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만 뛰나? 우린 머리로 뛴다
▲ 김호곤, 박경훈 | ||
부산ㆍ대표팀서 한솥밥 김호곤(울산 현대) VS 박경훈(제주 유나이티드)
울산 김호곤 감독과 제주 박경훈 감독은 2000년부터 2년 동안 부산에서 감독과 코치로 만났고, 이후에는 2004 아테네올림픽 대표팀을 함께 진두지휘했다. 이렇게 영욕을 함께 나눈 뒤 한동안 떨어져 있던 김 감독과 박 감독이 6년여 만에 다시 K리그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5라운드를 소화한 시점에서 울산은 3승1무1패(승점 10)로 리그 1위를 달리고 있고, 제주는 2승3무(승점 9) 전적으로 3위에 랭크된 상태다. 참고로 김 감독은 51년생, 박 감독은 트레이드마크인 백발에도 불구하고 김 감독보다 열 살 어린 61년생이다.
김호곤(김): 그나저나 대체 제주를 어떻게 탈바꿈시킨 거야? 맨날 꼴찌 후보였는데, 그렇게 짧은 시일 내에 팀을 바꿔놓을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해.
박경훈(박): 사실 저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어요. 그때 깨우친 게 많아요. 2007년에 한국에서 열린 17세 이하 청소년월드컵에서 실패했잖아요. 전남과 부산 그리고 올림픽팀에서 코치로 머물다가 갑자기 청소년팀 감독이 됐을 때 얼마나 어렵던지. 되돌아보면 기쁠 때보다는 슬플 때가 더 많았죠. 헌데 잠시 (전주대) 교수를 하다 보니 계속 벤치가 그리워지더라고요. 솔직히 말하면 예전의 실패를 만회하고 싶기도 했고요.
김: 나도 대한축구협회에서 행정가(전무이사)를 하다가 갑자기 감독으로 돌아왔잖아. 행정을 하다 보니 답답했지. 축구인은 현장에 있을 때 진짜 살아있는 느낌이 들더라고. 여하튼 잘하고 있는 제주를 보니까 정말 보기 좋네. 우리 함께 잘해 보자고. 아, 우리하고 할 때는 살살하고.
박: 맞아요. 저희는 ‘꼴찌 탈출’이 지상과제였죠. K리그 개막 전 미디어 데이에서는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언급했지만 솔직히 뚜껑 열리기 전만 해도 긴가민가했어요. 분명히 어려운 순간이 찾아오겠죠. 그래도 지금 상태라면 어떤 위기라도 충분히 극복하리라 믿어요.
▲ 조광래, 이영진 | ||
영남권을 대표하는 시민구단. 경남 조광래 감독과 대구 이영진 감독은 그야말로 K리그의 산 증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좀 더 과장을 보태자면 둘은 FC 서울이 배출한 최고 지도자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조 감독이 1995년부터 2년간 수원에 있다가 98년 안양으로 옮겼고 이 감독은 97년부터 막내 코치로 안양 벤치를 지키고 있었다. 이 감독은 조 감독이 2004년 떠날 때까지 7년을 함께했다. 이후 귀네슈 전 감독을 보좌했던 이 감독은 올해 대구 사령탑에 선임, 코치가 아닌 감독으로서 진정한 지도력을 검증받게 됐다.
조광래(조): 우선 첫 승을 축하하네(대구는 3월 28일 대전 원정에서 시즌 첫 승리를 맛봤다!). 마음 고생도 심했을 텐데. 감독으로서 첫 승과 현역으로서 첫 승은 정말 잊지 못할 순간이야. 지금도 옛 기억이 생생해.
이영진(이): 한시름 놨죠. 개막을 앞두고 팬들과 ‘3월 이전에 첫 승을 하겠다’는 약속도 지켰고요. 그런데 대구의 승리보다 더욱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을 들었는데요. 경남이 수원을 제압했잖아요.
조: 나도 수원을 꺾어서 솔직히 기쁘긴 해. 경남이 그동안 거의 수원을 이기지 못했었잖아. 2007년 5월 이후 9경기에서 3무6패였으니 말 다했지. 그런데 경기를 준비하다보니 우리 아이들(조 감독은 항상 선수들을 ‘우리 아이’라고 부른다!) 눈빛이 평소와 다르더라고. 사실 같은 프로라면 실력은 종이 한 장 차이야.
이: 워낙 선수들이 패배 의식에 젖어 있어서 그런지, 지는 걸 당연시 여기더라고요. 헌데 그때보다 더욱 속상한 건 결과보다 제가 원한 축구가 나오지 않을 때 가슴이 답답해지더라고요. 그런데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세요? 몸은 괜찮으시고요?
조: 작년에 대상포진에 걸려서 많이 아팠지. 요즘엔 술도 안 먹게 되고 잠을 오래 자게 되더라고. 가끔 몸이 대상포진 여파로 아플 때가 있는데, 끙끙거리기도 하지만, 역시 잠이 만병통치약이야.
▲ 최강희, 왕선재 | ||
어쩌면 공통점이 없을 것 같은 전북 최강희 감독과 대전 왕선재 감독. 하지만 59년생 동갑내기인 이들은 수원에서 나란히 코치 시절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최 감독은 98년부터 2001년까지, 왕 감독은 2002년부터 2003년까지 수원에 머물렀다. 이후 둘은 다른 길을 걸었다. 최 감독이 대표팀 코치로 갔고, 왕 감독은 대전에서 김호 전 감독과 함께 팀을 지휘했다. 하지만 여기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여유와 능숙한 입심이 그것이다.
최강희(최): 늦었지만 ‘지옥의 문(K리그 감독)’에 들어오신 걸 축하합니다.
왕선재(왕): 고마워요. 쉽지 않네요. 선수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구단에도 그렇고.
최: 항상 좋을 때만 있습니까. 후반기만 되면 갑작스레 되살아나는 대전 특유의 저력이 있잖아요.
왕: 매주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합니다. 요즘은 계속 지옥에 머물고 있네요. 전북처럼 확실한 카드가 있다면 저희도 좀 좋아질 텐데.
최: 작년에 (왕)감독께서 후반기에 매섭게 치고 올라올 때 두렵기까지 했어요. 대전을 확실한 승점 제물로 생각하는 감독은 없을 겁니다. ‘공공의 적’이란 표현은 어떨까요. 저희도 하긴 작년에 한 번 우승했다고 견제가 심하게 들어오니.
왕: 감독대행 꼬리표를 떼고, 이제 정식 감독이 됐으니 어서 빨리 대전의 참 모습을 보여줘야죠. 자신은 있어요. 전북처럼 우승권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원하는 선까지는 진입해야죠. 부상자도 하나 둘 복귀하고 있고, 기대하셔도 좋아요.
남정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