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시동 걸었지만 ‘평창 가는 길’ 멀다
▲ 삼성만 믿어! IOC 위원으로 복귀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 11일 밴쿠버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관계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 ||
지난 7일(현지시간) 캐나다 밴쿠버에서 IOC 집행위원회가 열렸다. 회의가 시작되자 곧 IOC 윤리위원회를 거쳐 올라온 ‘이건희 위원’에 대한 논의가 벌어졌다. IOC 사상 초유의 자진 자격정지를 요청한 이건희 위원이 이미 지난 1월 13일 IOC 윤리위원회에 자격회복을 요청하는 레터를 보냈고, 윤리위원회는 징계와 함께 자격을 회복시킨다는 내용을 집행위원회에 상정한 상태였다.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의 말처럼 “별 일이 없으면 윤리위원회의 결정을 따르게 될” 상태였다.
이 논의가 시작되자 차기 IOC 위원장으로 꼽히는 토마스 바하 IOC 수석부위원장(독일)은 “이해관계가 충돌한다(a conflict of interests)”고 선언한 후 회의장을 잠시 빠져나왔다. 그리고 이건희 안건이 토의되는 동안 회의장 입구에서 IOC 관계자들과 얘기를 나눴다. “논의가 이건희 위원의 사면 및 IOC 복직, 그리고 그가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한국에서) 사면됐다는 문제로 이어졌다. 나는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회의에서 빠져나왔다.”
바하 부위원장은 독일의 일간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짜이퉁>을 통해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해관계는 독일(뮌헨)이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나서 평창과 표대결을 해야 하고, 바하는 뮌헨 유치를 선두에서 이끌고 있다는 의미다.
바하는 이견이 없는 IOC의 넘버2 실력자다. 차기 IOC 위원장 1순위 후보로 로게도 그를 함부로 하지 못한다. 이런 바하가 공개적으로 ‘이건희 복직’ 논의를 피한 것이다.
IOC 집행위원회의 멤버인 데니스 오스왈드(스위스)는 회의가 끝난 후 “(한국정부의 사면은 얘기가 나왔지만) 평창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진화에 나서는 인상이 짙었다. 하지만 이미 한국의 대통령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을 사면했다’고 밝힌 것은 전 세계에 알려져 있었다.
‘이건희 복직’ 결정 이후 IOC는 공개 견책과 향후 5년간 분과위원회 활동 금지라는 징계를 덧붙였음에도 불구하고, 특혜라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비판이 일자 IOC의 마크 애덤스는 기자회견에서 “(이건희 위원은) IOC가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처벌 3가지 중 2개를 받았다”고 말했다. 나머지 하나는 축출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공개적으로 IOC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는 평가와 함께 중징계를 받은 이건희 IOC 위원이 평창의 유치활동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IOC 집행위원회 후 대다수 한국언론은 ‘이건희 IOC 위원 복직, 평창에 큰 도움’이라고 보도했다. 견책과 5년간 분과위 활동정지를 다룬 언론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하루 늦게 IOC의 자세한 결정문이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면서 진보매체를 중심으로 ‘이건희, 복귀가 아니라 중징계’라는 보도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이어 평창에 이건희 IOC 위원이 도움이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IOC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아무리 중징계를 당했다고 해도 총회 참석 등 IOC 활동에 지장이 없는 ‘복귀’이고, 또 삼성이 IOC의 최대 스폰서 중 하나인 까닭에 이건희 IOC 위원의 존재는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건희 카드’가 결코 평창의 2018 동계올림픽 유치의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2007년 과테말라총회 때 IOC 내에서 아무 흠집이 없었던 이건희 위원은 직접 연설도 하고, 삼성의 해외지사망을 활용하는 등 평창을 위해 전력을 다했지만 러시아의 소치에 졌다. 여기에 이제는 징계까지 당했으니 여건은 더 좋지 않은 것이다. 즉 이건희 IOC 위원의 복직은 평창유치와 관련해 이전보다 훨씬 약해진 ‘필요조건’이라 할 수 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