 세계에 발을 들여 놓은 김상우 감독대행은 지난 시즌 수석코치로 자리를 옮긴 이후부터 선수들 훈련 프로그램이나 스케줄 관리 등을 도맡아 해왔다. 박기원 전 감독이 대외적인 활동을 담당했다면 김 감독대행은 훈련 스케줄을 짜고 선수들의 몸 상태를 체크하는 등 미리 감독 수업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감독대행의 신분으로 코트에 선다고 해도 선수들과 교감을 나누는 부분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 신영철 감독대행 | ||
누굴 닮았는데?
두 감독대행의 롤 모델이라고 한다면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을 노출하지 않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선수들에게 적절한 당근과 채찍으로 재미있는 배구를 할 수 있게끔 분위기를 조성하는 노하우가 부러운 것이다. 신 감독대행은 숙소가 있는 신갈과 분당의 집까지 거리가 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숙소 생활을 자처한다. 집에 갈 때는 빨래가 쌓였을 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술을 마신 뒤라고 해도 새벽 5시 기상을 철칙으로 삼는다.
“이전에 신치용 감독님이 그러셨다. 새벽에 들어오셔도 5시면 일어나서 운동하시고 선수들과 아침 식사를 같이 하셨다. 선수들은 지도자가 부지런하면 다소 힘들어진다. 하지만 한결같은 생활 태도에 선수들 스스로 긴장하게 되고 규칙을 어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신 감독님의 그런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나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김 감독대행은 LIG 코치로 일하면서부터 1년 8개월가량 수원 밖을 벗어난 적이 없다고 말한다. 둘째 아들이 태어났을 때도 선수단을 떠나지 않았다. 집으로 잠깐의 외출이나 외박은 있었지만 대부분의 생활을 선수들과 함께 했다. 김 감독대행의 오른손 바닥을 보면 선수들과 훈련하면서 워낙 많은 서브를 해대는 바람에 왼손과는 확연히 차이가 날 정도로 굳은살이 단단히 박여 있다.
“내가 감독대행이 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가장 먼저 전화를 해주신 분이 신치용 감독님이셨다. 코치 시절의 마음을 잃지 말고, 한 번 치고 올라오라고 용기도 주셨다. 삼성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있는 만큼 부끄럽지 않은 지도자가 되고 싶다.”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
김 감독대행은 대한항공이 신 감독대행 부임 이후 한마디로 ‘터졌다’라고 평가한다. 특히 삼성화재전을 3-0으로 완파한 부분은 선수들한테 큰 성취감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을 것이라고 부러워한다.
“우린 아직 선수들의 끼가 분출이 덜 됐다. 삼성 선수들처럼 여우같이 플레이를 못한다. 마냥 착해선 좋은 성적을 거둘 수가 없다. 선수들의 가슴까지 차 오른 끼를 겉으로 분출할 수 있게끔 만드는 게 내 몫이다.”
김 감독대행은 용병 필라타의 발목 부상과 주장 이경수의 계속된 부진, 그리고 가장 기대를 모으는 김요한이 체력적인 부담을 안고 있는 부분 등이 LIG의 ‘숙제’라고 토로한다.
▲ 김상우 감독대행 | ||
“공격면에선 LIG가 한 수 위다. 사실 1위부터 4위까지 만만한 팀은 단 한 팀도 없다. 조금만 방심하면 순위가 뒤바뀌기 때문이다. 레안드로가 새로 들어왔지만 시즌 중에 들어왔기 때문에 이전 삼성화재 시절의 가공할 만한 위력은 기대하기 힘들다. 단, 남은 5, 6라운드에서 김학민의 체력적인 부담을 덜어줄 순 있을 것이라고 본다.” 신 감독대행은 대단한 열정을 갖고 있는 김상우 감독대행이 LIG를 얼마나 새롭게 만들어갈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라고 후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감독대행의 또 다른 고민
현재 삼성화재에 이어 2위에 올라있는 대한항공. 신 감독대행으로선 1위 자리에 대해 욕심을 낼 수밖에 없다. 특히 삼성화재를 3-0으로 이긴 후 그 욕심은 비단 꿈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신 감독대행은 “LG에서 계약 기간 1년을 남겨놓고 팀을 나오게 되면서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승부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이기는 것이다. 팀이 어떤 상황이든 이겨야만 한다”면서 “그래서 삼성화재를 이기는 법을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라고 말한다. 더 이상 감독 자리에서 중도하차는 당하고 싶지 않다는 오기도 작용했다.
김 감독대행은 선수 시절 당시 느꼈던 아픔을 현실과 오버랩 시켰다. “삼성 시절, 김세진, 신진식한테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양보해야 했다. 선수 때는 두 사람의 그늘에 있었지만 지도자로선 선수들의 그늘이 돼 주면서 건강한 팀 플레이를 펼쳐 보이는 게 목표다.”
김 감독대행은 올 시즌 목표를 플레이오프 진출이라고 정했다. 선수들의 내재된 ‘끼’와 자신감을 갖고 1라운드 전승을 달리던 분위기로 정규리그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싶은 바람이 있다. 그렇다면 신 감독대행은? “당연히 우승이죠. 우승말고 할 게 뭐가 있어요?”라며 소탈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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