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사람들은 다른 질환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고혈압 진단을 받게 된다. 고혈압은 혈압 자체의 문제보다도 합병증 때문에 위험하다. 또 한 번 발병하면 치료가 쉽지 않고 합병증으로 사망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그래서 고혈압 자체를 ‘치료’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혈압이 더 높아지거나 고혈압으로 인한 다른 합병증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일이 중요하다.
▲ 고혈압이 있는 사람은 평소의 생활관리가 무엇 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 ||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면 혈압이 높아지지만 고혈압이 주로 장년층의 질환이라는 단정은 오해다. 30대에 접어들면서부터 고혈압 발병률이 서서히 증가하기 때문이다. 연령이 높을수록 중증 고혈압이 많기는 한데, 이는 병이 지속된 시기가 그만큼 길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사이 고혈압 환자의 수도 부쩍 늘어났다. 지난해 대한고혈압학회에서 발표한 국내 고혈압 역학자료에 따르면 1990년 남자 22%, 여자 20%를 차지하던 고혈압 인구는 1998년에 이르러 남자 31%, 여자 27%로 크게 증가했다(미국 제6차 합동위원회가 제시한 기준. 성인 수축기 혈압 140mmHg 이상 또는 확장기혈압 90mmHg 이상).
고혈압 자체보다는 합병증의 위험이 문제다. 고혈압인 사람은 정상혈압인 사람에 비해 뇌졸중, 심근경색, 신부전 등 뇌혈관 질환이나 심혈관 질환이 발생하는 비율이 훨씬 높고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통계에 의하면 45∼74세의 고혈압 남성은 정상인에 비해 뇌경색 발병률이 9.5배나 높으며 그중 대부분은 고혈압이 직접 원인이 됐다. 고혈압은 특정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정기 검진에서 혈압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더라도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다가 고혈압이 원인이 되는 혈관관련 질환을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
고혈압이 직접 원인이 되는 질환은 뇌졸중, 신부전과 같은 중증질환이 많기 때문에 한 번 발병하고 나면 완벽한 원상회복이 어렵다. 때문에 고혈압 자체가 치료가 안된다 하더라도 평소 지속적으로 혈압을 체크하면서 생활관리를 통해 혈압이 너무 높아지지 않도록 조절을 해야 한다.
대한고혈압학회 회장 이원로 교수(일산백병원)는 “혈압은 안정돼 있다가도 언제든 다시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평소 식사나 운동, 약물요법 등으로 혈압을 조절하면서 주기적인 체크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혈압이 높아지면 돌연한 두통이나 피로, 어지러움, 불면증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런 외부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사람이라도 일단 혈압이 높다는 진단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혈압관리를 시작해야 한다. 외부 증상이 없더라도 혈압이 높으면 심장에 부담이 가중돼 뇌와 콩팥 등 중요 장기에도 손상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혈압관리는 일단 비약물요법으로 시작한다. 운동이나 음식 조절을 통해 적정 체중을 유지하고, 술 담배 염분(하루 7g 이하) 등 혈압을 높일 수 있는 요소는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 생활 관리에 실패하여 혈압이 위험수준으로 올라가기 시작하면 약물 사용이 불가피하다. 그대로 방치할 경우 합병증 발병의 위험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물을 사용한다고 해서 고혈압이 ‘치료’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해서 고혈압을 치료하는 약물은 없다.
고혈압에 사용하는 약물은 혈압을 당장 낮춰주기는 하지만 혈압에 안좋은 생활습관이 지속될 경우 혈압은 다시 높아지며 약물 효과 또한 크지 않다. 따라서 약물치료를 오히려 보조 수단으로 생각하고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을 주요한 치료(관리) 수단으로 여겨야 한다.
이원로 교수는 “일단 혈압약을 먹기 시작하면 평생토록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잘못된 생각”이라고 지적한다. 혈압약을 계속 먹는 환자는 식생활과 생활습관 등 잘못된 일상을 교정하지 못해 계속해서 약에 의지하는 것일 뿐이라고. 약을 먹는 중에도 체중을 조절하고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면 혈압이 안전선으로 내려와 약물을 끊을 수 있다는 것.
일단 고혈압 진단을 받고 나면 평상시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평생 약에 의지하면서 위태롭게 살 수밖에 없다. 한방에서도 고혈압 환자에게는 생활 관리에 철저할 것을 강조한다. <동의보감>은 “풍이 있는 사람은 승려처럼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재발한다”고 기록돼 있다.
한방에서는 직접 고혈압을 지칭하는 질병의 개념은 없지만 뇌졸중을 지칭하는 ‘풍’이란 개념이 있기 때문에 고혈압 역시 풍의 범주로 본다. 한방에서 풍은 기혈의 순환이 막힌 것을 뚫기 위해 심장이 과도하게 작용하다 보니 혈압이 상승한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풍을 다스리는 처방과 함께 생활 습관 교정을 권한다.
고혈압의 위험이 날로 높아지면서 미국 고혈압합동위원회, 세계보건기구, 국제고혈압학회를 비롯 세계 각국에서 고혈압진료 지침을 발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한고혈압학회도 지난 2000년 진료지침을 발표하면서 혈압이 높은 일반인들이 지켜야 할 생활지침을 발표했다.
▲ 알코올: 조금씩 마시는 사람은 비음주자보다 오히려 혈압이 낮다는 보고도 있지만 매일 30ml 이상 마시는 사람은 고혈압 및 뇌졸중 발생률이 높아진다. 술을 완전히 끊을 필요는 없지만 매일, 과다하게 마시는 것은 삼가야 한다. 일반적으로 하루 알코올 허용량은 30ml. 맥주 1병, 소주 반병 이내다. 여성은 남성보다 알코올이 혈압상승에 미치는 효과가 더 크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 염분: 염분 섭취량과 혈압의 연관성이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혈압약으로 쓰이는 이뇨로 인해 염분 제한의 중요성은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고혈압 환자는 하루 7g 이하로 제한하는 것이 좋다.
▲ 금연: 고혈압 환자에게 금연은 매우 중요하다. 흡연시 혈압 강압제 효과가 줄어들 뿐 아니라 고혈압 치료를 하더라도 심혈관 질환이 예방되지 않는다.
▲카페인: 일시적으로 혈압을 올릴 수는 있으나 지속적인 고혈압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따라서 카페인 섭취는 혈압 상승과 직접적 관계는 없다.
▲운동: 고혈압 예방 및 치료에는 꾸준한 유산소운동 즉 걷기, 달리기, 자전거 타기, 수영, 체조 등이 도움이 된다. 반면 조정, 보디빌딩, 윗몸일으키기, 다이빙, 승마, 구기종목 등은 적당하지 않다. 일주일에 3∼4회, 1회 30∼40분 정도가 적당하다. 약간 숨이 찰 정도의 속도로 45분간 거의 매일 걷거나 일주일에 3∼5회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것이 좋다. 심장병이 있거나 이미 합병증이 발생한 환자는 사전에 정밀검사를 받고 운동프로그램을 처방받는 것이 좋다.
▲체중 감량: 마른 사람에게도 고혈압이 나타나지만 일반적으로 고혈압 환자는 비만인 경우가 많다. 표준 체중의 10%만 초과해도 혈압은 6.6mmHg 증가한다. 여기서 4.5kg 정도만 감량해도 대부분 혈압이 떨어진다. 실제로 1개월에 2kg 정도 속도로 줄이는 것이 일상생활에 지장 없이 무난하다.
▲기타: 최근 한 조사를 통해 음식물 속의 단백질과 혈압 사이에 반비례 관계가 있다는 보고가 나왔으나 확실치는 않다. 또한 탄수화물, 마늘, 양파 등이 혈압에 미치는 효과도 정확히 증명되지는 않았다. 윤은영 건강정보작가 enjo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