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씻고 냄새를 없애려고 해도 가시지 않는 악취가 있다면 그 당사자는 이렇게 억울할 데가 없을 것이다. 여름이면 감출 수 없이 심해지는 악취의 주범은 바로 액취증(암내)이다. 물론 생명에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액취증이 있는 사람은 알게 모르게 마음에 병이 든다. 대인관계에서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때문이다.
밖으로 냄새가 심하게 풍기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지만 다른 사람은 거의 못느낄 정도로 냄새가 약한 경우에도 당사자는 남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예민하게 주의를 기울이게 되고, 이런 스트레스가 쌓이면 차라리 대인관계를 피하고 싶어지기 때문에 사회생활에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예전에는 액취증을 ‘숙명’처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만 현대의학은 이를 간단히 없애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 방법을 알아본다.
여름에 액취증이 더욱 문제되는 것은 액취가 땀과 관계있기 때문이다. 겨드랑이에 땀샘의 일종인 아포크린선이 발달된 사람은 여기에 땀이 날 때마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게 된다. 이것이 액취증이다.
우리 몸에는 두 가지 종류의 땀샘이 있다. 하나는 땀을 내는 땀샘이고 다른 하나는 냄새를 유발하는 땀샘인데 이것이 바로 아포크린선이다. 일반 땀샘은 피부 전체에 분포돼 있는 반면 아포크린선은 겨드랑이, 배꼽 주위, 회음부 등 신체의 특정 부위 몇 곳에 존재한다. 냄새가 특히 많이 나는 곳은 아포크린선의 95%가 집중돼 있는 겨드랑이 부위에서다.
아포크린선에서 흘러나오는 땀을 피부 표면에 있는 박테리아가 지방산과 암모니아로 분해하면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인데, 여름엔 보통 때보다 땀이 많이 나기 때문에 냄새도 심해질 수밖에 없다. 액취증을 가진 사람이 땀을 많이 흘리는 다한증까지 갖고 있다면 본인의 노력으로는 감출 수 없는 나쁜 냄새에 시달리게 된다.
사람의 후각은 다른 감각에 비해 적응이 빠르기 때문에 특정한 냄새를 자주 맡는 사람은 이에 대한 반감이 적다. 서양인들은 동양사람에 비해 겨드랑이 냄새를 가진 사람의 수가 많기 때문에 액취증에 대한 거부감이 그다지 크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동양에서는 액취증을 가진 사람이 공공연히 기피 대상이 되기도 한다. 액취증 비율이 상대적으로 적은 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 냄새에 적응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액취증을 가진 사람의 심리적 소외감이 그만큼 커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마음에 드는 이상형의 이성을 만났지만 액취의 비밀(?)이 탄로날까봐 일부러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는 바람에 상대방은 자신이 거부당한 줄로 알고 사랑을 포기하고 떠나갔다는 실연의 비사도 있을 정도다.
▲ 액취증 때문에 고통을 겪던 한 여성이 ‘파워흡입술’로 땀샘 제거 시술을 받고 있다. | ||
첫째로 땀을 흘리지 않거나 흘리는 즉시 닦아내는 방법. 이것은 이론적으로는 방법이 될 수 있지만 현실적이지 못하다.
둘째는 박테리아가 서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 철저한 청결관리가 비법이 될 수 있겠지만 사람이 무균실에 갇혀살지 않는 한 역시 비현실적인 아이디어다. 액취증 환자용의 비누나 크림같은 것이 고안된 적도 있지만 일시적인 효과밖에는 기대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근본적인 차단을 생각한다면 아포크린 땀샘을 없애는 방법이 가장 믿을 수 있고 확실하다. 액취증을 없애는 의료기술도 주로 아포크린선 제거에 맞춰 발달되고 있다.
아포크린선은 많은 사람에게서 이미 퇴화되었고, 아직 남아있는 사람에게도 기능상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포크린선을 제거하는 데 따른 역효과 같은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초점은 어떻게 피부 손상을 최소화하면서 보다 완벽하게 아포크린선 땀샘을 없애느냐 하는 데 있다.
아포크린선을 파괴하는 데는 물리적인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재래적인 방식의 제거수술은 오래전부터 시행돼 왔지만 다소 번거롭고 회복기간이 길었던 게 사실이다.
매스를 통해 겨드랑이 피부를 절개해 완전히 젖힌 뒤 피부 아래 땀샘이 있는 피하조직을 눈으로 직접 보면서 긁어내는 방법인데, 노련한 외과의가 집도하더라도 수술 후 약 6cm 정도 길이의 흉터가 남았다. 직접적인 수술이기 때문에 일정기간의 입원이 필요하고 수술후 상처가 잘아물 때까지 운동이나 일상생활에 제약도 불가피했다.
하지만 이 부문에도 신기술이 적용돼 액취제거에 획기적인 편의를 가져왔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파워 흡입술’은 피부 아래 숨어있는 피하조직의 일부를 제거하는 데 가장 진보한 수술법. 피부를 직경 0.5∼1cm 정도만 최소한으로 절개해 흡입기를 삽입한 뒤 이 흡입기를 통해 아포크린선이 발달된 피하조직을 분쇄, 제거하는 방법이다. 흡입기는 초고속 진동형 흡입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선 절개 부위가 작아 시술 후에도 흉터가 거의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환자들에게 좋은 점수를 받고 있다. 피부 손상이 최소화됐기 때문에 혈관의 손상 등 부작용 가능성도 현저히 낮아졌고 시술후의 감염 위험도 줄었다. 그만큼 시술에 따른 환자의 부담이 줄었고 회복기간도 단축됐다. 하루 이틀 정도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피부과 전문의 차형기 원장은 “냄새가 아주 심한 경우 두세 차례 치료를 반복해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개 한번만 시술하면 냄새를 거의 없앨 수 있어 환자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고 설명한다. 아포크린선은 한번 시술로 영구 제거되기 때문에 액취가 재발할 가능성은 없다. 차 원장은 이러한 땀샘 제거기술은 다한증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냄새가 그리 심하지 않을 때는 레이저를 이용한 치료방법도 있다. 레이저를 겨드랑이 피부에 쏘이면서 땀샘만 선택적으로 태워 없애는 방법이다.
수술보다 간단하고 피부를 찢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흉터가 남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한번 시술로 완벽하게 땀샘이 제거되기 어렵다는 문제는 있다. 두세번 시술이면 흉터없이 냄새 고민을 해결할 수 있어 비교적 가벼운 액취증 환자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액취증 제거에 보톡스 주사를 이용하기도 한다. 주름을 없내는 주사로 널리 알려진 보톡스는 그 독성으로 근육을 마비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런 원리로 겨드랑이 부분의 땀샘을 마비시켜 땀의 분비량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보톡스는 효력이 8개월이내로 짧기 때문에 그 뒤에는 값비싼 주사를 다시 맞아야 한다는 것이 문제다. 근본적 제거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단점.
땀샘을 지배하는 신경을 절단하는 신경차단술도 액취증 치료법으로 쓰이고 있지만, 워낙 예민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신경을 자르는 일은 높은 위험 가능성을 안고 있다.
본인만 냄새를 맡을 정도로 증상이 가벼운 사람은 몇 가지 자가요법을 통해 냄새를 관리할 수 있다. 샤워를 자주 하는 것은 기본이고 통풍이 잘되는 옷을 입고 파우더를 발라 겨드랑이를 항상 건조한 상태로 유지한다. 항생제 연고나 0.3% 농도의 포르말린 희석액을 바르는 것도 도움이 된다. 향료를 뿌리거나 살균제가 포함된 약용비누를 사용할 수도 있다.
윤은영 건강정보작가