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이제 심판놀음?
▲ 강봉규가 스트라이크 판정에 항의하다 퇴장명령을 받았다. | ||
3월 31일 삼성과 KIA전에서 전일수 구심이 타석을 떠나는 강봉규(삼성)를 불렀다. 그러나 강봉규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때였다. 전 구심이 허공을 향해 손을 뻗으며 “강봉규 퇴장!”이라고 외쳤다. 올 시즌 첫 퇴장이 선언되는 순간이었다. 강봉규는 퇴장에 항의하는 뜻으로 헬멧을 벗어 더그아웃 쪽으로 던졌다. 지난 시즌 심판들이 선정한 ‘제1회 페어플레이상의 주인공’ 강봉규가 이처럼 거칠게 항의한 이유는 무엇일까.
스트라이크존 진짜 문제는?
경기가 끝나고 강봉규는 “스트라이크존에 불만이 있었다”라고 털어놨다. “올 시즌부터 기존 스트라이크존을 기준으로 좌·우 공 반 개씩을 넓히겠다고 했지만, 실제론 공 한 개 이상이 넓어졌다”는 게 강봉규의 주장이다.
국내 최고의 선구안을 자랑하는 양준혁(삼성)도 바뀐 스트라이크존에 의문을 품었다. 양준혁은 “심판들이 예전 같으면 전부 볼로 판정했을 공들을 스트라이크로 선언한다”며 “스트라이크존에서 한참 빠진 공까지 손을 올리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라고 아쉬움을 토해냈다.
모 심판은 “변화한 스트라이크존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타자들의 잘못”이라며 바뀐 제도에 적응하지 못한 선수들에게 책임을 물었다. 그러나 타자들은 입을 모아 “새로운 스트라이크존에 적응하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유가 있다.
강봉규는 가상의 스트라이크존을 설정해 그 안을 통과하는 공에만 배트를 휘두른다. 2000년 프로 데뷔 후 10년 만에 자신만의 스트라이크존을 설정했다. 지난해 ‘만년 대타자’에서 붙박이 우익수로 ‘20(홈런)-20(도루)’을 달성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가상의 스트라이크존을 다시 그려야 한다.
문제는 시범경기 동안 그렸던 가상의 스트라이크존이 정규시즌에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경기마다, 심판마다 스트라이크존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타자들의 불만과는 달리 투수들은 호평 일색이다. 정재훈(두산)은 넓어진 스트라이크존이 승부에 중요한 열쇠가 된다고 본다. 3월 27, 28일 이틀 동안 잠실에서 열린 KIA와의 개막 2연전에서 2경기 모두 계투 등판해 팀의 연승에 중요한 역할을 해낸 정재훈은 “지난 시즌 볼이었던 공이 스트라이크로 선언되면서 타자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야구에서 원스트라이크 투볼과 투스트라이크 원볼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볼 카운트 하나 차이지만, 결과는 판이하다. 실례로 지난해 정재훈은 원스트라이크 투볼에서 피안타율이 무려 4할7푼6리였다. 반면 투스트라이크 원볼에서는 1할8푼3리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변화한 스트라이크존은 결국 누구에게 유리할까. 이용철 KBS 해설위원은 “일단 투수”라고 답하고서 “제구가 좋은 투수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위원은 “스트라이크존이 아무리 넓어져도 제구가 나쁜 투수는 공이 가운데 몰리기 마련”이라며 “개막전 이후 경기를 살펴보면 A급 투수들은 여전히 호투하지만, B급 투수들은 바뀐 스트라이크존을 전혀 활용하지 못한다”라고 평가했다.
▲ 강봉규(왼쪽), 양준혁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
올 시즌부터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빠른 경기 진행을 위해 주자가 없는 경우 투수는 12초 안에 공을 던져야 하는 촉진 룰을 적용키로 했다. 넓어진 스트라이크존이 투수에게 유리하다면 ‘12초룰’은 타자에게 이익이라는 의견이 많다. 압박감 때문이다.
양현종(KIA)은 투구 템포가 빠른 투수다. 그러나 가끔 템포를 늦출 때가 있다. 사인을 오래 보거나 잠시 타석에서 벗어난 타자를 기다릴 때다. 지난해 같으면 별생각 없이 지나갔지만, 이제는 다르단다. 12초룰을 의식하느라 마음이 바빠진다. “뒤에서 2루심이 12초를 재는 게 느껴진다. 심적으로 급해질 수밖에 없다. 여기다 ‘빨리 던져야지’하는 조바심 때문에 집중력까지 흔들리곤 한다”는 게 양현종의 속내다.
두산 고창성도 12초룰에 압박감을 느낀다. 가뜩이나 시범경기 때 경고를 받은 바 있다. 고창성은 “쫓기지 않으려면 타자와 상관없이 투구 템포를 빨리 가져가야 한다”며 “(12초룰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의식이 되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나 12초룰을 신경 쓰지 않는 투수도 많다. 심수창(LG)이 대표적이다. 심수창은 “투구 템포가 빠른 투수들에겐 12초도 길다”라고 말한다. 되레 투수들이 12초룰에 쫓기는 건 타자들이 타석에서 지나치게 시간을 끌기 때문이란다.
조종규 심판위원장도 “그런 측면이 있다”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타자가 타석에 섰다가 한발이라도 빼면 시간 계측을 중단한다”며 “‘타자들이 소비하는 시간까지 12초 계측에 포함되는 게 아니냐?’라는 투수들의 생각은 억측”이라고 설명했다.
금민철(넥센)도 12초룰을 의식하지 않는다. 금민철은 마운드 위에서 시간을 질질 끌면 투수뿐만 아니라 야수의 집중력도 떨어진다고 믿는다. 게다가 타자에게 시간을 주면 줄수록 수 싸움에서 밀린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능한 투구 템포를 빨리한다.
규제가 능사는 아니다
올 시즌 프로야구의 달라진 규정은 이밖에도 많다. ‘클린 베이스볼’ 차원에서 더그아웃 내 전자장비 사용을 일절 금지했다. 과도한 로진백 사용도 규제 대상에 넣었다. 타자가 지나치게 늦게 타임을 요구하면 심판 재량으로 무시할 수 있도록 했다. 더그아웃 출입인원을 코치 8명, 트레이너 2명으로 늘리고 코치 수도 무제한으로 증원토록 했다.
이 가운데 팀 전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 전자장비 사용 금지와 코치 수 증원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프로야구는 ‘전력분석의 시대’였다.
삼성, SK, KIA 등 뛰어난 전력분석팀을 갖춘 팀들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이처럼 전력분석이 가능할 수 있었던 배경은 최첨단 전자장비 덕분이었다.
올 시즌부터 당장 전자장비 사용이 금지되며 많은 팀이 전력분석에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SK는 김정준, 노석기 두 전력분석원을 코치로 승격시켰다. 코치신분이 된 만큼 이들의 활동을 제한할 근거는 사라졌다. 야구계 일부에서 “규제를 하려면 제대로 하라”고 KBO를 비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