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잠수함 리모델링 성질은 죽이고 피칭감 살렸죠!
▲ 홍순국 메이저리그 사진전문기자 | ||
김병현과는 지난 3월 2일 애리조나 주 스콧츠데일에 위치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마이너리그 훈련장에서 오랜만에 해후했다. 훈련을 마친 다음 김병현이 자주 찾는다는 인근의 한 한국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김병현은 별다른 질문이 없어도 술술 자신의 사적인 얘기까지 털어놓는 오픈 마인드로 시종 유쾌한 시간을 만들어냈다. 세월이 흐르면서 자신도 조금씩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고, 조금씩 타협할 줄도 알게 됐다는 김병현과의 ‘식당 토크’를 정리해 본다.
김병현은 그리 인터뷰를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하지만 마음이 편한 자리에선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는 데 주저함이 없다. 대부분 기사화할 수 없는 내용이라 아쉽긴 하지만 김병현의 인간적인 면면들이 느껴질 때마다 절로 훈훈해지는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식사를 하다가 자연스레 콜로라도 로키스에서 플로리다 말린스로 트레이드됐을 때의 얘기가 나왔고 김병현은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설명해 나갔다.
―콜로라도에서 플로리다로 트레이드됐을 때 감독과 불화설이 있었다. 실제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었나.
▲감독보다는 투수 코치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 코치의 행동이 계속 신경을 건드렸고, 결국 참지 못하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폭발한 것이다. 감독, 단장, 코치, 선수들이 있는 상황인데 내가 나서서 코치의 행동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고 그로 인해 하루아침에 선발에서 불펜으로 내려갔었다. 그 후 감독은 10일 동안 게임에 내보내지 않았다. 그러다 하루는 갑자기 선발 투수가 아프다며 나더러 선발을 맡으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날 게임에서 아주 박살이 났다. 10일 동안 몸을 풀지 못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는데 팀에선 그걸 핑계 삼아 부상자명단에 올리겠다고 했고 32일 동안 DL에 머물게 했다. 결국 이후 플로리다 말린스로 트레이드됐다.
―2년 동안의 공백기가 있었다. 그동안 배우고 느낀 게 있다면 무엇인가.
▲둥글게 둥글게 사는 법을 배웠다. 사회란 곳은 뾰족한 생각을 갖고선 생활하기 어렵더라.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머리가 좀 아프겠다고. 내 가치관이나 생각 등이 아이가 생활하는 데는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서다. 남들이 ‘예’ 할 때 ‘아니오’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살다가는 ‘왕따’되기 십상이기 때문에 무조건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라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김병현은 애리조나에서 훈련하고 있는 추신수의 근황에 대해 궁금해 했다. 더욱이 자신이 한때 인연을 맺은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와 계약한 것과 관련해서 추신수에게 직접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서로 연락처를 모르고 있었던 두 사람은 기자의 주선으로 전화통화를 하게 됐고 이틀 후에 피닉스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직접 얼굴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추신수 선수와 통화하는 걸 들어보니까 후배를 굉장히 자상하게 챙기는 것 같다. 미국에서 야구를 하다 보면 한국 선수들과의 인간관계에 대해서 남다른 마음을 갖게 되지 않나.
▲재미있는 게 뭐냐 하면 내 주위에 후배나 친구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난 누굴 잘 챙기는 스타일이 아니다. 설령 챙기는 후배가 있다고 해도 좋은 소리가 안 나간다. (두산 김선우 선수와 친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선우 형은 선배니까, 내가 감히 들이대질 못하지 않나(웃음). 내 잔소리를 가장 많이 들은 후배가 (최)희섭이다. 그 친구가 체격만 컸지 속이 단단하지 못해 나한테 많이 혼났다. 만약 내가 희섭이를 아끼지 않았다면 단 한마디도 안했을 것이다. 그러나 애정이 있었기 때문에 충고를 했고 그 충고가 잘 전달되고 아니고의 몫은 상대방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런데 잘 전달되지 않은 것 같다. 희섭이가 어느 순간부터 날 피하는 게 느껴진다(웃음).
―이전 피츠버그에서 방출되기 전 여러 팀들로부터 마이너리그 계약을 제시받은 적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중에 지금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도 포함돼 있었다는 게 사실인가.
김병현은 2년 전과 달리 이번에는 샌프란시스코의 마이너리그 계약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쉬었던 몸 상태라 당장 메이저리그 캠프에 합류할 정도의 기량은 회복되지 않았지만 조금씩 이전의 투구 폼을 회복해 가고 있다는 자신감도 한몫했다. 그러면서 “선수가 2년 이상을 놀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지만 부족해도 조금씩 회복해 가는 게 중요하고, 무엇보다 야구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해서 계약서에 사인했다”라며 웃는다.
―샌프란시스코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으며 특별한 옵션을 제시했다고 들었다. 그 내용 자체가 선수한테 불리한 부분 아닌가.
▲나한테 불리할 수도, 유리할 수도 있다.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는 아직 모른다. 일단 캠프 시작 후 3월 15일까지 팀에서 날 40인 로스터에 포함시키거나 아니면 방출시킬 수 있다는 것과 나 또한 기량이 되는데도 팀에서 일부러 40인 로스터에 올리지 않으면 언제든 팀을 떠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건 내 몸 상태나 기량이 괜찮은데도 팀에서 젊은 선수들을 더 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하루빨리 다른 팀을 수소문해야 한다.
―계약 내용을 들어보면 ‘김병현 답다’는 생각이 든다. 마이너리그 시범 경기가 5일부터 시작되는데 15일을 데드라인으로 정한 건 너무 시기가 촉박한 게 아닌가.
▲그쯤이면 내가 제대로 공을 던질 수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정할 수 있는 기간을 늘린다고 해도 만약 방출당하면 늦은 시기 때문에 다른 팀을 찾기가 힘들어진다. 내가 워낙 이 팀 저 팀 다니면서 당한 게 많은 데다 그런 쪽으로 경험이 쌓이다보니까 내 나름대로 보호 장치를 만든 것이다. 단순히 실력이 부족해서 트레이드됐거나 불펜으로 내려갔더라면 충분히 수긍하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했다. 노란 머리와 검은 머리 선수가 똑같은 실수를 해도 노란 머리는 이해가 되는 데 반해 검은 머리는 이해가 안 되고 오히려 지적받고 충고까지 듣게 된다. 이 부분이 메이저리그의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이다. 그런 체험들이 내 성격도 변하게 했고 조금만 건드려도 감정을 심하게 노출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렇게 차별을 당하면서도 미국에서 다시 야구를 하고 싶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한국에서 차별 같은 거 느끼지 않고 마음 편히 운동할 수도 있지 않나.
▲미국은 내가 야구를 못하면 나만 손해 보면 그만인데, 한국의 프로팀에선 내가 야구 못하면 팀 전체한테 민폐가 될 것 같아서 용기가 나지 않는다. (박)찬호 형이 두산이나 한화 캠프에 합류해 훈련하는 모습을 보고 많이 부러웠다. 나 또한 혼자 훈련할 때 고향팀인 KIA 캠프에 들어가서 선수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다는 생각도 해봤다. 결국 말조차 못 꺼낸 건 괜히 나 때문에 캠프 분위기가 안 좋아지거나 내 존재가 선수들한테 부담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김병현은 메이저리그 캠프가 아니라고 해서 실망하진 않았다. 오히려 기자들이나 관중들이 많은 그곳보다 조용히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는 마이너리그 캠프가 더 맘에 든다고 말했다. 조금 불편한 부분이라면 2년 동안 영어를 안 하다가 다시 영어를 구사하려니까 머리가 아프다는 것과 운동하고 클럽하우스에 들어갔는데 마실 물이 없다는 것, 그리고 훈련복을 세탁하는 데 하루에 2달러씩 돈을 내는 것 빼놓고는 훈련할 수 있는 분위기 자체는 만족스러워했다.
“다시 야구를 시작하면서 날 필요로 하는 팀이 있을까 하는 걱정은 안했어요. 단 운동한 다음날 혹시 몸이 아프진 않을까 하는 걱정은 들더라고요. 다행히 지금까지 아픈 곳은 없어요. 제 미래가 어떤 형태로 결정 날지는 몰라도 더 이상 미련과 후회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김병현은 출생 1979년 1월 19일 신체 키 179cm 몸무게 79kg 소속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포지션 투수 학력 성균관대학교 데뷔 1999년 애리조나 다이나몬드백스 입단 수상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금메달, 2001년 애리조나 다이나몬드백스 월드시리즈 우승, 2004년 보스턴 레드삭스 월드시리즈 우승
애리조나=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